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일 : 술

술을 마시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by 몽상가 J

한동안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딱히 당기지도 않았고, 언제부턴가 술을 마시면 머리가 너무 아파서 일부러 피했던 것도 있다. 그런데 이번 주, 월 화 수 목 연달아 술을 마셨다.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터져 나온 걸까?


월요일의 상황은 이랬다. 회의가 끝나고 시간이 늦어져 후다닥 밥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간단히 샐러드를 먹을까 하다가 오늘 하루 제대로 된 밥을 못 먹은 것 같아서 뼈해장국집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국물이 들어가자 몸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고, 험담까지는 아니지만 주말 동안 있었던 답답한 마음을 풀어놓다 보니 넋두리를 늘어놓는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가볍게 반주나 하자는 말에 동의했고,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셨다. 신기하게 머리가 아프지 않았고, 취하지도 않았다.


화요일의 상황은 그러했다. 하루 종일 촬영을 하고 후배와 저녁으로 간단히 떡볶이를 먹고 집에 돌아왔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려니 주문했던 책이 도착해 책꽂이에 꽂혀있는 게 아닌가. 조금만 읽고 싶어져서 책을 꺼냈는데, 시원한 맥주가 생각났다. 역시 혼술이지,라는 생각과 함께 작은 캔을 가져와 마시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이 책은 엄마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10장을 채 읽기도 전에 눈물을 훌쩍이다가 두 번째 캔을 가져왔다. 그리고 피곤함이 더해진 만취 모드로 잠들었다.


수요일의 상황은 월요일과 비슷하다. 회의 후, 순대국밥을 먹으러 갔는데 갑자기 눈이 미친 듯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라면서 한참 동안 눈을 바라보다가 김치전도 시킬까? 라는 후배의 말에 그럼 술도 시켜야지!라는 말이 툭 하고 튀어나왔다. 그렇게 9시가 되기 전까지 술을 마셨다고 한다.


목요일의 상황은 비교적 소소하다. 작업실에서 친구와 일을 하다가 잠시 쉴 겸 배달 음식을 시켰다. 작년부터 꽂힌 마라샹궈와 탕수육 조합은 그냥 먹기에는 심심해서 맥주를 한 캔씩만 먹기로 했다. 다행히 배가 불러 한 캔에서 그쳤지만 안주가 소소했다면 한 캔이 두 캔이 되고 세 캔이 됐을 수도 있다.


그렇게 이번 주는 내내 술을 마셨다. 술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지만, 넋두리를 늘어놓기에는 술만 한 단짝이 없다.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요즘 내가 하는 고민들과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들에 대해 토로했다. 상대에게 내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건 아니었지만, 그저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답답함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물론 상황적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해결됨도 없다. 그러나 그들이 내게 건네주는 조언들을 가슴에 새겼다.


'네가 부족한 거 아니고, 그 시스템이 이상한 거야. 괜한 자책하지 마!'

'그런 인간들은 내가 가서 밟아줘야 정신 차리는데! 한번 혼내주러 갈까?'

'너무 정신없이 바쁜데, 네가 생각이 많아서 그래. 내려놔. 왜 다 쥐고 흔들려고 그래. 너만 힘들지 그럼.'


지난 4일 동안 열심히 마셨으니, 내 몸을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절주를 선언한다. 금주가 아닌 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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