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하 Apr 05. 2019

사막에서 자라는 식물

억척스럽게 자란 것들


 주인장이 카페에 둘러진 돌담 곁으로 주룩주룩 난 풀을 뜯습니다. 줄기가 곧게 뻗은 것이 고수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말 안 듣게 억센 줄기가 미나리스럽기도 하기에, 아니 무얼 그렇게 뜯으세요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이게 민트예요. 제주에는 민트가 그렇게 잘 자랍디다.”


 잔뜩 뜯어다 차를 끓일 것이라 했습니다. 하도 번져서 처치가 곤란한데 어디 키워볼 생각 있으면 좀 뽑아 가라고도 했습니다. 워낙 강인하여 쉽게 죽일 수 없을 것이라면서요. 저는 그저 웃음을 치고 말았지만, 나의 동네에 퍼져있는 로즈메리나 민트를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제가 더 돕지 않더라도 식물은 충분하게 돌아다니며 자라고 있었습니다.



 전 필명까지 박하로 정할 만큼 민트가 어디에 들어있어도 환장합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박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그 초록 줄기가 돌담을 넘을 크기로 잘 자랐기 때문입니다. 기르지도 않았는데 절로 자란다고 주인장은 툴툴대었으나, 그런 신소리를 해가며 만든 차는 훌륭했습니다. 자고로 박하차는 상쾌한 향으로 마시는 것입니다. 어디에 넣어도 향으로 존재를 말할 뿐 맛에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간혹 치약 맛이 난다고 하는 사람이면, 지천에 박하가 널려있다 한들 한 줄기도 내어주지 않고 싶습니다. 상쾌한 향이 필요한 치약에도 박하가 쓰이는 것을 왜 모를까요.




 그런 박하를 이전부터 쭉 사랑해왔어도 정작 생물로 처음 만난 것은 사막이었습니다. 사막하면 누구나 단번에 떠올리는 식물은 선인장이지만, 모래언덕 말고 사막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키우는 것은 민트가 더욱 많습니다. 우리가 보리를 담가 물을 잔뜩 끓이면 물병에 나눠 담아 두고두고 먹듯, 사막에서는 민트가 그렇습니다. 알고 보면 억척스럽게 자란 것들은 향을 뿌리고 갑니다.



 아침이면 숙소 주인이 텃밭을 돌며 민트 잎을 땄습니다. 숙박객들에게 제공할 식사를 준비할 때 가장 앞서 하는 일입니다. 한 번은 아침 일찍 그를 따라나섰는데, 텃밭이라고 도착한 곳은 흔적이 없습니다. 밤새 불어댄 모래바람 때문입니다. 주인이 신을 벗고 맨발로 모래를 툭툭 걷어차자 푸른 것이 하나 둘 고개를 듭니다. 손아귀에 가득 찰 정도로만 따서 돌아옵니다. 이 정도면 오늘이 아니라 내일까지도 먹기에 넉넉할 것이라 합니다.


 모래사막으로부터 오는 열기가 대단해서 가능하면 차가운 음료를 마시고 싶은데, 왜 뜨거운 차를 끓여마시느냐 물으니 함께 온 낙타 몰이꾼이 먼저 대답합니다. 건조한 곳에서 목을 보호할 수 있는 데에는 더운물이 제격이랍니다. 습기가 기관지에 샅샅이 돌면 갈증은 도리어 줄어들고 시원한 기분은 민트가 다 해주니까요. 식물이 인간의 숨통을 트이게 해 주다니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몰이꾼의 말에 일리가 있어 한참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주인이 말을 덧붙입니다. 물이 썩 맑지 않은 것과 냉장고 돌릴 전기가 부족한 것은 비밀이라고.





 그래도 사람이 사는 곳에는 시장이 열립니다. 평소 거리에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장날에 즐비하고, 이곳에도 삶이 있다는 증명 같기에 좋아합니다. 골목을 통틀어 구석구석 쌓인 물건을 둘러보려거든 하루가 모자란데, 유독 민트 파는 노인에게 눈이 갑니다. 민트는 노인이 어찌 들고 온 걸까 궁금할 정도로 수북이 쌓여 있어서 과연, 사막은 민트가 으뜸이라던 말이 맞습니다.


 그마만큼 잘 자라는 민트가 돈으로 사고파는 게 아닐 정도로 흔하여, 여기 사람들은 시장에 민트를 짊어지고 나오는 상인을 헐뜯는 다군요. 다만, 큰 음식점이나 학교와 같이 대량으로 구해 써야 하는 사람들만큼은 민트를 사러 시장에 나와야 하니까 그들이 주요 고객인 셈입니다. 그리하여 암묵적으로 민트를 파는 일이 허락된 사람은 허리가 좋지 않은 노파의 몫입니다. 단순한 소일거리를 노인의 몫으로 남겨 둔 이 나라의 불문율이지요.


"값도 딱 생각한 만큼만 받을 겁니다.”


 정말 그럴까 하여 한 다발 집어 들자 노파는 냉큼 헐값으로 가져가랍니다. 한 손에도 잡을 수 없을 만큼 두툼한 다발의 값어치가 동전 하나라니 당혹스러워, 노인의 눈이 침침한 것은 아닐까 걱정하였습니다. 어차피 산 것, 금세 시들어 버릴 테니 마주치는 사람마다 조금씩 나누어주기로 합니다. 푼돈으로 내는 생색만큼 즐거운 것은 없습니다. 낯선 생김의 이방인이 잎사귀 하나 건넬 때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코에 대어 향을 맡습니다. 코밑이 금세 화사할 것입니다.


이전 12화 시간을 들여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