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29번의 크리스마스 - 15 로텐부르크
꼭 15번의 잠, 세 번째 도시에서의 열다섯 번째 크리스마스
+++
새벽 3시경 무슨 소린가에 깼지만 소리의 정체는 끝내 알지 못하고
다시 잠도 들지 못한다
깬 김에 다음 도시로 가기 위한 기차 일정을 검색하고 고민한다
5시 즈음 다시 잠이 들긴 했는데 끄지 않은 알람 때문에 곧 깨고 만다
아침을 빨리 먹고 로텐부르크에서의 마지막 날을 위해 일찌감치 외출을 결심하지만
1층은 무척 조용하다 아마 게스트는 나와 또 한 명의 한국인 여자아이가 전부라서
북적이던 1층 식탁이 조금 게을러진 탓일 것이다
가만히 앉아 테이블 위 요거트를 먹고 있다 보니
할아버지가 먼저 깨어 아침을 위한 접시들을 가져다주신다
곧 카린도 얼굴을 보이고 식사를 할 생각이 없는 이층의 게스트 덕분에
카린은 나를 집중 타깃 삼아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우리는 페디큐어를 하기로 했다는 사사로운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아니다, 1시간이 지나도 내려오지 않는 위층 한국인 게스트에게
내일 떠나는 (예전의 나의 첫 여행 때처럼 1박을 하고 가는 것 같다) 기차 시간을 알아봐 달라는
부탁까지 하는 사이가 됐다 그래서 곤히 자고 있는 초면의 게스트를 깨워
내일 새벽 6시에 떠난다는 대답을 카린에게 전해 주어야 했다
세 번째 오르는 성벽의 타워
네 번째 도착한 성벽 외곽 성 밖 뷰가 보이는 정원
어제 걸었던 성벽 바깥의 길들과 집들이 보이자, 멀리서
어제 잘 놀고 헤어진 친구와 눈을 마주쳐 힘껏 손을 흔들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인적이 드문 성벽 외곽 골목을 골라 한적한 로텐부르크의 아침을 지난다
시선을 주지 않는 고양이의 꼿꼿하고 다소곳한 자태가
작지만 콧대 높을 만한 로텐부르크와 닮았다
이곳에 있는 동안 유럽의 겨울이 그렇듯 회색빛 일색이었지만
그런데도 컬러풀한 기분을 느꼈던 건
이른 아침을 부지런히 준비하는 로텐부르크 크리스마스 상점들 때문이었겠지
오늘은 친구와 첫날 들렀던 로텐부르크 명물, 유명한 크리스마스 선물가게에 들러
떠나기 전 이곳을 기억하기 위해 나를 위한 선물을 하나 산다
예전처럼 여기서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욕심을 부리던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져 있어서 시선을 붙잡는 유혹들을 조금은 잘 지나쳐버릴 수 있다
친구를 배웅한 기차역으로 천천히 걸어 나가
새벽 내내 고민하다 결정한 내일 도착할 도시로 가는 기차표를
이제 익숙해진 발권기에서 결제하고 돌아오는 길, 해가 졌다는 빛깔의 하늘이다
왜인지, 화려하게 반짝이던 로텐부르크의 빛들이 쓸쓸해 보였다
왜인지, 라는 문장의 시작은 실수다
이유를 알 것 같으니까
트와이닝 틴케이스 잎차를 사 오지 않은 것도 실수다
만원이 넘는 홍차는 이곳에서는 오천 원이었고 종류도 더 많았는데
앞으로도 내내 짐이 될 짐 걱정 때문에
좋아하는 홍차를 사지 않은 순간이 종종 생각났으므로
지금은 그게 문제인가
내일이면 나도 이곳을 떠나야 하는 마당에
방으로 올라가려는데 카린이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내일은 자신이 집에 없을 거라며 미리 작은 선물을 건넨다고 했다
미리 ' 메리 크리스마스 Merry Christmas~* '
5박 6일의 시간이 건네는 선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