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계획은 있었지만, 준비는 없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쳐 맞기 전까지는
'핵주먹'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전설적인 프로 복서 마이크 타이슨의 이 말처럼, 저도 예비 엄마로서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었습니다. 배가 본격적으로 불러오기 전까지는요.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일 때, 저는 꽤 잘 나갔습니다. 동학개미운동 열풍과 함께 제가 2019년 말에 출간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1년 동안 11쇄를 찍었거든요.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는 말이 있죠. 들어오는 제안들을 최대한 놓치지 않으려 욕심을 부렸습니다. 프리랜서는 일이 늘상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아이가 태어나면 지출도 많아질테고, 일이 있을 때 '감사합니다'하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유튜브 촬영, 자문사 PB 활동, 강의 준비, 그리고 두 번째 원고 작업까지 제 능력에 부칠 정도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뱃속의 아기를 신경 쓸 겨를은 없었습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자궁 안에 있어 보이지 않던 아기는 우선순위 밖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배가 불러오며 뭔가 이상함을 감지 하게되었죠.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버겁고, 체력은 점점 고갈되었어요.
지하철의 분홍색 임산부 배려석이 괜히 있는게 아니었어요. 임신한 여자의 몸은 너무나도 취약해집니다. 릴렉신 호르몬 탓에 손가락 마디마디가 시리고 아프고. 약했던 허리 통증은 더 심해져 임부 복대를 차고 일을 해야 했습니다. 밤에는 종아리에 쥐가 나서 비명을 지르며 깨기도 했습니다. 아기가 방광을 자극해 20~30분마다 화장실에 다녀야 했고, 1시간만 앉아 있어도 배가 당기고 아팠습니다. 태동이 강해질수록 업무 효율은 더욱 떨어졌고, 강의 준비와 촬영, 원고 작업은 몇 달씩 지연되었습니다.
결과물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것밖에 못해?’라며 스스로를 책망했고, 점점 커지는 배와 떨어지는 능률에 스트레스가 쌓여갔습니다. 임신 후기에도 스트레스는 더 심해졌고, 그럴수록 일에 더 매달리게 되었죠. 그 결과 육아용품도 준비하지 못했고, 태교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출산에 대한 기대도 없었고, 출산 후의 삶이나 육아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일을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경제적인 능력을 잃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커지기만 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면 더 큰 충격을 받기 마련입니다. 모든 이들의 예상과 다르게 아기는 출산 예정일보다 16일이나 일찍 태어났습니다. 첫 출산이었고, 배가 내려오지도 않았던 상태라 전혀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양수가 터진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SHIT… 초고가 아직 안 끝났는데, 지금 나오면 어떻게 해?’였습니다.
저는 ‘엄마’가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준비하려는 마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육아에 대해선 ‘남들도 다 하는데 나도 닥치면 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죠. 결과적으론 닥쳐서 해내긴 했지만 맘고생, 몸고생을 쎄게 했습니다. 거기에 지안이의 너무 예쁘고 소중한 시간을 만끽하지 못했구요.
몇년이 지나 다시 글을 쓰는 지금 다시 떠올려도 힘들었던 그때. 도무지 바닥이 어딘지.. 계속 추락하기만 하던 그 때 겪었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내려 합니다. 그래서 이 글을 읽은 당신과 글을 쓰는 제가 위로 받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