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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림 Mar 22. 2016

#3 - 나를 기다린다

혼자서

글 - 관우림

그림 - 정아 (인스타그램 - lint3113)


집으로 돌아가는 길, 사야 할 것들이 있어 마트에 들렸다. 마트는 신도림 역에 있다. 집까지 마을버스를 타야 하므로 장은 귀갓길에 봐야 한다. 가끔 귀찮을 때가 있지만 모른 척 그대로 집에 들어가면 그 날 저녁과 다음 날오전에 사용하거나 먹어야 할 물건이나 음식이 없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장을 보는 일은 가급적이면 미루지 않는 편이 좋다. 큰 유리문을 두 개쯤 열고, 가끔 회전문도 밀면서 통과하기도 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면 매장이 나온다. 마트 매장에 들어서서 한 바퀴 휘 돌아본다. 샴푸를 집고, 칫솔을 들고, 면도크림을 골랐다. 3분 카레 몇 개와 계란 10개 들이 팩을 집어 장바구니에 넣고 보니 먹지 못할 것들과 먹을 수 있는 것들이 한 바구니에 섞여 있는 장면이 어쩐지 어색하다. 계란에 면도크림을 발라먹으면 안 되겠지?


“식빵이 두 봉지에 2980원”

사람들은 소리가 나는 곳 앞을 지날 때마다 멈춰 섰다. 

누군가는 가격이 좀 더 나가는 빵을 가리키며.

“이거요?”

라고 되물었다.

그러면 판촉사원은 하던 말을 멈추고 미소를 지으며

“아뇨. 이겁니다. 고객님”

하며 자신의 손에 들린 봉지를 상대에게 건넸다.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 대개는 빵 봉지를 낚아채갔다. 눈에 띄는 건 판매원의 소리를 듣지 못했을 리 없는데도 못 들었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나도 봉지를 집어 올렸다. 물건이 없어지는 속도가 빠른 것을 느끼고 충동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약간 망설이다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가격에 넘어가 양이 많은걸 집에 사갔다가 그대로 버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혼자 살아서 그렇다. 나 말고는 먹을 사람이 없다. 차라리 부족한 듯 사는 게 낫다. 부족하면 다 먹는다. 감당할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걸 사면 적게 샀을 때보다 훨씬 덜 먹는다. 징크스처럼 그렇다. 언젠가 사과가 싸다며 박스 채로 샀다가 거의 전부를 버리기도 했다. 사과는 아침마다 한 두 개씩 먹는데 정작 사과가 냉장고에 가득할 때는 사과를 잘 먹지 않게 돼버렸다. 시간이 지나 사과는 말라비틀어졌고 못 먹게 됐다. 그래서 2980원짜리 식빵 두 덩어리를 두고 바로 옆에 있는 980원짜리 식빵 한 덩어리를 들었다. 역시 싸다. 980원짜리 식빵은 대체 무슨 맛일까 싶다가도 2980원에 두 덩어리나 980원에 한 덩어리나 별 차이가 없을 것임을 깨달았다.


H는 빵을 좋아했다.

“저녁 먹었어?”라고 물으면

“응 먹었어. 샌드위치”라고 대답했다.

H가 가는 카페에선 일곱 시가 지나면 준비돼있는 샌드위치를 싸게 팔았다. 어차피 다음날까지 팔 수가 없는 것들이므로 조금이라도 싸게 해서 팔 수만 있다면 카페 입장에선 이득이다. H는 낮에도 끼니를 샌드위치로 해결할 때가 많았다. H가 먹는 샌드위치에는 닭고기와 땅콩이 들어가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도 닭고기와 땅콩이 함께 들어가 있는 샌드위치를 추천했는데 나는 그 샌드위치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닭고기와 땅콩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맛있네’라고 말했다. 샌드위치는 H가 혼자 먹기에는 크기가 큰 편이었다. 내가 함께 있을 때면 그녀는 샌드위치를 나에게 나눠줬다. 내가 먹지 않는다고 하면 그녀는 남은 샌드위치를 버려야만 했다. H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다. H는 많은 양의 샌드위치를 버렸을 것이다.


마트에 온 건 쌀 때문이다. 손에 들린 노란색 플라스틱 바구니에는 OO마트라고 쓰여있다. 혼자 장을 보러 와서 카트를 끌지는 않는다. 혼자서 카트를 끄는 일은 혼자서 결혼식장에 방문하는 일과 같다. 축의금을 내고 식장 뒤편에 서 멀찌감치 결혼식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들은 나를 힐끔 쳐다본다. 그들은 자신이 힐끔거리는 일을 상대에게 들키지 않았으리라 생각할 테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알고 있다. 

바구니에는 이미 다른 물건들이 들어차 있지만 마트에는 쌀을 사기 위해 왔다. 쌀이 떨어졌다. 쌀이 떨어지는 데는 어떤 규칙도 없다. 5kg짜리를 사두는 데 어쩔 때는 2주면 떨어지기도 하고 또 어쩔 때는 두 달 가까이 가도 떨어지지 않기도 한다. 30kg을 한 번에 사다 놓으면 오래 두고 먹을 수도 있겠지만 – 자주 사러 가지 않아도 되고, kg당 가격은 5kg짜리에 싸기도 하고 – 역시 부담스럽다. 자칫하면 1년을 넘게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 혼자 먹어야 하므로 쌀은 5kg이면 족하다.


그리곤 기껏 쌀을 사 와서는 라면을 끓인다. 쌀을 씻고 전자밥솥에 넣어 밥이 되도록 기다리는 15분을 참을 수 없다. 


해가 저물어 가면 배가 고파진다. 심해지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신경질 이나기도 한다. 이때의 배고픔은 하루 중 다른 때의 배고픔과는 그 종류가 다르다. 이를테면 점심이나 아 점이 단어 그대로의 배고픔이라면 심야는 굶주림, 저녁은 허기짐이다. 대 낮과 한 밤의 식사 혹은 취식은 홀로 앉아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록 식탁의 드넓은 크기는 언제나 변함이 없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낮과 밤에는 나보다 먼저 자리에 앉아 있는 침묵을 그곳에서 굳이 밀어내고 싶지 않다. 그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대신 내가 마루 바닥에 앉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만한 수고를 할 만큼 내게는 힘이 남아 있다. 배고픔이나 굶주림은 입 안으로 무언가를 넣으면 별 어려움 없이 쉽게 달랠 수 있다. 우유 한 잔으로도 족하다. 허기짐은 다른 면이 있다. 종종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 가혹 시 말하는 법이라도 잊어버렸나 하고 “아!”라며 짧은소리를 내보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그런 걸 잊어먹거나 하는 일은 없다. 다만 하루 종일 내 소리를 받아줄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저녁의 허기짐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침묵은 항상 먼저 집에 도착한다. 그는 소란스럽게 나를 맞이한다. 고요는 제법 씹을 만하다. 아무 맛도 없는 줄 알았던 흰 쌀 밥에서 계속 씹다가 쭉 빨았더니 나는 단 맛 같기도 하다. 침묵은 고요보다 몸집이 크다. 그래서 저녁 식사시간의 침묵은 혼자 맞이하는 게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침묵은 씹어도 씹어도 좀처럼 짓이겨지지 않는다. 그게 차라리 질긴 고기라면 참아보는 게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닐 것이다. 고무타이어. 어쩔 수 없이 씹어보지만 입에서는 고무 냄새가 나고 잇몸이 아려온다. 충치가 있는 쪽으로 씹었는지 통증이 인다. 고통을 느낄 때 사람의 몸에선 웃음을 만드는 화학물질이 삐져나온다고 하지. 잇몸을 바늘로 쿡쿡 찔리는 듯한 느낌이지만 내버려둔다. 그러다 보면 통증에 익숙해진다. 퉤 하고 뱉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입안을 비워 내면 굶는 일 말고는 생각할 수 있는 게 없다. 열심히 씹는다. 그래 도정적의 질은 연해 지질 않는다. 

 

“아씨!”

서두르다 손을 댔다. 물이 끓는 소리를 들었고 냄비 뚜껑을 열었다. 냄비 뚜껑이 많이 달궈져 있었다. 별생각 없이 뚜껑을 집었다. 싱크대 물 꼭지를 틀어 물이 쏟아지는 곳으로 뚜껑을 집었던 손을 넣었다. 화상을 입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응급처치다.

“되는 일이 없구나”

목으로 넘어가는 소리로 말을 했다. 됐던 일도 없고 안됐던 일도 없다. 다른 날들과 다를 바 없는 하루였다. 아침에 일어난 이후 내가 최초로 발화자가 된 순간이다.

귀찮더라도 밥을 할 걸 그랬다. 몇 분만 더 버티면 되는 거였다. 지금이야 밥을 하는 것도 귀찮아하지만 언젠가는 요리를 취미로 삼아봐야지 하는 다짐을 했던 적도 있다. 온갖 종류의 재료를 사다가 칼로 썰어 손질하고 불에 지지고 볶고 삶고 했다. 하지만 도무지 내가 만든 음식이 맛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가 없었다. 혼자 먹고 ‘음’하고 치워버리면 이게 다른 사람에게 해줄 만한 솜씨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음식은 다른 누군가에게 먹이기 위해 만들어질 때 큰 효과를 발휘한다. 음식은 상대의 피와 살이 된다. 요리를 하는 사람은 음식을 통해 그 혹은 그녀의 일부가 된다. 내가 먹을 음식을 내가 직접 하고 있는 상황. 내가 나의 일부가 되는 일은 나의 흥미를 충분히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나는 내게 밥을 대접하는 일에 인색하다. 요리에 대한 관심은 빠르게 삭아서 없어졌다. 


H에게는 요리를 해줄 일들이 있었다. 한 번은 H가 미역 죽을 먹고 싶어 했다. H는 초가을 감기에 걸려있었다. 입맛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미역 죽은 혼자서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음식이었다.

“미역 죽? 미역 죽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는데”

“인터넷 찾아보면 되잖아”

“찾아볼게”

만드는 방법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미역 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재료는 있어?”

“미역은 냉동실에 있어”

“쌀도 있지?”

“미역 손질하는 법은 알아?”

“그냥 물에 불리면 되는 거 아냐?”

“……”

H는 말없이 의자에 가 앉았다.

“간장 쓸게”

“……”

미역 죽을 쇠솥에서 한 국자 푹 퍼서 그릇에 옮겨 담았다. 쟁반에 미역 죽이 담긴 그릇을 놓고 김치를 먹을 만큼 덜어놓은 종지 그릇을 올렸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챙겼다. 그리고 그녀에게 가져갔다.

“먹여줘”

“……알겠어”

미역 죽은 그녀에게 해준 내 마지막 음식이다. 그녀도 나도 다시 혼자가 됐다.


잇몸이 뻐근하다. 엊그제 칫솔질을 하다 아래쪽 잇몸을 찔렀다. 그렇게 잇몸에 상처를 내고 나면 반드시 바로 그 다음날이 아니라 다음날의 다음날부터 신호가 온다. 피도 나지 않는다. 잇몸에 난 상처는 왜 하루 이틀이 지나야 벌어질까. 상처가 벌어지면서는 통증도 없다가 상처가 하얗게 완전히 피어오르면 그때서야 쿡쿡 쑤신다. 잘 챙겨 먹으면 낫는다. 하지만 잘 챙겨 먹지 못한다. 상처는 오래갈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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