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일 : 돈

가계부를 정리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by 몽상가 J

어릴 때는 절약의 끝을 보여주는 삶을 살았다. 바지 하나를 사는 것도 내겐 오랜 고민이 필요했고, 어떤 물건이든 100원이라도 싸게 사보려 발악했다. 사고 싶은 건 차고 넘쳤지만, 원하는 모든 걸 다 갖는 건 욕심이었다.


먹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읽고 싶은 책도 모두 최소화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성인이 된 직후 수중에 넉넉한 돈을 가질 수 없었고, 프리랜서 방송작가의 시작은 풍요로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빚을 지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소소한 지출로 가끔씩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으나 아주 가끔 있는 일이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 만나던 사람은 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었다. 나보다 한 살 위이기도 했지만 여유가 있던 그는 데이트 비용의 70% 이상을 책임졌다. 받기만 하는 게 어색했던 나는 소소한 선물이나, 도시락을 싸오는 등의 노력으로 보답을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한마디는 내 삶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내가 즐겨 입던 검정 스키니 바지의 아래 부분이 살짝 뜯어졌었는데, 내 몸매에 착붙이던 그 바지를 버리기가 아까워서 몇 번 더 입었었다. 그런데 그가 뜯어진 부분을 만지며 '또 입었네. 좀 버리지 그래?'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창피해서 그를 쳐다볼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면 "나는 이 바지가 내 몸에 제일 예쁘게 핏 되는 게 좋아. 수선을 해서라도 더 입을 거야. 신경 쓰지 마~"라고 말했겠지만, 어린 나는 마치 내 존재를, 내 가치를 능욕당하는 기분이 들어 그날의 데이트를 황급히 마무리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10년 차 까지도 돈을 아끼는 버릇은 여전했다. 그런데 신기한 게도 아껴 쓰는 것에 비해 돈이 너무 모이지 않았다. 쉬는 기간에는 모아두었던 돈으로 생활하기도 했지만, 아무리 그렇다한들 10년을 고생했는데 통장에 쌓인 돈은 고작 이 정도라고?


어느 순간 현타가 온 나는 돈의 가치를 판단하는데 혼란을 느꼈다. 자산관리 쪽 일을 하는 친한 형부와 상담을 하고 관리 시스템을 발동시켰으나 현금이 모이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순간 이렇게 모으느니 쓸 때는 팍팍 쓰자는 생각이 들어 생필품부터 기타 유흥비, 쇼핑 등을 위해 아끼지 않고 쓰기 시작했더니 오히려 돈이 벌리는 듯했다. 당연히 쓰는 만큼 통장은 비워져 갔지만, 그만큼 또 채워지고 계속해서 채워졌다. 불필요한 지출로 돈을 낭비하거나 탕진하는 게 아닌, 필요할 땐 확실하게 쓰다 보니 돈이 돈을 부르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최근 몇 달간 모은 돈의 액수가 지난 몇 년간 발악하며 모았던 돈의 1/3 정도다. 무엇 때문이라고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돈이라는 건 꽁꽁 묶어놓기보다는 어떻게 굴리냐에 따라 다시 돌아오는 듯하다.


고로, 이 글의 결론은 지독한 짠순이, 짠돌이보다는 요긴하게 쓸 줄 아는 사람이 승자라는 것. 단, 불필요한 지출, 낭비는 절대 N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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