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ionuk song Jun 14. 2020

독일에 온 지 6개월

5년 전 일기 중에서...

2015년 봄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정해진 일자리도 없이 무작정 가족과 독일로 온 것이 벌써 5년 전이다. 그래야 했던 이유는 있었지만, 삼성전자라는 든든한 울타리를 굳이 뛰쳐나오는 것은, 남들이 보기엔 그리 납득이 가는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말도 못 하게 서운해하셨던 부모님 보기에도 부끄럽지 않게, 이 전 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내어야 했기에, 그 부담은 꽤나 컸다. 그렇게 독일로 와서 6개월이 지나고 이런 글을 썼었다. 잘 다듬어진 글은 아니지만 그냥 날 것의 상태로 공유해본다.



2015. 11. 4.

다 접고 독일에 온 지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사는 곳이 달라졌고, 음식이 달라졌고, 쓰는 말이 달라졌지만, 가장 큰 변화는 매일 가던 회사를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일이 기다려진다. 하루하루가 재밌고 너무 짧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이다. 나만의 일... 취미로 글도 쓴다. 잘 쓰지는 못하지만 재밌다.


기회는 항상 예상치 못한 곳에서 우연히 찾아온다.

내가 모든 걸 뒤로 하고 낯선 곳으로 오는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건, 그럴 수 있는 조건이 되었기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인생은 선택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들은 그대로 머물러 있기를 선택한 것이고, 나는 변화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 많은 시간들이 오로지 나만을 위해 주어졌다.

남아도는 시간... 그러나 정작 시간이 주어지자 불안했다. 뭐라도 계속 일을 만들어서 해야 했다.

밭에 나가 일을 하고, 가족과 그동안 하지 못한 대화를 했다. 아이와 장난치고 놀았다. 아이가 신나게 뛰어놀고 흙에서 뒹굴다가 방금 한 따듯한 음식을 후후 불어가며 실컷 먹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 즐거움에 웃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 이 아이는 어디에 있었더라도, 그렇게 행복한 웃음을 지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은 그 웃음을 직접 내 눈앞에서 보고 있다.

흙을 만지고, 흙에서 나는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먹었다. 하지만 고민은 계속되었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이었다.

잠시 머물러 쉴 수는 있지만 또 다른 삶을 계속 고민해야 한다. 그동안은 고여있었다. 이제는 내 시간을 산다. 나를 채우는 시간...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이렇게 소중한데, 그동안에는 다른데 쓰느라 이렇게 좋을 걸 몰랐다.
          

미래는 상상하는 자의 것이라는 말을 했다. 상상하고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미래는 항상 오늘과 같을 것이라는 것. 무서운 말이다.


우선 생활이 바뀌니 몸이 바뀌었다. 살이 많이 빠졌고 건강해졌다.


그래도 일은 해야했기에 고민해 보았지만, 혼자 뭔가 돈벌이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해외직구를 우선 생각해보았으나, 소매가로 사서 판매하는 것은 크게 이윤이 남지 않는 일이었다. 공급처를 확보해야 하는데, 아무 끈도 없이 공급처를 확보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한 개 팔아서 1000원을 남긴다면 1000개를 팔아야 백만 원이고 2000개를 팔아야 200만 원이다. 무식한 짓인 것 같다.


일단은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글을 쓰자고 했다. 첫 번째 나의 도전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리고 글을 쓰다 보니 책을 많이 읽어야 했다. 해당 분야에 대한 책을 찾아서 읽다 보니 사회에 대해서 더 공부가 하고 싶어 졌다. 그런데 사실 좀 막막하다. 서른여섯... 곧 마흔인데 돈 되는 공부도 아닌데 쉽게 결정이 어려웠다. 뭐라도 남기려면 대학원을 가야 하는데, 그러자니 언어도 걸리고 졸업한다고 돈이 되는 직업을 구하는 것도 아니다.


글을 써서 책을 만드는 SNS를 만들고 싶어 기획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곧 카카오에서 브런치 북이라고 비슷한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나도 지금 여기에 글을 쓰고 있지만)


취직을 하는 것은 제일 후 순위로 남겨두고 싶지만, 그래도 고정적인 일이 없으니 불안한건 어쩔수 없다.


그래도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예전에 살던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계속 직장을 다녔다면, 세전이지만 과장 초봉은 5,900만 원이고 연말 보너스를 감안하면 7,000~8,000만원은 된다. 게다가 와이프와 둘이 벌면 두 배다. 그래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나의 삶이 아니었다. 회사를 위한 삶이었다. 나를 버리고 내 가정을 버리고 회사를 위해 살았다.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거냐.


독일로 온 이후 헬조선이라는 말과 함께 한국을 뜨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기획기사가 많이 나왔다.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취직을 하는 것도, 취직을 해서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전셋값은 치솟고,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아이를 맡길 곳도 없다. 뭐 내가 먼저 왔으니 뭔가 위안이 되기도 한다.


오늘 카카오 CEO에 선임된 임지훈이란 사람의 사진을 우연히 봤다. 그런데 아는 얼굴이다. 중학교를 같이 나왔다. 그 녀석의 삶은 어떠했길래 지금 카카오의 CEO가 되었을까. 개인의 삶이 행복한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일에서는 제일 높은 봉우리까지 올라갔다. 친구이지만 존경스럽다. 그때는 성적이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녀석은 카이스트에 갔고, 그동안 크고 작은 도전들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내가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을 때 그 녀석은 계속 크고 작은 도전을 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시작이다.


다행인 것은, 가장 후순위였지만, 직장을 구했다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할지... 잘할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른다. 말도 빨리 배워야 한다.


내가 삼성에 계속 있었다면.... 또는 삼성 같은 큰 회사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한다면, 내 인생이 달라질까? 큰 집에 살 것이고 좋은 차를 몰고 매일 출근을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조금씩 벌면서 하루하루를 즐기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작은 기회들을 잡으며 도전을 하고 작은 기회를 큰 기회로 만들고 그러다 운이 좋으면 조금 더 큰 것을 이룰 수 있을지도... 나만의 카카오 회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떻게 살아왔을지 모르는 그 친구처럼...


수동 면허를 위해 장인어른과 운전 연습을 했다. 클러치와 기어봉과 가속페달 조작이 쉽지가 않다. 조금 배우고 연습하더니, 오늘은 그만 하자고 한다. 새로 배운 것을 쉬면서 되새길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다. 배운 것을 체화할 시간이 필요한 것을... 쉬면서 배우는 것... 여유를 가지는 것... 자동 면허는 2주 만에 속성으로 땄는데, 수동은 아주 천천히 체화하며 배우게 될 것 같다.   




그래... 그리고 5년 후 지금...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그때 했던 고민의 답은 이제 어느 정도 찾은 것 같다. 이 질문은 삶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때마다 새로 하게 되겠지만, 이제는 추구해야 할 가치와 방향, 그리고 이를 위한 대략의 계획은 있다. 굴곡은 있었지만, 지난 5년이 내 앞으로 삶에 도움이 되었다고 나름 평가해 본다. 재미있는 것은 5년 전 이맘때 했던, 하지만 까맣게 잊고 있었던 다짐 - 5년 후에는 사장이 될 것이다 - 이 나도 모르게 천천히 실현이 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책을 내겠다는 다짐은 아직 요원하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취업보다 중요한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