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우울증으로 그만 살고 싶었던 이유
꼴도 보기 싫다는 말이 있죠. 남편이 밉고 원망스러웠습니다.
남편은 사실 잘했습니다. 집에서 아이와 홀로 고군분투하는 아내가 걱정돼 하루에도 몇 번씩 시간을 내서 전화를 했고, 퇴근 후에는 쌓여있는 설거지를 처리하고, 택배 박스를 분리수거하며 세탁기를 돌렸으니까요.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이 새벽이 일어나 수유를 했습니다.(둘째가 태어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은 자신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점수를 매긴다면 100점 만점에 95점을 줄 수 있을 정도로요.
그럼에도, 저는 남편이 너무 미웠습니다. 제 삶을 망쳐 놓고 본인만 행복해 보였으니까요. 만삭 때 남편은 개인사업을 정리하고 취업을 했는데, 하필이면 첫 출근 날에 양수가 터져 지안이를 낳으러 병원에 갔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지안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해오던 일들을 내려놓았고, 반대로 남편은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셈입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몸도 일상도 완전히 바뀌어버린 저와 다르게 남편의 삶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생활로 변했죠. 남편의 삶은 중단되지 않고 흘러갔고, 반면 집에 홀로 갇힌 온몸으로 육아를 해내야 했습니다. '왜 나만...'이라는 생각에 남편이 미웠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산후우울증이 심하게 왔을까요? 남편을 원망했지만, 사실 그가 문제의 원인은 아니었습니다.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무엇이 저를 그렇게 힘들게 해서 일상을 회복하는 데 2~3년이 걸렸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예측할 수 없는 불안감이 좌절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육아는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요소가 많습니다. 언제 분유를 먹일지 예측할 수 없고, 언제 낮잠을 잘지 또 얼마나 잘지 알 수 없습니다. 때로는 3시간, 때로는 4시간마다 배고파 울었고, 먹는 양도 매번 달랐습니다. 낮잠을 자는 시간도 일정하지 않았고, 재우려고 해도 자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게다가 “아까 밥 먹었는데 지금은 왜 우는 거지?",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걸까?", "미열이 있는데 약을 먹여야 할까? 병원에 가야 할까? 왜 열이 나는 거지?",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등의 생각으로 항상 불안했습니다.
아이는 예측할 수 없었고, 그런 일상이 계속되니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다른 아이와 비교하며 "왜 우리 애는 이럴까, " 생각하고, 제 맘처럼 되지 않는 아이가 짐처럼 느껴졌습니다.
둘째, 엄마가 되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데는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돈이 많이 든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지는 잘 몰랐습니다. 하루 24시간 중 단 1시간도 나를 위한 시간 가지기 어려운 육아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 스스로도 혼자 컸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육아와 일을 동시에 해내지 못하는 제 자신이 무능하게 느껴졌습니다. 변화한 삶을 인정하고 그에 맞게 계획을 수정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까요. 아이가 없던 시절처럼 계획만 세우고 매번 실패했습니다. 계획만 세우고 실행하지 못하는 모습은 자기혐오로 이어졌고, 자존감은 인생 최저치를 찍었습니다.
“나보다 나중에 유튜브를 시작한 누군가는 구독자 수가 벌써 10만이 넘었는데, 나는 아직도 7만이네.”
“누구는 조회수가 얼마 나오는데, 나는 조회수가 얼마지?”
'다들 애 낳고 키우는데 왜 나만 호들갑이지?'
'다들 애 낳고 일하는데 왜 나만 힘들어하지?'
끊임없이 타인의 최고의 순간과 저의 최악의 순간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후려쳤습니다.
엄마가 되면 제 자신은 사라지고 아이만 남습니다. 쑥쑥 자라는 아이와 도태되어 가는 제 모습이 대조되었습니다. 나의 면역력과 일상을 가져간 아이가 미웠고, 그냥 낳지 말걸이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세 번째,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한 결과, 우울증이 더 깊어졌습니다.
칭찬보다는 스스로를 적절히 푸시하며 채찍질하는 편입니다. 잘한 것보다 부족한 부분에 집중하게 되죠.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만족할 줄 모릅니다. 물론 덕분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시도하며 살아왔지만, 모든 것이 과하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너무 밀어붙이면 내면이 부서질 수 있습니다. 제 내면의 균열을 돌아보지 못했고, 곪아 있었던 부분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다독이며 스스로를 격려하고 쓰다듬어 줄 줄 알아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항상 하던 대로 계속 채찍질만 해댔고, 남이 아니라 제가 제 자신을 부수었습니다.
내면이 곪을 대로 곪았고, 산후 호르몬은 폭발했으며, 코로나로 단절된 세상 속에서 감옥처럼 집에 갇혀 있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있는 집은 더 이상 편히 쉴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베란다 밖의 부드러운 햇살을 보며 편안해지고 싶고,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했습니다.
‘아기와 둘이 뛰어내리면 자유로워질까?’
당시를 떠올려보면 힘들어하는 제 자신이 안타깝고 또 한편으로는 귀중한 순간을 누리지 못한 것이 참 많이 아쉽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알았다면.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알았다면. 그래서 힘들구나, 고생했어하고 스스로를 위로할 줄 알았다면. 숨 가쁘듯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새롭게 찾아온 자녀라는 삶의 변화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면.
그랬다면 덜 불행하고 조금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