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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프랜 Oct 19. 2024

모든 이유를 나에게서 찾으려는 습관

너무 엄격해서 기어코 자신을 상처 입히고야 마는 이에게

퇴사를 고민했던 시간은 자책의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할까, 나는 왜 버티지 못할까. 고작 직장 생활 4년 만에 힘들다고 자꾸 고꾸라지려는 내가 한심하고 답답했다.

'이러다가 괜찮아지겠지' 하며 넘겼다가 또 전혀 괜찮지 않은 날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걸 반복하는 주기가 점점 짧아졌다. 일 년이었다가, 한 달이었다가, 일주일이었다가... 그동안 내 몸과 마음은 번아웃 신호를 계속 보냈지만 고집불통의 완벽주의자 성향이 강한 머리는 모든 걸 무시하고 견뎠다. 견디려고 했다.

결국 시커먼 무기력에 몽땅 잡아먹히고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태가 되어서야 나는 나를 탓하기를 멈출 수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내게 너무 엄하게 굴어왔구나.

타고난 건지 성장 배경이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의 기준이 높은 편이다. 덕분에 꼼꼼하고 성실한 건 분명한 장점이나 그게 내게 늘 좋게만 작용하지는 않았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사실 그 이유는 외부일 수도, 내부일 수도,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지 않나. 하지만 내 생각의 방향은 늘 습관처럼 내부, 나 자신만을 향했다.

찝찝한 일을 겪고 난 후엔 내 말과 행동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거기서 이렇게 말해야 했나?' 고민하곤 했다. 조금 억울하고 애매하게 화가 날 때도 '근데 이게 내가 화를 내도 되는 상황이 맞긴 한 건가?' 하고 자기검열을 하다가 결국 흐지부지 넘어간 적도 많다.

뭔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 있을 때는 머릿속으로는 하나도 소화되지 않았으면서 입으로만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습관적으로 말하곤 했다. 진짜로 성인군자처럼 너그럽게 상대를 이해해서가 아니다. 애초에 타인에게 그리 관심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남을 탓하는 것조차 꽤 많은 에너지가 드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피곤하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보다는 그냥 대충 덮어놓고 차라리 그 상황을 센스 있게 넘기지 못한 나를 탓하는 게 훨씬 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정말 나를 위한 일이었을까?

퇴사를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다. 그냥 한번 편하게 남 탓을 해 보라고. 설령 그게 진짜 객관적으로 100% 남 탓이 아니더라도, 심지어는 내 탓이 조금 있더라도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회사 탓, 상사 탓, 남 탓을 하며 마음속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풀곤 한다고.

그 말을 듣고서야 그동안 나는 너무 강박적으로 모든 이유를 나에게서 찾으려고 했다는 걸, 그리고 그게 나를 병들게 한 요인 중 하나라는 걸 깨달았다.

갭이어 기간만큼은 엄격한 나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해 보기로 했다. 내가 남을 괴롭히는 걸 끔찍이 싫어하듯이, 나도 나를 너무 괴롭히지 말자고 다짐했다.



구독자님께 쓰는 다섯 번째 편지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문프랜입니다.


오늘은 2022년 9월부터 10월까지 썼던 일기에서 몇 줄을 가져와 하나의 글로 적어봤어요.


남에게 너그러워지는 건 오히려 쉬운데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일은 참 어려워요. 아마도 제 완벽주의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다른 사람에게는 크게 관심이 없지만 스스로에게는 기준이 높은 편이다 보니 그만큼 내 한계가 선명히 보이거든요. 내 못난 모습, 부족한 모습, 고쳤으면 하는 모습만 자꾸 눈에 보이니 모든 이유가 내게 있다고 생각하곤 했죠.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나를 지킬 수 없다는 걸 퇴사와 갭이어를 결심하는 과정에서 깨달았어요. 특히 저처럼 스스로에게 엄한 사람일수록 가끔은 덮어놓고 무조건 나를 칭찬해 주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요. 



그래서 제게는 친구가 말해 준 '남 탓하기'가 정말 좋은 방법이었어요.


예를 들어 회사에 퇴사하겠다고 얘기했다가 '지금 퇴사하면 어떡하냐, 후임자도 뽑아야 하고 시간도 부족한데....' 같은 떨떠름한 말을 들은 상황이라고 가정해 볼까요? 평소 같았으면 저는 이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내가 아무래도 잘못 말했나?'
'시기가 좀 안 좋긴 하지.'
'인수인계 기간이 너무 짧나?'
'내가 든 이유가 설득력이 없었던 걸까?'


하지만 이러면 끝없는 자책의 수렁에 다시 빠지며 스스로를 몰아붙이게 돼요. 이럴 땐 너무 고민하지 말고, 그냥 생각의 방향을 단순하게 밖으로 돌려보는 거예요.


'마음 같아서는 당장 나가고 싶은데 한 달 기간 주는 게 어디야.'
'후임자를 뽑든 못 뽑든 솔직히 그게 내 알 바인가.'
'내가 지금 죽겠는데 회사 사정이 뭔 상관이람!'


조금 이기적으로 보이더라도 딱 한 번만 이렇게 속으로 시원하게 욕하고 말아 버리는 거죠.


여기서 포인트는 내 책임을 회피하라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자책의 시간을 지나치게 길게 갖지 말자는 거예요. 모든 탓을 내게 돌리고 속으로 곪기보다는 그냥 이렇게 한 번 시원하게 외치고 털어버리는 게 오히려 더 건강할 수 있어요.


딱히 내 잘못이 아닌 일에도 습관적으로 자책하는, 저처럼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해서 자신을 기어코 상처 입히고야 마는 사람들을 위해 이 이야기를 꼭 적고 싶었어요.


나를 조금 더 아끼고 내게 조금 더 친절해져도 돼요. 


내가 정말 객관적으로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이 아니어도 그냥, 나는 나를 먼저 보호하고 누구보다도 더 사랑해 주기. 


퇴사와 갭이어를 결심하며 자주 되뇐 말이에요. 지금도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오늘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예요. 알고 계셨을지 모르겠지만 이번 다섯 번째 편지까지가 <나의 갭이어 일기>의 Part 1에 속해요. 다음 여섯 번째 편지부터는 Part 2가 시작됩니다.


Part 1은 퇴사, 번아웃, 우울 같은 다소 무거운 내용이 많았지만 Part 2는 갭이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잘 비워내고 회복하며 좋아하는 것으로만 채운 백수의 일상을 담을 예정이에요. 훨씬 가벼운 이야기라 아마 더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앞으로 보낼 편지들도 즐겁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저는 이만 여기서 줄일게요.


너그러움과 사랑을 담아,

프랜 드림.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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