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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지 Jul 03. 2024

엄마가 된다는 건, 상상 이상의 고통

조리원 천국이라고 한 사람 나와봐요



저는 다각도로 준비되지 못한 엄마였습니다.


단순히 마음의 준비를 말하는 게 아니라 실제 준비가 부족했어요. 보건소에서 산모 교육을 따로 받은 것도 아니면서 먼저 출산한 친구에게 물어볼 생각도 못했고, 인터넷이나 맘카페로 미리 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몰라도 너무 몰랐어요.



출산하고 그제서야 육아책을 읽었다. 병원에서 챙겨준 가방


임신 후기에 출산 준비물을 챙겨두어야 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양수가 터졌을 때 출산 가방 없이 당연히 빈손으로 병원에 갔습니다. 지안이를 낳고 나서야 병실에 돌아와 출산 가방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필요한 것을 쿠팡으로 급히 주문했습니다.


출산 후 양말을 신어야 되는 것도 몰라서 병원에서 추운 날 맨발로 다니다가 선생님께 한소리 듣고서 부랴부랴 양말을 신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무지함을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병원 입장을 위한 열 검사와 QR 인증


병원에서 퇴원하고 조리원에 들어갈 때 조금 우울했습니다. 2주 동안 의지할 가족이나 남편도 없이 조리원에 고립되어 아기랑 둘이 있을 생각을 하니 말이에요.


게다가 당시 2021년 3월은 코로나 팬데믹의 정점이었습니다. 5인 이상 집합금지 명령이 있었고, 사실상 타인과 교류가 단절된 세상이었습니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신생아가 있는 조리원은 위생을 관리를 더욱 철저히 했습니다.


남편이나 가족 면회도 안 되고, 집합금지 명령으로 요가나 마사지 같은 조리원 프로그램도 모두 취소되었습니다. 육아할 때 큰 힘이 된다는 조동(조리원 동기)을 사귈 기회도 없었고요.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에이, 혼자서 뭐 해? 일이나 하자"며 다짐했습니다. 조리원은 천국이라니까 2주 동안 초고를 최대한 많이 작업해 두자고. 편안하게 꾸며진 방에서 홀로 여유롭게 노트북을 두드리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앞으로 찾아올 고난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오른쪽에 노트북이 보이지만, 저 소파에선 정작 유축만 했다.


조리원에 들어가자 본격적으로 몸에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첫날 아침, 젖몸살이 격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출산 후 2-3일이 지나자 모유가 돌면서 젖이 돌덩이처럼 딱딱해졌습니다. 조리원에 있을 때 "잠이라도 잘 자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컸기 때문에 새벽에는 수유하지 않고 분유를 먹였더니 아침에 가슴이 부풀어 오른 거죠.

 

저희 엄마는 출산의 고통보다 젖몸살이 훨씬 힘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엄마는 6번의 유산 끝에 저를 낳으셨어요. 어렵게 찾아온 제가 떠날까 봐 임신 사실을 알고는 8개월 동안 병원 침대에 누워만 계셨고, 대소변도 침대에서 해결하셨다고 해요. (이때 할 게 없어 성경을 3 회독을 하셨다고)


그렇게 온갖 고생을 하셨지만,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출산했을 때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젖몸살로 고생했던 고통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고 하셨습니다.



엄마와 둘이 첫 유럽여행 때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서 선생님을 호출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가슴에서 모유가 줄줄 흘러내렸고, 입고 있던 옷은 민망하게 젖어 있었습니다. 다행히 마사지 선생님의 도움으로 모유를 빼내니 살 것 같았어요.


선생님은 한번 빼내더라도 계속 모유가 찰 터이고 결국 아기가 젖을 빨아주어야 유선이 뚫어야 한다고 조언하셨습니다. 그래야 젖몸살이 생기지 않는다고. 게다가 분유수유를 계획하고 있는 엄마도 초유는 먹이는 게 좋다고 추천했습니다.


조리원에서 준 옷과 속옷을 갈아입고, 수유패드를 착용하고, 본격적으로 모유수유를 시작했습니다.




내 품에 쏘옥 담긴 작은 지안이가 그립다.


작은 아기가 엄마 가슴에 안겨 모유를 먹는 사진을 보면 사랑 그 자체처럼 보입니다. 심지어는 경건하고 신성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죠.


하지만 제가 직접 하는 모유수유는 달랐습니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가 온 힘을 다해 엄마 젖을 빱니다. 젖 먹던 힘 까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에요. 열심히 빨지만 우유가 잘 나오지 않고, 힘이 부친 지 지안이는 포근한 엄마 품에서 자꾸 잠이 들었습니다.


조리원 간호사 선생님께 배운 대로 아기 귓불을 열심히 문지르며 잠든 아기를 계속 깨우고, 턱을 만져주며 모유 먹기를 독려했습니다.



모유가 충분한 엄마들은 비누도 만든다고


아마 지안이는 모유를 먹기 위해 다른 아가들보다 더 많이 힘을 냈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초반에 젖도 잘 돌지 않고, 모유량도 적었기 때문이에요. 모유 수유를 5 분하면 세 번 잠이 들곤 했습니다.


그렇게 겨우겨우 깨워가며 모유수유를 하면 30-40분이 훌쩍 지나가 있습니다. 방으로 돌아오면 밥 먹을 시간이에요. 그래도 모유 수유를 제대로 하고 나면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했습니다.



인터넷에서 보고 크게 공감한 조리원의 하루를 잘 표현한 짤




코끼리처럼 부은 발과 다리, 종아리와 허벅지 사이 뒤쪽에 알레르기 반응


젖몸살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몸 이곳저곳에서 이상 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모유수유를 할 때 회음부 통증 때문에 제대로 앉기 조차 힘들었고, 임산부 도넛 방석을 깔고 앉아도 너무 불편했습니다. 한 번이라도 방석을 깜빡하고 의자에 앉았을 때의 통증은... 글을 쓰는 지금도 상상하기 너무 싫네요.


발은 부종으로 코끼리 발처럼 변했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발과 다리가 땡땡 부은 적은 처음이었는데 너무 아팠어요. 발가락, 발등 할 것 없이 땡땡 부으니 걸을 때마다 아프고, 가만히 누워있어도 아팠습니다.


얼굴이 부으면 아프진 않지만 보기 싫지 않은 정도잖아요? 부종은 단순히 보기 싫어 속상한 줄만 알았는데 물리적인 통증이 이렇게 심한 줄 이때까지 몰랐습니다.


팔꿈치나 허벅지에는 오돌토돌한 것이 올라와 너무 간지러워 벅벅 긁었어요. 점점 더 심각해져서 외출증을 끊어 병원에 갔더니 소양증이랍니다. 하지만 수유부 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약을 처방받을 수 없었어요. 그냥 견뎌야 했습니다.



당시 맘카페에 직접 올렸던 글


게다가 출산 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체중은 거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아기가 나오고 난 후 비어 있는 배는 힘없고 볼품없이 늘어져 있었는데, 처음 샤워를 할 때 거울을 보고 혼자 펑펑 울고 또 남편과 전화하며 펑펑 울었어요.


한마디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미리미리 검색만 해봤어도 그 정도로 힘들진 않았을 것 같아요. 일말의 예상조차 하지 못한 채로 온갖 악재들은 온몸으로 받아버리니 배로 힘들고 우울했던 것 같아요.


몸은 엉망진창이지, 수유콜 울리면 수유하고, 돌아와서 유축하고, 밥 먹고, 모자동실 하다 보면 내 시간? 언감생심이에요.


조리원에서 원고를 마감하려는 계획은 입소 삼일 만에 포기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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