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월 1일

꼭 29번의 잠 - 4 로마 해맞이+콜로세움+포로로마노

by 윤에이치제이

꼭 3번의 잠, 로마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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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 않으니 아직은 모든 게 삐걱거린다

인색한 로마의 겨울 난방, 두꺼운 벽과 세 겹의 창호를 뚫고 들려오는

로마 중심부의 시끄러운 소음 (차 트램 오토바이 달리는 소리)

형광등에 익숙한 이에게 침침한 조명도 단단한 바닥이 자아내는 삭막한 공간도

그래, 난 지금 도시 중의 도시에 머무르고 있지 이 여행에서 처음으로

그걸 3일 내내 고스란히 고통스럽게 떠안고 아직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새벽까지 계속되다가 새벽부터 다시 시작되는

도시의 편리한 교통이 울부짖는 소리에 괴로워하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깼다

이불속에서 숙면을 방해받은 자의 몸부림과 늑장을 좀 더 부리다가

아직 노란 조명이 버티고 있는 새벽의 어둠 속으로 나갔다


어제의 아쉬움을 오늘의 부지런함으로 채워야지

새롭게 시작되는 한 해를 위해 열정적으로 움직여야지

하지만 내 마음가짐과는 달리

콜로세움으로 데려다 줄 트램은 올 기미가 없고 날이 밝아지려 해 조바심이 생긴다

어쩔 수 없이 부지런과 열정을 두 다리에 싣고 트램 레일을 따라 경보 수준으로 걷기 시작한다


해 없는 새벽의 온도를 간과하고 두껍게 입지 못해 추위가 살갗에 느껴지는데도

후진을 용납할 수 없으니 트램이 오는지 확인하며 계속 걷다 뛰다를 반복한다

일출을 보겠다는 집념


두 정거장은 족히 지났다고 생각됐을 때 다가오는 트램을 발견했다

정거장을 향해 뛰었다 하지만 간발의 차, 기다려 주지 않는 트램

.. 을 야속하게 바라보는 내 모습을 상상하다 뿔이 났는데 이럴 때가 아니다 싶어서

다시 걷거나 뛰거나

속으로 험한 말이 나오려는 걸 누르고 또 누른다

한 해를 좌지우지할지도 모를 신성한 첫날, 좋은 말 좋은 생각만 하자


결국 (아마도 집에서 콜로세움까지는 트램으로 4 정거장 거리였을 것이다)

걸어서 왔다 콜로세움, 정확히는 콜로세오 Colosseo 그런데

해는 보이지 않고 주위는 환해진다 그렇다고 희망을 놓지는 않지

포로 로마노로 가는 길을 물어 열심히 직진하는 길에서 또 길을 헤맨다

뒤를 돌아보니 콜로세움 어느 모서리에서 해의 머리가 나오려는 것이 보인다

어쩔 수 없다 그쪽으로 부리나케 달려간다

그리고 드디어


산이나 바다가 아닌 거대한 콜로세움으로부터 얼굴을 내미는 해라니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해 포기하지 않은 자에게 인색하지 않게 빛나는 빛을 비춰주는구나


(그렇지만 이건 글자로 표현할 수 없는 난제다 사진으로조차도

수십 장의 사진을 찍었으나 전시하는 건 소용없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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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를 잊은 채 해가 뜨고도 오랜 시간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지극한 현실로 복귀했을 때는 오들오들 떨리는 몸을 어찌할 줄 모르며

이번에는 외면하지 않고 나를 태운 트램 안에서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주방에 있던 아저씨가

어제 나가 이제 들어오는 줄 오해하셔서

아침 일찍 나가 일출을 보고 왔노라고 어려운 설명을 드려야 했다


am9시, 늦지 않은 식사 시간에 차려주신 아침을 든든히 먹어 둔다

오늘의 일정은 이제 다시 시작되어야 하니까

1월 1일은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와 보르게세 미술관과 천사의 성이 free

..라고 아저씨가 설명해 주시자마자 새해 선물을 받는구나 싶어

기쁨이 입가를 비집고 흘러넘친다

가고 싶었던 보르게세 미술관은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안 되어서 pass

가까이 있는 콜로세움과 내게 언제나 1순위인 포로 로마노를 오후의 일정으로 계획하고

이른 아침 걸어간 곳을 이번엔 트램을 타고 간다 옷도 단단히 챙겨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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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선물은 나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

콜로세움도 포로 로마노도 줄은 길었지만 그 정도는 고난도 아니다

콜로세움+포로 로마노 1일권 프리티켓을 받고 우선 콜로세움으로 간다


그리고 이제부터

지구 전체를 통틀어 너무도 대단하고 유명한 세계유산에 대해 말을 아끼려고 한다

Colos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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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것이었다가 나의 것이 되었던 100여 장의 엽서 가운데

어린 나의 시선에 콜로세움도 멋졌지만

아이의 눈에는 그저 폐허인 그곳의 엽서 사진이 왜 그렇게 뭉클했을까

불쌍해..라는 감정보다도 그때는 스스로도 정확한 진심을 알아채지 못했던

아름다워..라는 감정, 포로 로마노


첫 유럽여행에서 가장 마지막 일정의 가장 많은 날을

이탈리아 로마에 할애하고 그렇게 내 눈으로 목격하고 싶었던

아름다운 폐허 포로 로마노를 처음 마주했을 때

그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한다

봄바람이 불어 더 애끓는 심정이 되었던

꼭 한 번 만나고 싶은 마음이 품은 그리운 사람을

화사하고 맑은 봄날 귀밑머리를 날리는 포근한 바람결 속에서 맞닥뜨린 심정이 되었던


그날의 감정이 가슴 깊숙이 오롯이 남아있지만

그때도 지금도 정확히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다

시간에 쫓기는데도 발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고

주위의 모든 소리들이 침묵 속으로 빨려 들어가 진공 상태에 홀로

부유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그 순간의 감정을


두 번째 만남이라고 그때와는 다르게 설레고 들뜬 마음이 더 커졌지만

역시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누르는 셔터 수만큼이나 머무는 긴 시선을 쉬이 거두기가 힘든 건

오늘이라고 다르지 않고


더는, 설명하지 못하겠다

Foro Rom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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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놓치고 오늘은 발견한, 포로 로마노를 내려다보는 명당은

2/3 지점 즈음에 있는 계단을 올라 도착하는 정원에 있다

그곳에 들어서면 잘 가꿔진 예쁜 쉼터와 나란히 늘어 선 상큼한 오렌지 나무가

아릿한 마음을 조금 토닥여주고 그곳에서 포로 로마노를 내려다보는 순간

아주 너른 품 속에서 힘껏 포옹을 받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 시간이 없다 하지 말고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어

그곳에 올라 포로로마노를 한눈에, 마음 듬뿍, 담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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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 따위 잊을 만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뒤늦게

뭐라도 좀 먹어야겠다 싶은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집 근처에서 예쁜 슈와 빵을 파는 가게를 발견했다

슈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 가게를 자주 가게 될 것 같았고 슈크림, 초코크림이 꽉꽉 채워진

슈를 먹자마자 그 생각은 완전히 굳어졌다


오늘은 마무리까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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