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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프랜 Oct 19. 2024

세상엔 얼마나 많은 길이 있는지

이 트랙을 벗어나면 탈락자가 될까?

'절대 싫다' '절대 안 된다'라고 생각했던 가치관이나 취향이 바뀐 것에 대해.

양갈래 머리는 나에게 절대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괜찮았다. 10년 전만 해도 뜨개질은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뜨개질에 푹 빠진 사람이 됐다.

의외로, 어떤 가치관과 취향은 절대적이거나 영원하지 않다. 내가 처한 상황과 맥락에 따라 생각보다 쉽게 바뀌기도 한다는 걸, 그리고 그 감각은 심지어 짜릿하기까지 하다는 걸 느끼고 있는 요즘.

- 2023년 6월 2일 일기에서



구독자님께 쓰는 열다섯 번째 편지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문프랜입니다.


말씀드렸듯이 이번 편부터 <나의 갭이어 일기>의 종장, Part 3가 시작됩니다. 오늘은 새로운 챕터를 열며, 갭이어 중 제 안에서 바뀐 것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겠지만 저 또한 '절대'라는 단어에 오랫동안 묶여 있었어요. 이건 절대 안 할 거야. 이건 절대 안 어울릴 거야. 이건 절대 못 해. 이렇게 생각한 게 많았죠.


하지만 갭이어를 보내면서 의외로 많은 곳에서 제 '절대'의 힘이 약해지는 것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어쩌면 갭이어를 결심한 것부터가 '절대'에 금을 내기 시작한 순간일지도 모르겠네요.)


저의 '절대' 중 하나가 깨졌던 날의 일기를 한 편 더 소개해 볼게요.




얼마 전 우연히 곱슬머리 유튜버 박채소님의 '세상에 악성곱슬은 없다' 영상을 봤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익숙하게 사용하던 '악성곱슬'이란 말이 사실 얼마나 편협하고 폭력적인 언어였는지. 길고 찰랑이고 부스스하지 않은 것만이 '옳은 머리카락'이라는 좁디좁은 기준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는 게.

당장 이 나라만 벗어나도 인종, 문화, 취향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헤어스타일이 존재하는가. 그런데 왜 나는 반곱슬이라는 이유로 6개월에 한 번, 심하게는 3개월에 한 번 미용실에 가서 '매직'을 했을까. 초등학교 5학년에 처음 시작해서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이 될 때까지. 미용실에 갈 때마다 머리가 곱슬이네 상했네 어쩌네 혼나가면서.

채소님 영상을 보고 생각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 부스스한 머리도 빡세게 관리한 머리도 내 마음. 양갈래를 한 머리도 짧게 자른 머리도 내 마음. 하나의 기준이 절대적인 것처럼 남에게, 혹은 자신에게 강요할 이유는 없다. 매직을 계속 하는 게 나쁘단 게 아니다. 본인이 원하고 추구하는 취향의 기준이 그것이라면 남이 왈가왈부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곱슬머리도 마찬가지. 내 맘에만 든다면야 무슨 상관이겠나. 생머리일 자유와 곱슬머리일 자유, 관리할 자유와 관리하지 않을 자유.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됐다.

- 2023년 5월 22일 일기에서




사실 저는 미용실에 가지 않은지 꽤 오래됐어요. 돈 없는 취업준비생이던 2017년부터 집에서 혼자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해서 올해로 8년 째거든요. 돈도 시간도 아끼고 몸도 마음도 편해서 솔직히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직을 하지 않아 늘 부스스한 제 반곱슬 머리카락이 여전히 부끄러웠어요. 남들처럼 찰랑이지 않는다는 이유로요. 그래서 늘 묶고만 다녔죠.


그런데 채소님의 영상을 보고 나서 생각이 확 바뀌었답니다. 내가 편안하다면 남들의 기준이 무슨 상관인가 싶어졌어요. 심지어 그게 절대적인 기준도 아닌데 말이에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중 대부분은 사실, 시간과 공간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아주 쉽게 당연하지 않아지곤 합니다. 내가 속한 시대, 지역, 집단에서는 당연한 기준이 다른 시대, 지역, 집단에서는 생경한 기준이 되죠. 사회의 근간이 되는 기본적인 윤리와 도덕의 영역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그저 내가 어떤 가치관을 택하느냐의 문제인 거예요.



그런데 그게 갭이어랑은 무슨 상관이냐고요?


이런 생각은 제 갭이어에서 상당히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위 일기를 쓴 23년 5월과 6월은 갭이어를 슬슬 마무리하고 다시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때예요. 일할 의욕이 조금씩 채워지고 있던 제게 이런 깨달음은 이후의 방향을 정하는 데에 큰 영향을 줬어요.


사적인 취향과 가치관마저 이렇게 다양한 갈래가 있고 심지어 어느 한순간에 뒤바뀌기도 하는데 하물며 일의 영역은 어떻겠냐는 생각이 든 거죠. 세상에 이토록 많은 길이 있고, 그 길을 걸을지 말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삶을 살아내는 방식에 무엇이 옳고 그른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는 것.


그렇게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제게는 정말 중요했어요. 지레 닫지 말고 열어둔 채로, 세상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선택하기.



갭이어가 아니었다면 이런 생각은 가지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왜, 전철역에서 옆 사람이 뛰면 나도 모르게 '어어어?' 하다가 얼결에 같이 뛰게 되잖아요. 모두가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한복판에서는 가만히 서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나를 지배해요. 이 트랙을 벗어나면 영원히 탈락자일 것 같은 느낌이 들죠.


하지만 그건 그 트랙, 그 경기장의 룰일 뿐. 달리기를 계속할 선택권도, 달리기를 멈추고 경기장 밖으로 나올 선택권도 모두 나에게 있어요. 잠시 벤치에 앉아 물을 마시고 땀을 닦았다가 다시 출발할 수도 있고, 아무래도 이 트랙은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옆문으로 빠져나와서 다른 필드로 향할 수도 있어요.


이런 건 계속 달릴 땐 눈에 잘 보이지 않아요. 잠시 멈춰있는 갭이어라서 겪을 수 있었던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오늘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다 써놓고 보니 너무 막연한 이야기로 보였을까봐 걱정되기도 해요. 선택지가 많다는 건 다시 말해 그 무엇도 선택하기 어렵다는 거잖아요. 나답게 결정하고 선택하라는 말을 들으면 '나다운 게 뭔데?' 라는 인류의 유구한 질문이 떠오르고요.


그러니 다음 편지에서는 조금 더 자세히 들어가서 '나다운 기준을 찾는 방법', 즉 제가 저를 알아가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갭이어를 마무리하고 지금의 프리랜서로 방향을 잡는 데에 아주 큰 역할을 한 어떤 시점에 대해 다룰 거라서, 아마 오늘 편지보다는 구체적이고 명확할 거예요. 다음 편지도 기대해 주세요!


그럼, 이만 줄일게요.

편안한 밤 보내세요.


내 안의 '절대'를 하나씩 깨고 있는,

프랜 드림.




추신.

구독자님도 최근 바뀐 가치관이 있나요?


최근 저는 인생을 통틀어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네트워킹하고 있어요. 제 성격상 사람을 만나는 건 평생 어렵기만 할 줄 알았는데, 제가 잘할 수 있는 몇 가지 조건을 알게 되니 예전처럼 마냥 힘들지만은 않더라고요!


최근 구독자님께도 그런 변화가 있었다면 제게도 댓글 혹은 구독자 전용 익명 방명록에 슬쩍 알려주세요. 가치관까지는 아니더라도 요즘 새롭게 바뀐 취향에 관해 이야기해주셔도 좋습니다. 구독자님의 답장을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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