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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Mar 29. 2019

시간을 들여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

발효에 대하여


 반죽을 만듭니다. 빵을 만들기 위한 과정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으로, 물과 밀가루가 반드시 필요하지요. 물론 나머지 재료도 만만치 않은 비중을 자랑합니다. 소금, 설탕, 이스트, 버터, 달걀까지. 계량컵에 계산된 값을 담아 넣은 뒤 솥을 기계에 달면 쇳덩어리가 사람을 대신하여 휘휘 젓습니다. 그 기계는 속도마저 조종할 수 있는데, 이 작업을 직접 인간의 손으로 했더라면 금방 지쳐버렸을 것이 눈에 아주 선합니다. 아니면 훌륭한 팔근육이 완성되거나요.


 빵은 한 번에 대량의 반죽을 해둡니다. 1차 발효를 거쳐 부풀린 뒤 적당량을 떼어 모양을 잡아 다시 2차 발효를 합니다. 발효에 충분히 시간을 들이지 못하면 보잘것없이 작습니다. 이건 외부요인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에 요즘같이 입김 나오는 이른 아침이면 더욱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다른 방식의 제빵은 잘 알지 못하지만, 제가 일하는 가게에서 쓰는 것은 단 한 종류이기에 외울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다만 스스로가 빵의 입장이 되어 기민하게 살펴야 합니다. 발효가 충분한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벌써 수십, 수백 번 반복하여 겪은 경험상의 데이터를 따르면 1차 발효는 빵의 크기를, 2차 발효는 빵의 부풀기를 결정짓습니다. 그리하여 작지만 잘 부푼 빵이 나오거나 크지만 납작하게 생긴 빵이 나오기도 하지요. 잠이 덜 깨어 달걀 하나를 덜 넣거나 더 넣으면, 물을 10그램이라도 잘못 맞추면, 하다못해 오븐에 넣어두고 깜빡하면 일련의 과정은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한 번은 장사 시간이 미처 되지 않았을 때 손님들이 밀려와 급한 마음으로 발효를 끝냈습니다. 발효는 사람이 끝낸다고 끝내는 일이 아닌 것으로 곧장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습니다. 풍선처럼 기울어버리는 반죽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다가 그날의 장사는 망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런 연약한 빵이 가까스로 완성되고 나서도 사람의 입에 들어오기까지 다른 조리과정을 더 거치기도 합니다. 바짝 구워 수분을 마저 날리거나 잼이며 소스를 바르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 맛은 후천적인 방법으로 달라지는 것이지만, 선천적인 본연의 맛을 담당하는 것은 역시 발효가 됩니다. 버터를 잔뜩 넣기만 하면 맛이 고급스러워질 수 있을까요. 막 구운 빵을 벌려 찢었을 때, 결 사이로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퍼진 미로를 본다면 알 수 있습니다. 발효가 빵의 공간을 빌려 공기를 가둬 두는 것을.



 제빵을 본격적으로 배우는 친구 하나가 발효실 앞에서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반죽을 자세히 관찰하면 내부로부터 보글보글 끓어 가스가 차는 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 과정이 신비하여 자주 목격하러 온다고 했습니다. 언젠가 발효를 해두고 까맣게 잊어 한참 뒤에 왔더니, 발효된 가스가 바깥으로 전부 삐져나와 터진 풍선을 보는 것 같았다 했습니다. 이미 멀리 날아가 버린 것을 주워올 수도 없고 하여, 몽땅 버릴 수밖에 없다고도 하였습니다. "식재료가 아쉬운 건 물론이고, 쓰레기통에 찐득하게 얽힌 반죽들을 보니 내가 알아봐 주지 않은 탓에 이 꼴이 났구나 싶었어.”


 빵의 근본을 이루는 밀가루는 중력분과 강력분같이 태생으로 달라질 수 있지만 어떻게 배합하고 굽느냐에 따라 맛과 생김 또한 천차만별입니다. 적당한 위치와 때에 쓰이는 것들이 있어 존재합니다. 그러니 태초의 밀가루 같은 것이야 어떻든 탓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발효로, 꾸준히 지켜보는 습관이 좌우합니다. 전 언제나 다급하여 발효를 끝내기 전에 꺼내는 습관이 있었는데 친구의 말에 따르면 발효는 너무 오래 두어도 망치더군요.


 이렇게 복잡하며 섬세한 발효를 설명하고, 아무래도 우리가 잘 아는 구석과 닮은 부분이 있기에 빗대어 치환해보니 꼭 맞습니다. 이를테면 자주 써먹기 좋은 ‘삶’ 같은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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