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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지 Jul 10. 2024

번아웃과 주가조작의 의외의 공통점

끝이 오기 전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조리원에서 나와 집에 돌아오니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습니다. 2주 동안 조리원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리고 퇴소 직후 출판사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정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었어요. 더는 뒷걸음질 칠 곳이 없었습니다.


산후 도우미 이모님이 집에 와주시는 2주 동안 무조건 출판사의 일정에 맞추어 원고를 마무리하고 인쇄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모님 계시는 동안 최대한 많은 일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원고를 수정하고, 담당자와 연락하고, 병원에 갔다가 외부 미팅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모님이 퇴근하면 아기를 돌보다가 남편이 퇴근하면 잠시 쉬다가 아기가 자면 새벽까지 글을 다듬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제가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자괴감과 스트레스가 몹시 컸습니다. 산후에 육아, 일을 동시에 해야 하니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지요. 하지만 막상 시간을 좀 더 주더라도 잘 해낼 자신도 없었습니다. 아기를 낳고 몸과 마음 성한 곳이 한 곳도 없었거든요.


출산 후에 손목도 허리도 무릎도 말 그대로 전부 너덜너덜해졌습니다. 모유 수유로 약도 못 먹고, 주사도 못 맞는데 건초염과 허리통증이 너무 심해서 참 고생 많이 했습니다. 산후조리에 집중해야 할 산욕기에 약해진 몸을 가지고 무리를 했으니 몸이 회복을 못하지요.



당시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건초염으로 약 2년을 고생했습니다.



그렇게 무리를 하다가 하루는 날씨 좋은 날 아침에 지안이와 집안에서 베란다를 보는데 다 내려놓고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밀려왔습니다. 많이 놀랐습니다. 죽고 싶다라기 보다, 지금 나를 압박하는 모든 상황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거든요.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것은 잠시이지만 죽으면 끝이다라는 생각에 모두 내려놓기로 합니다. 망작이라도 일단 완결을 해서 끝내자고요. 그렇게 기준을 낮추고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아무튼 결과물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형편없으니 스트레스는 계속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비하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해내는 모든 것이 불만족스러웠거든요. 내 일도, 아기를 보는 일도, 외모도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습니다. 자괴감에 괴로워할수록 자존감은 하락하고 움츠러들었습니다.



재교를 마치고 받은 원고, 잠든 지안이 데리고 집 밑에 카페에서 작업하러





주가조작에 연루된 주식 차트를 보신 적이 있나요?


작년 삼천리나 영풍제지 주가조작 사건은 초기에 조용히 주가가 올라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가는 거래량의 큰 증가 없이 마치 폭풍 전야처럼 고요하게, 꾸준히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종착점에 도착하자 주가는 어김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인위적으로 주가를 버티고 있던 힘이 빠지면서 투매가 나오고, 주가는 속수무책으로 급락한 거죠. 이러한 모습은 번아웃의 경험과 닮았습니다.



주가조작에 연루되었던 삼천리의 차트


번아웃도 비슷합니다. 억지로 상황을 버티며 자신의 컨디션을 끌어올리다가 결국 한계에 다다르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버립니다. 바닥이 어딘지는 가봐야 아는 거고요.


번아웃이 왔을 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존감은 추락해서 바닥을 뚫고 지하실로 내려갔고요. 마침내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아, 여기가 진짜 바닥이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2022 서울머니쇼 코엑스 강연


번아웃이 와서 죽을 만큼 힘들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쉬어야 해요. 내려놓아야 합니다. 쉽지 않겠지만, 뭘 하든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래야 합니다.


저도 알고는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육아는 차치하더라도 이미 벌려 놓은 일들이 많았기에 쉬더라도 벌려놓은 일들은 수습하고 쉬어야 하잖아요.


저 혼자만 손해 보고 끝나는 일이라면 괜찮지만 여러 사람들이 연관되어 있는 일이라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일단 버텨야 했습니다. (경험해 보신 분들은 이해하시죠?)


다만, 후회가 되는 점은 왜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돌보지 못했는지입니다. 조금만 자신을 들여다보았다면, 남들이 못해주더라도 나 만큼은 힘들고 우울한 감정을 인정하고 스스로 위로했었다면 그렇게까지 곪아 썩어 문드러지진 않았을 테니까요.


너무 힘들었지만 누가 내 말을 믿어줄까? 들어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건강하게 아기를 순산하고, 책도 출간하고, 코엑스에서 강연도 하면서 좋아 보였을 것 같아요. 그래도 힘들다고 해봤자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팟빵 녹음(주식대학), 유튜브  촬영(신사임당)


다른 사람들에게는 출산도 일도 척척해내는 멋진 모습으로 비쳤을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곪은 것이 터지고 다시 곪고 반복하며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필사적으로 괜찮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며 강의를 하고 외부일정을 소화했습니다.


그렇게 아닌 척, 괜찮은 척을 하며 간신히 버티며 모든 공식일정이 마무리했습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번아웃과 우울감이 폭풍처럼 몰려왔습니다.


하한가를 가는 주가처럼 저 자신도 바닥으로 추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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