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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den Kim Mar 08. 2016

싱가포르 교육의 경쟁력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일까?

풍경 하나.

- 교수로부터 단 하나의 문제가 주어진다. 문제는 대략 A4용지 1매 분량. 글로벌 자동차 기업인 A기업에서 임금협상 문제로 노사분규가 일어났고, 노조 측이 요구하는 바와 사측이 요구하는 바가 A4용지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팽팽하게 맞서는 양측의 요구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매듭지어야 할 지에 대한 문제이다. 교수는 강의에 앞서 노사관계와 관련된 이론과 선례들을 미리 학생들에게 제시해 주고, 본격적인 강의 시간 대부분은 학생들 주도로 문제 기반의(project/problem-based) 해결책을 찾는데 초점이 맞추어진다. 이러한 과정에서 강의실은 학생 주도의 이론 탐구와 치열한 토론, 그리고 문제 해결을 위한 질문들로 넘쳐난다. 


- 마침내 학생들은 노조 측을 대변하는 팀과 사측을 대변하는 팀으로 나누어져 협상 테이블을 연출하게 되고, 협상과정에서 학생들은 본인들이 공부했던 협상 관련 이론들과 경영사례들을 제시하며 상대편을 설득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학생들이 비로소 강의실의 ‘주(主)’가 되어 수업을 이끌어 가는 순간이다. 교수는 마무리 이론 강의를 통해 학생들에게 노사관계에 대한 경영학 이론을 정식으로 설명해 주고, 학생들의 수업 참여에 대한 건설적 피드백도 잊지 않는다. 수업 내내 강의실은 학생들의 토론으로 조용할 틈이 없지만 결코 괴롭지 않은, 바로 필자가 속한 대학의 경영학 수업 풍경이다. 도해 볼 만한 사례 시도해 볼 만한 사례


PBL? 그게 뭐에요?

- 얼마 전 EBS 다큐프라임에서는 미국, 뉴질랜드, 홍콩, 몽골 등의 Project/Problem-Based Learning(PBL) 교육현장을 소개하며 한국의 학부모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아마도 한국의 초, 중, 고등학교 수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토론과 협업, 그리고 문제 해결 위주의 수업 풍경을 고스란히 한국 시청자들에게 전달해 주었기 때문일 터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싱가포르는 국가적 차원에서 PBL 교육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 싱가포르의 모든 Junior College(인문계 고등학교)는 학생들이 단편적이고 암기 위주의 지식 습득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 습득한 지식을 현실세계에 어떻게 적용하고 개선할 수 있을 지에 대한 방법을 도출하게끔 하는 방향으로 모든 커리큘럼을 수정했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개선된 놀랄만한 변화였다. 또한 싱가포르 교육부는 지난 2007년부터 ‘Future schools project’를 실시, 일부 Primary School(초등학교) 역시 응용력을 강화시키는 PBL 기반의 커리큘럼을 적용하며 토론식 수업으로 선회하는 중이다. 필자가 속한 대학도 개교 이래로 PBL을 교육철학으로 삼아 지금까지 전통으로 이어오고 있다. 


- 필자가 강의하며 느낀 PBL의 최대 장점은, 현실 세계에서 일어날 법한 문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하기 위해 창의적인 생각들을 자기주도적으로 스스로 도출할 수 있다는 데에 있고, 이러한 과정에서 팀원들과의 협업을 통해 비판적 사고능력과 소통능력이 증진되는 것은 학생들이 추가로 얻는 기쁨이다. 또한 사회에 나가 학생들이 직업 현장에서 맞딱뜨릴 상황이나 문제를 가정하여 강의가 진행되기 때문에 학생들의 긴장도와 집중도가 높아지고, 수업 참여도는 자연스레 높아진다. 졸업생들에 대한 현지 기업의 반응 역시 매우 호의적이다.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길래 이것도 하나 제대로 처리 못하나?”라는 익숙한 ‘한국식’ 질문은, 적어도 이 곳에서는 듣기 힘든 말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요?

- 무엇보다 싱가포르 학생들은 문제 해결을 위한 물음표 던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가 함께 어우러져 사는 아시아의‘melting pot’ 국가로서 다양성을 포용하는데 익숙하고, 그렇기에 단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성장해오며 자연스레 깨닫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문제가 무엇일까?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더 좋은 대안은 없을까?” 싱가포르 강의실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질문들이다. 싱가포르의 대학입시의 열기도 우리나라의 그것에 못지않게 아주 치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OECD가 3년마다 실시하는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에서 싱가포르는 언제나 한국을 앞지르는 상위권 국가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것을 보면 알 수 없는 묘한 질투심이 생긴다. 싱가포르 학생들은 학습에 임할 때 서로서로가 협업하여 생각을 확장시키며 물음표를 만들어 나아간다. 하지만 질문 없는 강의실과 문제의식 없이 노트필기에만 사로잡힌 한국의 수업 현장은 오히려 미래 대한민국 교육에 대한 물음표를 생기게 만든다. 


- 현재 한국의 대입제도를 고려해 볼 때, 한국의 중, 고등학교에 당장 PBL을 시도해 보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이 된다. 또한 모든 과목에 천편일률적으로 PBL을 도입하기에도 한계가 있다. (필자가 속한 대학도 일부 과목은 전통적인 교수법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대입제도에서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다소 떨어져 있는 초등학교 '일부' 과목에 있어 시범적으로 PBL을 도입하여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시험 점수 위주의 관점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국가의 백년지대계로서의 교육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이는 지난 2015년 교육부가 발표한 개정된 2015년 교육과정 중 “지식 위주의 암기 교육”에서 “배움을 즐기는 행복 교육과 학생 중심의 교실 수업”으로 전환한다는 첫 번째 총론과 명확히 일치하기에 더욱 그렇다. 한국 교육 현장의 행복한 변화를 이 곳 싱가포르에서도 들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본 글은 제가 2016년 3월 7일자 동아일보 오피니언 섹션에 게재했던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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