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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Mar 22. 2019

아닙니다 아버지

그리하여 아닙니다 아버지.


 아닙니다, 아버지. 아이가 성적을 잘 받지 못한 것은 꾸중할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즐거워야 할 식사 자리가 아닙니까. 이렇게 먼 동네까지 나들이를 나온 것은 분명 좋은 의도였겠지요. 가족끼리 지낼 시간이 많지 않은 요즘이면 저라도 그런 마음을 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은 식사가 준비되어 나오기 전에 어느 대화를 꺼내는 것이 적당한가 생각하길 관두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셨습니다. 마주 앉은 어머니도 그렇게 하고 있으니 크게 문제 될 일은 아닙니다만, 아이가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 여간 못마땅한 일이 아니라 입을 여셨겠지요.


 성적은 바로 얼마 전에 나온 듯합니다. 과목마다 묻는 점수를 아이가 줄줄 말하는 것을 보면요. 거기에 만족스러운 점수도 있었습니다. 듣는 저도 흡족할 만큼 괜찮은 점수가 당신은 고까웠는지 화학이나 생물이 그리 큰 비중은 아니라 못을 박았습니다. 아이의 표정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그런 과목 역시나 선생님들께선 스스로 가르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해당 성적을 무시당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때 마침 나온 식사에 아이는 숨길 수 없이 기쁜 표정이 됩니다. 좋아하는 음식인 걸까요, 아버지의 말이 끊겨 다행이라 여긴 것일까요. 괜히 저도 비슷한 마음이었던 시절이 떠올라 쓴웃음을 짓고 말았습니다.



 잠시 저의 이야기를 하지요. 저의 동네엔 그 흔한 초밥집 하나가 없었습니다. 덕분에 외식은 늘 중국집이었습니다. 제 글에 중국집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였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성적을 묻는 제 아버지의 말에 벙어리가 되어 있던 것도, 짜장면이 나오는 시간이 어쩜 그리 긴지 속이 탔던 것도,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음식을 먹고 체한 그날. 저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자리에서 그렇게 불편할 수도 있구나 깨달았습니다.


 또 다른 어느 해 중간고사 결과가 나오던 날, 친구들을 그러모아 집으로 부른 날. 이제 와 솔직히 말하면 제 아버지의 매서운 불호령이 겁이 나 그랬었습니다. 집에 막 도착한 아이들을 곧장 돌려보내지 않았더라면, 모른 척 혼내길 하루만 미루었더라면. 저는 그나마 어깨를 활짝 펴고 걸을 줄 알았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에 흡족하지 못한 성적을 받지 못한 저의 불찰인 것일까요. 학생의 본분을 지키기 위하여 무릇 추억이라 부르는 땡땡이조차 저지르지 않은 제가, 공부에 쓰이는 머리는 과연 아닐 것이라 짐작할 뿐입니다.




 당신의 나이 때를 걷는 남성이 응당 그렇듯 당신 역시 쫓기듯 식사를 마쳤습니다. 아직 느긋하게 먹던 아이가 부랴부랴 식사를 따라 마친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식사를 마친 당신이 어느새 말을 이어 성적에 관한 인생의 수많은 조언을 쏟아내는 통에 밥에 집중할 수 없을 일입니다.


 그러나 아이의 마음은 잘 알 것만 같습니다. 여윳돈이 있거든 당장이라도 자신의 몫을 지불한 뒤 자리를 박차고 나설 일이지만 자신의 몫조차 버거운 나이인 것을 아버지도 저도 알지 않습니까. 금전적인 나약함을 깨닫는 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자식의 수치를 아버지도 기뻐하시지는 않겠지요. 본래 자식에게 얻어먹는 것을 허울같이 여겨 껄끄러워하는 아버지들은 ‘네까짓 게 뭔 돈을 벌어 나를 먹이느냐’ 표현하곤 하는데 그것도 아주 잘못된 방법입니다. 큰돈을 벌어야만 한 끼 대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자식에게서 무엇을 걷으려는 심보는 접어두셔야 합니다. 뿌린 것으로 스스로의 책임을 다 한 것이니 거두려는 마음은 욕심입니다. 잘 자라지 않는 것을 원망할지언정, 마음대로 자라지 않는 것을 탓하지 마십시오. 아이는 자신이 태어났을 때 기뻐하던 아버지의 표정을 스스로가 잊지 않았으리라 굳게 믿기에 당신의 말을 듣고 있을 것입니다. 끝내 사랑을 보여주지 않는 모습에서 아이의 마음이 원망으로 돌아서는 때는 섣불리 오는 것이 아닙니다. 켜켜이 쌓여 때가 될 뿐이지요.


 그리하여 아닙니다 아버지. 괜찮은 대화를 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착각입니다. 아이가 혼자서 할 줄 모르는 것들이 많다는 말을 그렇게 하시면서도, 아이의 옷깃에 음식이 묻은 것은 왜 떼어주지 않으십니까. 이렇게 멀리 앉은 제게도 그렇게 선명히 보여 묻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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