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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에이치제이 Feb 17. 2022

그, 2월 17일 >> 18일 ..PS

꼭 29번의 잠 - (미완성의 나머지) 22 파리 >> 서울 


꼭 21번의 잠, 여행 >> 삶

+

END 80일의 여행이 끝이 났지만, AND 삶은 계속되고




+++


그, 11월 마지막 날

그곳에 갔을 때 시차만큼의 시간이 나에게 더 주어졌는데

이곳에 돌아오니 시차만큼의 시간이 나에게서 사라졌다

시간은

한치의 오차도 없다 누구에게도 특별 대우는 없다

우주의 시간은 너무나도 공정해서

시간을 벌었다는 생각은 오해고 착각이었다는 것을

처절하게 알려주며 모든 시간의 속도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2월 17일 파리에서 출발했는데 일상으로 돌아오니 서울의 날짜는 2월 18일이다





(핸드폰으로 찍은 게 전부인 마지막 날의 사진)

오후 시간에 출발하는 항공편을 끊어두었었다 떠나는 날 조금이라도 여유를 두고

어디라도 들렀다가 공항으로 가겠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했었기 때문에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끝내고 습관처럼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일찌감치 체크 아웃을 한 뒤에 지하철을 타고 뤽상부르 공원으로 갔다

다행인 것은

뤽상부르 공원 역도 샤를 드 골 공항으로 가는 직항이 있는 RER B선이라는 것 그래서

공항 철도를 타야 할 pm2시경까지 공원에서 줄곧 햇빛을 쬐며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바라는 것은

이 느낌을 잊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마음 이번 여행을 통해 느낀 것들 모두

그것들이 잊히지 않고 내 안에서 삶을 살아가는데 소중하고 중요한 에너지가 되기를 바란다

그 바람이 100% 실현되지 않을 거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수많은 여행에서 그랬던 것처럼

비행기만 타고 돌아오면 건너지 않았어야 할 비밀 통로를 지나온 것처럼 그래서

통로를 지나기 전의 모든 기억을 어디선가 깡그리 잃어버리는 것처럼 

현실의 땅에 발을 딛자마자 바로 몇 시간 전의 시공간에서의 일들이 없던 일처럼 사라지고 

그건 꿈이었나 싶은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으니까

그래도 믿는다

쓱 지나간 길 위에서보다 더 오래 더 깊이 마음에 새겨 놓은 이 기나긴 시간들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 느낌의 일부는 어디선가 꿋꿋이 살아남아 있을 거라고

그러다 별안간 툭툭 튀어나와 그때가 사라지지 않고 여기 있노라고

그렇게 행복의 속삭임을 들려줄 거라고 믿는다 제발 그러기를 바란다

시간이 됐다

마지막으로 개찰구를 열고 들어가 마지막으로 개찰구를 열고 나와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잇는 중간계와 같은 공항에 당도했다

무언가와는 이별을 하고 무언가와는 재회를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무척이나 슬픈 시간이 왔다








+ PS..


11월 30일 비행기를 타고 떠나

해가 바뀐 2월 18일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다

이제 비행기는 삶에서 저 멀리멀리 날아가버렸다


믿을 수 없게도

먼지가 쌓인 일상 속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어제 외출했다가 오늘 돌아온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것이었다

허무했다 이럴 줄 알았지만

그래도 2달이 넘는 시간, 정확히는 80일을 이곳을 떠나 있었는데

시간이 난 자리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꿈같은 시간을 빼앗겨 버린 느낌이다


아니다 오히려

여행의 순간들은 돌아온 순간부터 당장이 아니라

살아가다 보면 어떤 계기에 의해서나 그냥 어느 순간에 불현듯

더 또렷하게 떠오른다 그렇게 어딘가에 남아 스러져가는 삶에 생기 한 방울을

톡 떨어뜨려 삶이 다시 피어날 수 있는 생명수와 같은 역할을 한다

여행이 아니라도 살면서 내게 남아 있는 소중한 추억들이 그렇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다시 바짝 일어서고 또 기운을 내고 또 살아가고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꾸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박박 긁어 어디로든 떠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지금처럼

상상하지 못한 어느 때보다 우울한 시간을 감당해야 할 때

그 시간들, 그 추억들이 아니었다면 잘 견딜 수 있었을 거라고 장담하지 못하겠다

지금만큼 힘들거나 더 고통스러운 순간이 온다고 해도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있는 꺼지지 않는 소중하고 행복한 불씨 때문에

기어코 이겨내고 기어코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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