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29번의 크리스마스 - 17 장크트 길겐 + 장크트 볼프강 당일치기
꼭 17번의 잠, 네 번째 도시에서의 열일곱 번째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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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방 안에서 차를 마시며
창을 열어 깨끗하고 차가운 겨울의 아침 공기를 맞이한다
창 밖으로 보이는 주택들이 지난 독일의 세 도시와 같은 듯 다르다
어쨌거나 또 다른 곳의 겨울 한가운데 들어와 있구나, 실감한다
뷔페식으로 차려진 조식을 여유 있게 즐기고
아침 산책을 나선다
둘일 때 북적이는 인파 속으로 들어가는 게 좋았다면
혼자일 때 한적한 길을 내 것인 양 걷는 게 좋다
걸음마다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마을의 풍경이 시시때때로 마음을 움켜쥐게 한다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심장이 조인다
오스트리아의 아름다운 호수를 품은 곳 중 한 곳인 장크트 길겐
아침 호수가를 걷는 이들의 매일은 어떤 기분으로 시작될까
이 기분을 표현할 수 없고 사진으로 다 담아지지 않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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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를 따라 걷다가 그 너머 길들과 집들이 쭉 이어진 쪽으로 빨려 들어가 듯 걷는다
내가 마을의 길을 찾아내는 게 아니라 길이 나를 찾아와 자꾸 잡아 이끄는 느낌이다
우리네처럼 그네들에겐 평범한 삶의 공간이겠거니 싶으면서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 데 맥없이 내내 지는 마음이 된다
(지는 마음 가득한 사진들이 이어지므로 계속해서 스크롤바를 내려야 하는 것을 미리 경고한다)
알아볼 수 없는 이정표마저 마음을 붙잡고 나처럼 아침 산책길을 지나는
오늘의 고양이는 내게 시선을 맞춰주니 외롭지 않다
어제 내렸던 버스정류장이 있는 도로 쪽의 길을 오른다
눈이 온다면 타고 오르고 싶은 케이블카가 보이고
도로 한쪽 위로는 산자락 아래의 집들이, 도로 한쪽 아래로는 호수가 내려다보인다
계획한 오늘의 일정이 있어 다시 호수 쪽으로 내려간다
St. Wolfgang
유람선을 타고 장크트 볼프강으로 가는 오늘의 일정
유람선을 타고 갔다가 포스트 버스로 돌아오려고 했으나 (다른 각도의 풍경을 보고 싶었다)
매서운 겨울의 추위에 유람선 왕복으로 단순한 경로를 선택한다
어디 숨었다 나왔는지 유람선을 타려는 이들이 제법이다
아무리 추워도 포기할 수 없는, 호수를 유유히 가로지르는 유람선 바깥, 뷰 좋은 난간에 기대어
호수 위를 지나야 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을 뻔한다
나는 자연스러운 자연 그대로의 모습엔 쉽게 넋을 내어주는 사람이라서
이곳에 와서 매시간 자주 정신이 혼미하다
장크트 볼프강 도착
길겐에 머물며 이곳에 당일로 오든지 볼프강에 머물며 길겐으로 당일을 오든지
그건 개인의 선택에 따르면 되겠고 어느 쪽이든 모두 좋다
장크트 볼프강은 볼프강의 아름다움이 가장 두드러진 곳일 것이어서
거주지로의 길겐보다는 좀 더 상업적이고 휴양에 특화된 곳이었다
호수 쪽으로 별장이나 펜션이나 콘도라고 부를만한 휴식을 위한 시설이 넘쳤고
사람들이 넘쳤고 가게들이 넘쳤고 활기가 넘쳤다
호수가 보이는 곳을 찾아 번화한 골목의 끝으로 향했다
아기자기한 크리스마스를 계속 봐와서인지 여전히 시선이 가지만 어쩐지
이곳에서는 호수를 오래 많이 보고 싶었다 이곳에선 그게 가장 중요했다
추위를 피하고 싶기도 했고 풍경 중에 언제나 제일 높이 있던
교회에서의 시간도 좋았다 뉘른베르크 이후 오랜만에 만난 경건한 평안과 고요였다
가장 끝의 호수를 걷거나 서서 오래 바라보고
가장 끝의 언덕을 오른다
내려다보는 호수 품은 장크트 볼프강도 더없이 아름답다
호기심을 꺾지 않고 길을 헤매다 보면 언제나, 그렇지 않은 이들은 보지 못한
뜻밖의 아름다움을 소유할 수 있다 잠시나마, 눈과 마음과 사진으로 뿐이더라도,
해가 지고 노을이 호수에 색을 드리우는 것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시간이다
다시 유람선을 타고 장크트 길겐의 호수 쪽으로 왔다
멀지 않은 이곳 하늘도 저녁으로 물들어가고
어제처럼 마을에 불빛이 하나 둘 켜지고 있다
나도, 내 방의 불을 켜기 위해 돌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