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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프랜 Oct 19. 2024

힘들다고 소리 내 말할 수 있는 동료의 중요성

아무래도 멋없어 보이고 조금은 덜 프로페셔널해 보이더라도

두어 번의 면담 끝에 퇴사가 확정됐다. 11월 초로 퇴사일이 정해지고 업무가 긴밀히 얽혀있는 팀원들과 먼저 인수인계 논의를 했다.

내가 갑자기 그만두면서 팀에 업무 부담이 생기는 상황인데도, 나보다 경력도 경험도 많은 팀원들은 오히려 의연하게 나를 다독여주셨다. 많이 힘들었겠다고, 괜찮다고, 미안해할 일이 아니라고. 나라면 이렇게 잘 대처할 수 있었을까? 걱정 말고 프랜님은 프랜님만 생각하라는 말이 고맙고 또 무거웠다.

오늘은 우연히 A님과 티타임을 가졌다. 같은 팀원이 된 지 1년이나 됐지만 정작 얘기는 제대로 나눠본 적 없었는데, 오늘 대화를 하다 보니 활달해 보이기만 하던 그도 입사 초반에는 많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처음으로 그를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내 퇴사 소식을 전하자 A님은 놀라면서도, 최근 나의 어두운 기색을 보고 '프랜님이 좀 쉬셔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셨다고 했다.

나는 그게 고마우면서도 조금은... 신기하기도 했다. 정말 솔직하게 나는 아주 친밀하지 않고서야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고, 잘 모르는 누군가와 이야기 나눠보고 싶다는 마음이 잘 들지 않는데, 어떤 이들은 사적인 대화 한 번 제대로 나눠보지도 않은 동료의 마음이나 기분까지 눈여겨보기도 한다는 게.

하지만 또 그렇게 느슨한 관계일지라도, '괜찮아요?' 물어봐 주는 작은 다정함이 무너짐을 붙잡아줄 수 있지 않았을까. 나에겐 그런 게 필요했을 수도. 어쩌면 그런 기회들이 많았을 텐데 지레 외면했을 수도.

일하려고 만난 회사더라도, 아무래도 멋없어 보이고 조금은 덜 프로페셔널해 보이더라도 '일이 힘들다'고 소리 내 말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회사와 일에 대한 고민을 가장 잘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어쩌면 가족도 친구도 아닌 동료라는 걸.

- 2022년 10월 14일 일기에서  



구독자님께 쓰는 네 번째 편지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문프랜입니다.


벌써 네 번째 편지네요. 이번엔 퇴사 3주 전에 썼던 일기로 시작해 봤습니다. 뒤늦게 동료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은 시점이었는데요.


저는 회사에서 일하는 4년 동안 자발적으로 다른 동료와 1 대 1 티타임을 한 적이 거의 없었어요. 무릇 티타임이라 하면 잠깐 차 마시고 산책하며 일 얘기도 하고 고민도 나누고 회사 욕도 하면서 유대감을 쌓는 일일 텐데, 극극내향인이며 회사 일과 개인 일상을 칼같이 나누고 싶어 하던 저는 티타임이 늘 부담스러웠어요. '일하러 만난 사이'라면 일만 하면 되지, 여기서 굳이 내 감정을 꺼낼 필요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거든요.


그래서 영문 모르던 팀원들에게는 제 퇴사 소식이 더욱 날벼락 같았을지도 모르겠어요. 말없이 묵묵히 잘 다니고만 있는 줄 알았던 사람이 갑자기 '저 3주 뒤에 퇴사해요' 라니까.


A님과 대화를 나누고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 소식이 다른 팀원들에게도 전해지자, 티타임 요청이 마구 밀려들어 왔어요. 퇴사하기 전까지 남은 3주 동안 거의 매일, 그동안 안 했던 걸 몰아서 벼락치기라도 하듯이 한 명씩 돌아가며 릴레이 티타임을 했죠.


그런데 신기했던 게 뭔지 아세요?

그렇게 기피하던 티타임이 생각보다 좋았다는 거예요.


워낙 회사에서 제 이야기를 안 하는 편이었던지라 다들 어쩌다 퇴사하는 거냐는 질문을 먼저 하셨어요. '사실 번아웃이 심해서 퇴사해요. 당분간은 아무것도 안 하면서 쉬다가 진로를 다시 고민해 보려고요.' 이렇게 말하자, 그제야 제 동료들도 제게 말했어요. '사실 저도 요즘 힘들었어요.'


생각해 보니 누군가에게 나 힘들었다고 소리 내서 말을 한 게 이 티타임 주간이 거의 처음이더라고요. 그러니까, 제가 A님을 그저 활달한 사람으로만 생각했던 건 1 대 1로 대화해 본 적이 없어서기도 하지만, 누구 하나가 먼저 힘들다는 티를 내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동료들과 다양한 티 (혹은 아이스크림) 타임


우리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스타트업에 있었고 내가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당장 나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해내는 엄청난 동료들이 주변에 깔려 있는 환경이었어요. 그런 집단에서는 누구 한 명이 먼저 속을 터놓고 말하지 않으면 그냥 꾸역꾸역 참게 돼요. 정확히는 내가 힘든 줄도 참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탈진하기 쉽죠. 제가 그랬고요.


그런데 늦게나마 이야기를 나눠 보니 나뿐만 아니라 A도 B도 C도 다 힘들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남들도 다 힘들어'는 언제나 제게 불편한 가시 같은 말이었는데 막상 이 상황이 되고 보니 그게 이상하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남들도 다 힘드니까 참으라는 게 아니라 '남들도 다 힘드니까 내가 이상한 게 아니야'라는 걸 알게 되어서 그런 것 같아요.


아무도 내게 참으라고 한 적 없는데, 터놓고 말하면 서로 같은 생각인 걸 알 수 있는데. 저는 그냥 습관처럼 늘 혼자 참았어요. 아마도 부족한 나를 인정하는 게 두려웠나 봐요. 하지만 그러다 보면 그 두려움의 화살은 겨눌 곳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결국 다시 나 자신에게 향하곤 해요. 남들은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데 나만 이렇게 나약한 건가 봐, 내가 부족해서 나만 이렇게 힘들다고 느끼나 봐. 나를 탓하면서요. 


만약 제가 마음의 문을 조금 더 열고, 나의 부족함을 담담히 인정하고, 동료에게 제 힘듦을 털어놓았다면 그도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힘듦을 들려줬을 텐데. 그렇게 서로에게 의지하다 보면 내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았을까. 뒤늦게 생각하게 됐어요.


A님을 포함해 여러 팀원들과 티타임을 가졌던 기간은 제가 그동안 인간관계에 얼마나 서툴렀는지 새삼 깨닫는 일의 연속이었지만, 그럼에도 먼저 손 내밀어 주고 자책할 필요 없다고 확언해 주는 동료들을 다시 한번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따뜻하고 좋은 동료들이 이렇게 주변에 많았는데 그걸 너무 늦게 알게 되어 정말 많이 아쉬웠어요. 


퇴사를 앞두고 만든 엽서


그래서 퇴사일이 다가올 즘, 직접 찍은 사진으로 엽서를 만들어서 짧은 편지를 썼어요. 그렇게 표현을 안 하던 애가 퇴사를 앞두고 갑자기 사람이 바뀐 것처럼 구구절절 적은 편지를 돌리는 게 좀 민망하기도 했지만, 팀원들과 나눈 그 대화들은 정말 저를 그렇게 바꿔 놓을 정도였어요. 힘들다고 소리 내 말할 수 있는 동료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느꼈으니까요.


그리고 제 기준에서 또 하나의 큰 변화를 고백해보자면... 저는 회사와 일상의 경계를 칼로 자르듯 나누고 싶어서 4년 내내 인스타그램 계정을 회사 사람들에게 거의 오픈하지 않았었는데요. 웃기게도 퇴사를 앞두고는 오히려 제가 아쉬워져서 티타임의 마지막엔 꼭 '혹시.. 인스타 하세요..?' 하고 먼저 물어보곤 했답니다. 아무래도 이제는 회사 사람들이 아니고 같이 일했던 '지인들'이라는 위치로 조정된다고 생각하니 그랬나 봐요. 어이없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ㅎㅎ....


이렇게나 늘 제멋대로인 저를 너그러이 바라봐 준 동료들 덕분에 갭이어를 힘차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2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다시 한번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고마운 퇴사 선물과 그 마음들


오늘 일기와 편지는 여기까지예요. 어떠셨나요?


어쩌면 그저 나의 힘듦을 말하고 서로의 힘듦을 알아주는 것만으로 우리는 조금 더 따뜻해질지도 모르겠어요. 이 편지를 읽는 동안 구독자님의 힘듦도 조금은 옅어지고 가벼워졌길 바라요.


그럼, 이만 줄일게요.

오늘도 포근한 밤 보내세요.


당신의 동료,

프랜 드림.




추신.

구독자님은 힘들다는 표현을 자주 하시나요?
혹은 잘 하지 않는 편인가요?


저는 힘들다는 말을 습관처럼 속으로 삼키곤 해요. 굳이 말하지 않는 게 더 편한 것 같다가도, 이렇게 한번씩 무너지는 걸 보면 어느 정도는 말을 해야겠다 싶기도 하고요. 제게는 아직도 너무 어려운 부분이에요.


구독자님은 어떠신가요? 저와 비슷한지 혹은 다른지 궁금해요. 댓글에 남겨주시거나 구독자 전용 익명 방명록에 적어 주셔도 좋아요. 구독자님의 답장을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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