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일 : 마지막 회

프로그램을 하나 끝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by 몽상가 J

10년이 훌쩍 넘도록 방송 일을 하면서 과연 몇 개의 프로그램을 함께하고 또 이별했을까. 셀 수도 없이 늘어나 있는 이력서 속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정말 다사다난했던 시간들이 어제 일처럼 스쳐 지나간다. 많이 웃었고, 또 울었고, 속앓이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고, 아프기도 했던 시간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고, 인생을 살면서 하나의 재산이 되어버린 인연들 덕분에 힘들어도 지금껏 이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한 회로 끝나는 특집부터 1년 반을 넘게 했던 프로그램까지. 스태프들은 최소 한두 달동안 기획 회의와 구성 회의 그리고 촬영, 후작업을 통해 한 편의 프로그램을 완성시킨다. 특집일 경우 그나마 여유롭게 진행이 되기도 하지만, 레귤러 프로그램을 할 때는 거의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일이 몰아친다. 그런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과 호흡이 안 맞으면 지옥을 경험하는 것이요, 잘 맞으면 이보다 행복할 수 없음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과정보다 결과적으로 프로그램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 그때가 가장 행복한 건 사실이다. 방송 다음 날 성적표처럼 날아오는 시청률 그래프를 보면서 천국과 지옥을 오가니까.


최근까지 해오던 프로그램을 이번 주에 마무리했다. 지난여름부터 함께 고생했던 제작진들. 역대급으로 힘들었던 프로그램이라서 그런지 서운함보다는 시원한 마음이 더 컸는데, 마지막 회 방송을 보면서도 그 순간들의 고난과 역경이 떠올라서 살짝 눈물이 맺혔다. 코로나19로 인해 종방연을 할 수는 없겠지만, 제작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든다. 특히 작가 후배들에게는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챙기고, 정리하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일을 배분하고, 가끔은 쓴소리도 하고, 또 다독여 가며 일을 했지만 그건 내 입장이고, 후배들은 나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을 테니까. 힘든 프로그램일수록 더 기억에 남고, 함께한 후배들이 괜히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마치 특별한 루틴처럼 마지막 회 속 스크롤에 담긴 이름을 확인하면서 그렇게 또 하나의 프로그램을 보냈다. 마지막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시즌제로 갈 수도 있지만, 바로 이어지는 시즌제가 아닌 이상 이 인원으로 또다시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프리랜서 작가들과 피디들의 경우 곧바로 다른 프로그램에 투입될 수 있기에 상황과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아마도 이 인연은 여기서 마무리될 것이다.


우리 팀 사람들이 이 글을 읽을 일은 절대 없겠지만... 그동안 함께 고생해 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방송은 끝이 났지만, 우리는 또 만날 거니까요. 그리고 2020년 여름과 가을, 겨울에 있었던 일들은 우리만 떠올릴 수 있는 추억들이니까 잊지 말고 꼭 기억하고 있어요. 그리고 건강히 잘 지내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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