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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Apr 12. 2019

나이가 들면 배고픔이 사라집니까

나이가 들면 배가 줄어.


 나의 수염이 그리 인상적이지 않은가 하였다. 짜장면 곱빼기를 시키는 사람을 많을 테지만 나처럼 수염을 기른 사람은 몇 없을 텐데. 자주 가는 동네 중국집을 말하는 것이다. 늘 처음 보는 사람 대하듯이 손님 맞는 아주머니가 주문을 재촉하기에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곱빼기를 할지 보통을 할지 고민하는 중이라 했다. 아주머니는 곱빼기가 그리 많지 않으니,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저는 저번에도 왔는데 넉넉한 양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곱빼기를 시켜두고도 불안에 떨었다.



 맛이 좋기도 좋거니와 시간을 두면 배가 일찍 불러버려서 후루룩 먹었다. 면이라는 건 배 속에 들어가고서도 자꾸만 부풀어 위를 누르니까, 내 속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말할 것도 없이 불편할 것이다. 아주머니는 그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허겁지겁 먹는 사내를 보며 "거 봐, 많지 않지." 하는 게 아닌가. 보통에서 딱 천 원을 더하여 제공하는 곱빼기는 양이 많기로 자랑해야 할 일인데, 아주머니는 어째서 많지 않음을 자랑하고 있을까.


 식사를 시작하고 십 분도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통하여 마지막 젓가락을 앞에 둔 채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마침 다른 사내 하나가 들어와 곱빼기와 보통을 고민하는 모습을 본다. 아주머니는 곱빼기가 양이 많다고, 많아서 못 먹을 것이라고 사내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허기가 도져 못 참고 버스에서 내렸다. 시장 앞에서 내려서는 곧장 걸어 떡볶이 집까지 간다. 떡볶이를 휘휘 저으니 김이 물씬 올라 먹음직스럽다. 아주머니가 이르길 오늘은 바람이 차서 손님이 많이 다녀가지 않았다고. 남은 양이 넉넉하니 천천히 고르라 했다. 이 집은 볼 것도 없이 모닥치기가 명물이라 하나 달라 하였는데 가게 안 쪽방에는 학생들이 있어 바깥에서 먹어야 한단다. 괜찮습니다.


 바깥에서 식사하는 사람이 하나쯤 있으면 사람들은 오며 가며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참 보기 좋게 먹음직스러운 그 음식을 못 견디고 하나 둘 주문을 한다. 모닥치기의 양은 상당하여 사내 홀로 우악스럽게 먹으니 함께 해치울 기분이 드는 것일지 모른다. 내가 바깥에 앉도록 둔 것에 그런 의중이 있었는지 아주머니는 뜨끈한 어묵을 하나 툭툭 썰어 종이컵에 담아 주었다. 이건 서비스.



아유 저걸 다 먹어?


 들어온 여자 하나가 듣는 사람 정하지 않은 말을 한다. 그런 말이야말로 들리는 사람 모두를 신경 쓰게 만들 수 있다. 아주머니가 다시 떡볶이를 휘저으며 대꾸해준다. 시장통의 장사는 아는 듯 모르는 듯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그런 척 대화하는 것에 익숙한 것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다.


"남자들은 고등학생부터 시작해서 다 먹는다고. 우리 같이 나이가 들면, 배가 줄어."


 먹기에 집중하던 나는 멈칫하고 그 말을 견인한다. 아뿔싸, 중국집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이 마침내 실마리가 잡히는구나! '나이가 들면 배고픔이 사라집니까.' 묻고 싶던 차에 그런 물음으로 대화에 끼어들기는 조금 거북하지, 우린 서로에게 너무 낯선 사람이지 싶어 관두고 만다.


"배가 주나? 돈을 쓰질 못하는 거지."


 이 소박한 자조를 듣고 대화에 끼어들지 않기를 잘했다 싶다. 묻지 않고도 궁금한 대답을 얻었으니, 만족스러운 나의 엷은 웃음이 들킬까 순대며 튀김을 입에 가득 밀어 넣는다. 아, 나는 충분히 나이가 들었다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미련토록 먹는 것도 젊을 때야 가능한 것이라니. 늙음으로 잃게 될 것이 또 하나 늘어난 나는, 그저 그 말에 깔깔깔 웃는 아주머니들과 함께 마음 놓고 웃었다. 이건 아마 잃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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