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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단거북이 Aug 29. 2019

한겨울에도 어김없이 나들이 가는 공동육아 아이들

어린이집 사전 참관(사전 아마 활동)

사전 교육을 마치자 우리 가정에는 부모가 직접 어린이집 일상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두 번 주어졌다. 


등원에서부터 점심시간까지 공동육아어린이집의 일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반나절 미리 볼 수 있는 '2월의 사전아마프로그램' '3월 등원 첫날 부모가 아이와 함께 반나절 적응 활동'이었다. (이런 활동은 공동육아어린이집마다 운영세칙에 따라 횟수나 기간 등이 다르기도 하고, 아이 기질에 따라 적응 기간을 조정한다. 그러니 아이의 적응 이슈가 고민이 되는 부모라면, 이 부분에 대해 희망하는 공동육아어린이집에 직접 문의해 확인 또는 조율해보는 것이 좋다.) 


짝지와 누가 어떤 활동을 참여할지 의논을 했다. 아무래도 조금 더 뭔가 궁금한 내가 '사전아마 프로그램'에 참여 하기로 하고, 짝지가 3월 '아이와 첫 등원 및 반나절 적응'을 하기로 했다. 



사전 아마에서 만난 아이

찾아보니 사전 아마를 하러 간 날은 2017년 2월 3일(금)이었다. 가는 길은? 설레었다. 발걸음도 가벼웠다. 눈길에 나들이를 가니 신발도 미끄러지지 않는 신발을 준비하고 두툼한 패딩과 장갑도 준비했다. 


어린이집 건물로 들어가서 교사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아이들이 우르르 다가와 나에게 인사를 한다.


>>> 아이1 : 안녕? 오늘 아마야?

>>> 연필나무 : 어? 어. 내가 오늘 아마야.

>>> 아이2 : 별명이 뭐야?

>>> 연필나무 : 아, 아직 정하지 못했어. 

>>> 아이3 : 내가 지어줄까? 

>>> 연필나무 : 어? (당황) 어.... 뭐가 어울릴까? 


아이들이 처음 보는 아마에게 평어로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주었다. 처음엔 놀랐지만 이내 나도 친구가 된 듯 이내 적응하여 대답한다. 낯선 이 많은 아이들에게 환대를 받다니,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교사 '꼼지' : 자자, 전체 모둠 하려고 하니 어서 호두방으로 모여라! 


커다란 호두방에 모두 둥그렇게 둘러앉아 꼼지의 말에 집중했다. 나를 오늘 나들이에 함께할 아마(아빠/엄마)라고 소개하며 점심까지 같이 먹는다고 한다. 


<사전 아마의 대략적인 일정>

>>> 9:20 등원

>>> 9:30 전체 모둠 및 방모둠 참석 및 아침 간식 먹기, 나들이 준비 

>>> 10:00 나들이

>>> 12:00 어린이집 복귀 및 점심 먹기 

>>> 13:00 아이들 자유놀이 관찰 

>>> 13:30 사전 아마 활동 마무리 및 등원 시 준비물 확인 (아이들은 각 방에서 낮잠시간 준비) 


앞으로 입소할 4살 여아의 엄마라는 것도 소개해주고. 별명을 묻길래 입소할 딸아이의 별명으로 지은 '산딸기'를 말했는데, 그게 내 별명처럼 불린 날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별명은 부모만 지으면 된다.^^; 아이는 지을 필요가 없는 것이었음.)


"얘들아, 반가워. 오늘 잘 지내보자~" 


간단히 간식을 먹고 손을 씻고 나들이 시간이 길기에 화장실을 단체로 모두 다 다녀온다. 그리고 겨울 잠바며 물통 주머니며, 장갑이며 나들이 준비에 나선다. 털모자까지 쓴 아이도 있었다. 

교사들도 채비를 하는데 모두 등산화에 등산복을 갖추었다. ^^; 정말 산에 지금 간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복장에 배낭을 메셨다. 아주 낯선 어린이집 교사의 전투적인 나들이 복장이었다. 


대문을 나서고, 아이들은 둘씩 짝손을 잡아 줄을 서서 나들이를 시작했다. 양재시민의 숲 근처 '문화예술공원'으로 가기까지 아이들은 차가 지나갈 때마다 '거미~'를 외치며 벽 쪽에 딱 붙어 섰다. 그리곤 다시 걷기 시작, 횡단보도 앞에서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얼어 있었다. 아이들이 넘어질까 걱정하는데 아이들은 엉덩방아를 일부러 찧기도 하고, 그 평지에 가까운 얼음길에서도 미끄럼을 타고 신나했다. 교사는 뒤에서 늦게 오는 아이들을 챙기며 앞을 쫓아가되 자신의 속도로 갈 수 있게 조절해준다. 


교사 꽃바구니 : "아이들이 이런 얼음길도 걸어보며 자신이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지 찾아요. 얼음길 위에 낙엽이 쌓여 있는 곳은 좀 덜 미끄럽다는 것도 알고 그렇게 길을 찾아가기도 해요. 자- 앞사람과 거리가 좀 생겼으니 조금 빨리 걸어보자~"


아이들은 가는 내내 흩어지는 눈과 쌓여 있는 눈의 질감의 차이를 느끼며, 미끄러운 얼음길과 낙엽으로 그렇지 않은 길 등을 몸으로 익혀가고 있었다. 


드디어 문화예술공원에 도착이다! 도착하자마자 교사들은 주의사항을 일러주고 아이들은 자유롭게 뛰어놀기 시작한다. 교사 중 한 분이 가져온 눈썰매를 끌고 언덕 위를 올라가서 줄을 서서 차례로 타고 내려온다. 저희들끼리 누가 먼저 왔다고 조율도 하고 형이랑 아우가 같이 타기도 하고 내려오면서 꺄르르- 신나한다. 아이들 웃음 소리에 추운 날씨에 걸어온 내 마음도 스르르- 녹는다. 

눈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아이들 © 함께크는어린이집


한 켠에서는 이렇게 썰매를 타고 신나게 놀고, 또 다른 한 켠에서는 어린이집에서부터 걸어오면서 계속 내 곁에 머물렀던 아이가 나를 부른다. 그러더니 내 손을 잡아끌고 자신의 놀이 속으로 나를 초대한다. 


우리는 배 타고 노 저어서 물고기 잡으러 가자!
물고기도 잡자! 낙엽을 물고기라 하자!
에잇! 잘 안 잡히네? 좀 도와줘!
노 젓고 물고기 잡기 © 비단거북이


자, 이젠 잡은 물고기를 꼬챙이에 꽂아 구워 먹자!
물고기를 맛나게 먹으려면 소금을 골고루, 조금씩 잘 뿌려줘야 해.
솔솔~
으-음~ 역시 모닥불에 구워 먹어야 제맛이야!
잡은 물고기에 소금 뿌려 구워먹기 © 비단거북이


그러더니 날 관찰한다. 갑자기 나를 그려주겠다고 한다. @.@ 


아, 붓이 어디에 있지?
저기에서 나뭇가지를 가져와야겠다!

흠- 얼굴이 달걀형이야.
머리는 하나로 묶었군.


날 계속 반복해서 올려다보며 형태를 그려나갔다. 


순간 나는 정말 너무 행복했다. 내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가 내 얼굴을 관찰하며 이렇게 그려주다니! 기분 좋은 낯설음이었다. 함께 즐겁게 놀고 어린이집으로 돌아오는데 아이가 그런다. 


나는 노는 것이 제일 좋아. 그다음은 그림이야!


'그래, 노는 게 최고지! 노는 게 밥이고 웃는 게 반찬이고! 그게 너희가 건강하게 커가는 거지.'

 

눈이 쌓인 공원으로의 산책을 마치고 다시 어린이집으로 들어와 젖은 옷을 정리하고 손을 씻는다. 

둘째를 낳고 조리를 끝까지 잘 못 해서 인지, 운동 부족인지 이 잠깐 나들이가 뭐라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오늘의 메뉴는 '닭개장, 매실장아찌, 김치'라고 한다. 

'아니, 닭개장을 아이들이 먹는다고?'

김치를 안 먹는다고 학대를 당한 어린이집 사건도 있던 때라 어린이집에서 아저씨들이 먹을법한 이런 메뉴는 낯설기 그지없었다. 약간 두렵기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점심 - 닭개장, 매실장아찌, 김치 © 함께크는어린이집

 

그런데 이런 나의 우려는 순식간에 날아갔다. 나들이로 에너지를 많이 소진해서인지 아이들은 너나 할 거 없이 잘 먹는다. 붉은 닭개장 국물도 후루룩 잘 마신다. 못생긴 쭈글이 매실장아찌와 김치도 어찌나 잘 먹던지... 정말 '폭풍 흡입'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일 거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교사와 선배 아마들에게 하니, 아이들이 잘 먹는 시기와 침체된 시기가 있는데 아마 이때가 졸업을 앞둔 7세들의 먹는 사이클이 최고조일 때였던 것 같다고 한다.)


앗 뜨거- 호호 불며 냠냠쩝쩝 닭개장 © 함께크는어린이집


그러다 이곳저곳에서 나지막이 들린다. 


한 그릇 더 주세요~


아이들의 빈 그릇을 채워주시던 교사분이 내게 여쭤보신다. "맛이 어떠세요? 좀 더 드실래요?" 

분명 난 아침에 이런 다짐을 했었다. 오늘은 내가 어린이집에 처음 왔으니 좋은(?) 이미지를 남기자! '한 그릇 다 먹지 말고 조금 남기자.' 내가 갑자기 왜 이런 결심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여하튼 그랬다. 그런데 교사의 제안을 듣자마자 나는 빈그릇을 빼꼼히 내민 채 말한다. 


너무 맛있어요. 진짜 한 그릇 더 먹어도 되어요?


조금 부끄러운 듯했지만, 그렇게 나는 묵묵히 한 그릇을 더 먹고, 일어났다. 아이들은 빈그릇과 수저를 차곡차곡 쌓아 큰 스테인리스 다라에 넣으며 정리했다. 나도 나의 빈그릇을 정리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일어났다. 아이들은 치카를 하고 자유 놀이를 시작했다. 나는 원장 역할을 하는 대표교사와 만나 준비할 서류와 준비물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날 내 기억에는 '신나게 눈과 자연 속에서 뛰노는 아이들', '그 속에서 각자 놀라운 놀이를 하고 있던 아이들', '우걱우걱 닭개장과 매실장아찌, 김치를 폭풍 흡입하던 아이들', 무엇보다 '나를 처음 그려준 아이'가 깊이 새겨졌다. 



그리곤 나도 그 아이를 그리며, 앞으로 함께크는어린이집에 등원할 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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