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일 : 촉
갑자기 바빠진 하루를 돌이켜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흔히 말하는 촉이 좋은 편이다. 눈치가 빠르기도 하고, 묘하게 예상했던 일들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연애를 할 때 '이 사람이 나를 속이고 있다', '이 사람 바람까지는 아니어도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조금 있으면 정리하게 되겠구나' 등 상대의 행동이나 메시지 패턴만 봐도 이 연애의 방향이나 종료 시점을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다. 물론 이 정도는 웬만한 여자라면 캐치할 수 있는 포인트다. 특히 여자의 촉은 연애할 때 가장 활발해지는데, 친구의 연애 고민을 상담해 주다가 '설마...' 하는 일들이 웬만하면 다 맞아떨어져서 소름이 돋을 때가 많다. (여자들은 이런 경험 많을 듯!)
그리고 나의 경우에는 불현듯 거슬리는 일들이 우려한 대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일을 하다가 '설마 그 연예인이 이 아이템을 엎자고 하는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하면, 그 아이템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이제는 뭔가 거슬리는 일이 발생하면 확인에 확인을 거듭한다. 그렇지 않으면 찝찝한 기분을 하루 종일 느껴야 한다.
아주 사소한 촉이 맞는 경우도 있는데, 지하철에서 개찰구로 올라가기 위한 계단에서 '아? 이거 넘어질 것 같은데? 발 헛디딜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면 99% 넘어진다.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나는 더 조심해서 걷고, 발에 힘을 빡 주고 걸음에도 불구하고 왜 때문에 넘어지는지는 알 수가 없다.
보통 좋은 촉보다는 안 좋은 촉이 더 자주, 명확하게 느껴진다. 미리 조심할 수 있다는 포인트에서는 다행일 수도 있지만, 좋은 촉도 명확하게 느껴지면 참 좋을 텐데. 예를 들어,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될 것 같다든지, 조만간 큰돈이 들어올 것 같다든지, 다이어트에 성공할 것 같다든지... 쓰다 보니 모든 것이 내 노력 없이는 안 되는 일이로구나.
브런치에 글을 쓰다 보면 가끔 조회 수가 폭발할 때가 있다. 카카오나 다음, 브런치 메인 화면에 걸리는 경우인데 정말 공을 들여 쓴 글은 한 번도 걸린 적이 없고, 오히려 순간 생각난 이야기를 후루룩 쓴 글이나 크게 고민하지 않고 쓴 글들이 메인에 걸려 통계 그래프가 치솟을 때면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이 촉이 미리 발현되었다면 더 성의 있게, 더 재미있게, 더 짜임새 있게 썼을 텐데.
이상한 촉은 오늘도 여지없이 발휘됐다. 오늘 하루가 여유롭게 돌아가기에... 속으로 '오늘 뭔가 여유로운데? 설마 이러다가 일이 몰아치는 건 아니겠지?'라고 생각할 때쯤, 여기저기서 업무 관련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항상 바쁘게 돌아가는 응급실이 너무 잠잠해서 누군가 '오늘 되게 조용하네요~'라는 말을 하면, 그 순간 환자들이 몰려들어 그 이야기가 금기어라던 의사의 인터뷰가 떠오르는 상황. 쓸데없는 생각으로 내 하루를 망쳐버렸다. 입이 방정, 아니 생각이 방정이다.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만 촉을 세워보자.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