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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Mar 25. 2023

젊은 개츠비

부모의 재산으로 가꾼 인생을 자랑하지 말라.


주원이는 당초 계획한 프리다이빙을 하기 위해 한국인들과 친해졌다. 나는 그럴 생각이 하나도 없었지만 말이다. 다행인 건 덕분에 더 좋은 집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이었고, 정말 좋은 테라스에 앉아 하루종일 담배를 피우며 글을 쓸 수 있었다. 모두가 별로인 건 아니었다. 첫날 우리가 겪은 생고생을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다가와서 교류를 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집트까지 온 이상 여행자 사이에선 동질감이라는 게 존재했다. 언젠가 또 어디선가 다시 만날 사람들이 생기는 건 즐거운 일이니까. 대부분 한국에 돌아가서라도 만나리란 꿈을 꾸겠지.


비가 잘 내리지 않는 나라란 태양빛만 부여받는다는 말과 같다. 무언가 자라기가 어려운 건 식물뿐 아니라 인간의 여유도 함께 태워버리는 듯했다. 장사꾼을 빼곤 모두 말을 아끼며(그게 말할 에너지를 아끼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과묵하게 햇빛에 얌전히 타들어가고 있었다. 뛰노는 건 아이들과 외국인들 뿐이다. 바다가 푸르다하여 모두 다 뛰어들 필요는 없다. 나도 뛰어들 필요는 없었다. 원고를 마무리지어 책으로 엮을 시간을 생각하며 그나마 그늘이 진 테라스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해가 지면 산책을 나섰다. 가로등도 없는 거리는 음산했지만 술을 마신 치들이 시끌시끌 돌아다녀 떠들썩했다. 성서에 멸망했던 도시의 형상이 이렇지 않을까. 시원한 밤이 오히려 나와 같은, 그리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차라리 나은 시간이어서 그럴까. 외지인들은 잠도 안 자고 노는 듯했다.


이집트, 시나이 산 (2022)


시나이 산 트레킹 모집합니다.


모처럼 아는 이름이 나온 산을 오르는 건 어떨까 했다. 사람이 많이 모여야 저렴해지는 관광 상품의 특성 탓에 이런 건 합류하는 게 여러모로 편리하다. 주원이는 수영에 지쳐 가지 않겠노라 했고 나는 주전부리와 물을 가벼이 챙겨 약속 장소로 나갔다. 아는 얼굴이 몇 보여 인사하고 주최자들이 신변잡기를 하고 있어 간단히 답하고 말았다.


주최자의 이름은 제이였다. 가명으로 쓸 이유는 없으나 난 그녀의 이름을 까맣게 잊었고 더불어 이름을 기억할 필요도 없거니와, 이후로 진행될 이야기가 아주 성가신 그녀의 태도를 적는 맥락으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주최는 무리였다. 제이와 제이의 동생, 제이의 친구, 제이의 아는 언니로 구성된 4명의 여자들이었다. 묻지도 않은 나이와 이런저런 사연을 간단히 듣자 하니 바다레저에 지쳐 산을 보고 싶다는 말이었다. 넷은 제주에서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사이라고 했다. 제주살이야 나도 했으니 말할 거리가 있었지만 토박이들 앞에서 주름잡을만한 일은 아니었다. 시나이 산으로 가는 승합차엔 한 자리도 비지 않고 사람이 들어찼다.


이집트, 시나이 산 (2022)


다합으로부터 출발하여 두 시간쯤 걸리는 거리였다. 저녁에 출발하여 자정쯤 도착하면 산행을 시작하고, 해가 뜨기 전 정상에 도달하여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 일정이었다. 계획대로라면 이동 중에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했으나 제이는 그렇지 않고 주최자의 면모를 보이려 했다. 음악을 골라 틀고, 각자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얌전히 이어폰을 꽂은 채 눈을 감고 자던 나는 중간에 깨어 구글맵을 확인하거나 물을 삼키거나 했다. 이윽고 모두가 잠잠해진 시간, 그리고 내 자리는 제이의 바로 옆이었다. 제이 너머로는 제이의 아는 언니 에밀리가 있었다. 역시 가명이고. 셋이 나란히 앉은 맨 앞 열 좌석에서 제이는 내게 말을 걸었다.


여기서 뭘 해요?

그렇게 대뜸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날이 선 채 반응할 필요는 없는 말이다. 그러니까 다합까지 와서 무얼 하느냐는 말은, 보통 프리 다이빙이나 스쿠버 다이빙 중 하나를 답하란 질문이다. ‘아무것도요.’ 최대한 줄이고 줄여 한 대답은 제이의 머릿속 담긴 답변의 범주에서 벗어난 문장이었다. “그럼 여기서 뭐 해요?” 내 쪽에선 충분히 예상된 추가 질문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되나요? 웃으며 말하니 제이는 ‘아니 그게 아니라..’ 하며 말 끝을 줄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하러 왔어요. 궁금해서 시나이에 가고 있지만. 기억을 끄집어내 적고 보니 싹수가 없다. 어투는 분명 그렇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집트, 시나이 산 (2022)


농담 같은 말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니 궁금증이 도졌는지, 제이는 다짜고짜 내 삶의 요모조모를 파헤치고 싶어 했다. 어쩐지 의뭉스러운 나의 삶은 명료했고, 부연설명을 붙여줄 만큼 친절하지도 않았기에 믿고 싶으면 믿고 안 믿을 거면 말라는 식으로만 생각했다. 어차피 이집트의 황무지를 달리는 낡은 승합차에서 한 번 보고 말 사람의 인생사를 기억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은 내가 좋아하는 일에서만 발동하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셈과 다를 바 없고.


제이는 그렇게 무슨 이유로 그리 오래 여행을 하느냐며 거듭 물어왔다. ‘그 이유를 찾으려고 발버둥 치는 거겠죠.’라 답했다. 또 무슨 계기로 시작했느냐고 물어온다. 답할 말을 차분히 고르다가 ‘처음엔 단순히 한국이 싫어서’ 떠났다고 했다. 미처 말을 잇기도 전에 노기를 띠며 쏘아붙인 건 제이였다. 왜 한국이 싫냐고, 한국만큼 좋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치안과 각종 인프라와 또 내가 모르는 한국의 어떠한 장점들을 열거하면서. 나는 익숙한 패턴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 웃고 말았다. 제가 그쪽에게 그런 것까지 말해줘야 하나요?


네 듣고 싶으니까요.

가뜩이나 재미없는 사람이 재미없는 일 하면서 재미없게 살다 죽겠구나 하는 미래가 그려지길래요. 해외도 똑같을 텐데요. 물론 외국인들도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있겠죠. 그럼 해외가 뭐가 더 나은데요? 가끔 받는 느닷없는 선의. 동정이 배제된 순수한 호의. 한국에서 그런 걸 느껴본 적 없다고요? 글쎄요, 친구들 빼고는 거의 없는 것 같은데. 아예 없다고는 못 하겠지만 이 편이 빈도가 더 높죠.


이집트, 시나이 산 (2022)


제이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무리를 하나하나 깨워 내 대답에 대한 분통을 터트렸다. 한국에서 호의를 못 받아봤대. 제이가 목표하는 바는 뚜렷했다. 듣자 하니 그녀는 동생과 함께 독일에서 유학을 하며 살고 있었다. 인생의 자랑할 고생이 타지 생활과 아르바이트였던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듣고 알았다. 한국이 그리운 걸까. 그럼 돌아가면 될 것을. 나의 삶은 제이에게 혼란이었을 테다. 올곧다 믿고 인내해 온 스스로의 세계와 그 흐름에 위배되는 사람이 눈앞에 나타났으니.


그럼 그쪽은 한국이 뭐가 그렇게 좋은가요?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한국은 좋은 나라여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요? 그건 한국이 가진 시스템의 장점인거지 본인이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닌 것 같은데요. 본인의 투철한 애국심을 제게 강요하진 마세요. 제이가 멈칫한 사이, 난 대답에 덧붙여야 했던 말을 이었다. 전 그런 질문을 하는 한국 사회가 싫었어요.


이집트, 시나이 산 (2022)


불안하지 않아요?

정적이 흐르는 차 안, 어느새 모두가 이 쪽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끄러웠으니 그럴 법도 했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에밀리가 다른 질문을 건넸다. 그것도 역시 한국이 싫은 이유 중 하나였죠. 딱 그 질문요. 오해하지는 마세요. 그런 질문은 정말 수도 없이 들어요. 기분 나쁘지도 않고요. 다른 외국 친구들은 해보라고 응원한다고 더 묻지 않았는데 꼭 물어보던데요. 불안하면 이렇게 오래 못 다녔겠죠. 전 불안하지 않아요. 어떻게든 저 하나는 건사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요. 누굴 책임지라면 자신 없지만. 아마 그 질문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없어도, 본인이 불안해서 그렇겠지. 생각하고 말아요.


‘이상하다 불안해야 하는데..’ 옆 자리에 앉은 제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도발했다. 그 말에 말싸움을 일삼던 옛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젊은 개츠비들이 썩 달갑지 않았다. 좀 더 어렸을 적엔 사사건건 시비에 분투했으나, 호기심을 가장한 무례가 얼마나 악랄했는지에 대해 매번 파고들기도 피곤한 노릇이었으니까. 난 안정감만을 따라가는 삶에 대해 부정적이었을지언정 상대의 선택을 부정하진 않았는데, 자신의 삶이 틀리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이용되는 건 사양이었다. 더구나 본인이 듣고자 한 삶이 아닌가. 기분 나쁘지 않음과 기분 나쁨은 한 끗 차이다. 무례하시네요. 제가 불안하지 않은데 거기다 불안을 부여하려고 하지 마세요.


이집트, 시나이 산 (2022)


당초 다섯 시간으로 계획된 등반은 너무나 쉬웠다. 다른 사람들을 한 번에 모아 올라가야 하기에 속도를 맞추긴 했지만, 날만 밝았더라도 혼자 먼저 올라가 누워 쉬고 있었을 것만 같았다. 연약한 휴대폰 불에 의지해 걸어오는 제이와 에밀리, 그리고 다른 일행들은 자꾸만 미끄러졌고 나는 말을 더 섞진 않았으나 헤드랜턴으로 말없이 그들의 발 밑을 넓게 비춰주었다. 결국 인간답게 살기 위한 징표는 이런 사소한 호의에 기반하니까. 감정이 섞이지 않은 선의.


한국이 뭐가 그렇게 싫은데요? 다시 곱씹어보아도 제이의 물음은 어려웠다. 종합적으로 보면 이런 류의 감정을 쉽게 느끼도록 만드는 점이었으나 그게 비단 한국만의 특수성이라 보긴 어려웠다. 어느 나라에나 잔재하긴 했지만,  아니라고 단정 짓는 것 역시 자칫 사대주의로 보이기 쉬우니까. 제이의 삶은 불평이 가득해도 좋은 쪽에 가까울 것이다. 이렇게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잠시 여행을 오는 것도 보면.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집세와 식비 전반을 감당하기란 어려울 텐데도 고생만 드러내는 건 다소 오만하게 보여서 여전히 힘들다. 부모의 재산으로 만들어진 세상이 얼마나 완전한가에 대한 설교는 피로하다. 내가 사회화 과정에서 탈락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런 관념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안다.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 내지는 못 하겠지만 대화는 이토록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b__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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