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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팡이 Apr 19. 2016

33. 당신이 커피를 좋아하면 좋겠어.

 당신은 어떠한가요?


당신이 커피를 좋아하면 좋겠어.


나는 커피라떼. 시럽을 넣지 않은 우유의 단백함이 베인 깔끔한 맛과 커피콩의 쓴 맛이 베인, 텁텁하면서도 달다구리한 따뜻한 커피라떼가 좋다.    


생각해보면 매일매일 마시는 것 중에 하나가 커피였다.

철부지였으니 그 맛을 알 리 없었다. 고등학교 땐, 그땐 잠만 줄일 수 있다면 뭔 들 못하겠어? 라는 마음으로 호로록 마시기 시작한 한 캔의 커피가 문제가 됐다.    


그렇게 캐러멜과 같은 끈적한 물이 내 목을 적셔줄 때마다. “그래 이제 졸지 않고 하는 거야.”라며 시시콜콜 나에게 다짐을 주었다.    


지독히도 공부하던 시절이 지나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커피를 놓을 수 없었다. 다이어트를 할 때 아메리카노가 몸에 좋으니까 한 잔.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 위해서 커피숍에서 또 한 잔. 남자 동기들이 ‘야 담배 한 대 하자’며 우르르 나갈 때, 난 여자 친구들에게 ‘야 커피 한 잔 하자’며 고요하고도 고고하게 동전을 찾았었다.   


수업 시간이 남을 때에도 커피 한 잔. 선배에게 잘 보일 때에도, 예쁜 후배가 “안녕하세요.” 인사할 때에도, “커피 한 잔 할래?”    


시험 때가 되면 박카스, 에너지 음료, 피로회복제 등을 쌓아두고 이틀 꼬박 새며 공부를 할 때에도 물 대신 마셔댄 것이 가장 기본 중에 기본이 커피였으니까 커피는 나에게 그만큼 중요한 존재였다.    


내 앞에 어떤 멋진 남자가 공부를 하고 있었고, 때마침 그 남자에게 고마운 일이 생겨서 쪽지를 남길 때에도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조금 비싼 캔 커피를 건네는 것이었다. 우린 그 계기로 수많은 바람의 결들을 나누었고, 커피 상표 조지아의 이름을 딴 ‘조지’는 그 남자를 향한 나만의 애칭이 되기도 했었다.    


그 후 오랫동안 아파서 자연스럽게 커피를 끊게 되었고, 그만큼 많은 시간과 공간이 달지 않고, 쓰디썼다. 무의미한 나날이 계속되었었다.     


다시 나를 일으키기 위해, 꿈을 위해, 취업을 위해 학원가를 찾게 되었을 때에도 가장 먼저 찾았던 것이 커피였다. 워낙 수험생이 많은 터라, 아메리카노는 한 잔에 1000원, 커피라떼는 1500원. 돈은 없었어도, 커피는 마시고 싶었고, 공부는 해야 했고, 그래서 아침 대신 매일 하루에 3~4잔 씩 속이 쓰릴 정도로 커피를 마셨다.     


추운 겨울이었다. 선배와 나는 1차 시험을 치렀고, 2차를 준비하고 있었고, 그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우리는 큰 맘 먹고 커피 전문점에 갔다. 큰 맘 먹고 산 4900원짜리 커피. 그게 벌써 4년 전이었으니 가난한 나에겐 제법 큰돈이었다. 후후 불며 호록 호로록 마신 뒤, 나와 선배는 두 눈을 반짝이며, 마주보고는,

 “팡아, 진짜 마싰다.”      “와 그죠? 언니.”라며 하염없이 들썩댔다.    


간혹 몇몇 사람들은 그런 비싼 커피를 왜 마시냐며, ‘돈 낭비다’라고들 하는데 그건 정말 커피 맛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해대는 잔소리이다.


나에게 커피는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가끔씩이라도 좋은 값에 사 마셔야 했다.


  어디 그 뿐이던가,    


한 날은 울면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눈물을 삼키려고 책을 머리에 파묻고 있더라니, ‘학생 열심히 하네’ 라며 낯모를 아저씨가 건네준 시리도록 애젓한 한 캔의 커피도 있었고,    


매일 함께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내 친구가 어느 날 남자친구가 생겨, 엄청 섭섭했었는데. 친구가 나를 위해서 일부러 (남자친구랑 커피를 이미 마셨음에도) 나랑 한 잔 더 마셨던 커피도 있었다.    


아직도 공부를 하고 있는 나에게, “공부할 땐 그래도 커피지.” 라며 보내 준 응원의 커피 선물들.    


“나는 매일 아침 예쁜 잔에 커피를 마시면 하루가 상쾌해지더라. 그러니까 너도 그렇게 상쾌하게 공부해.” 라며 보내 준 예쁜 커피 잔 선물.    


친구가 보고 싶어 일하는 곳에 점심시간에 들렸더니, 굳이 같이 공부하는 사람에게 전해주라며 나에게 건네준 1+1 커피.   (아직도 모를 거다. 같이 공부하는 사람은 커피 안 마시는 거.. 참 고맙다.)    


그런 반면, 서러운 날들도 있었다.

고시원에 살 때였다. 그 사람 참! 모 났었다. 별 짓 안했는데 하도 주의를 주길래, 멋쩍은 마음에 포스트잇에 ‘죄송합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캔 커피를 건넸다. 그걸 본 그 사람은 한 시간 가량 지났을 때, ‘저는 이런 걸 안 마셔서, 돌려드립니다.’라며 돌려주더라. 내 성의를 생각하면 그냥 버려도 될 것을. 그걸 굳이 돌려주겠다니. 내가 독이라도 탔냐..    


날이 너무 좋고, 바람은 살뜰히도 불어오고, 이렇고 저렇고 시시 껄껄한 이야기를 보따리를 풀어놓고는, ‘왜 매사에 그렇게 진지하니? 넌 너무 말이 많아.’라며 내던져진 내 마음들. 나는 너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커피 한 잔에 이런 저런 두런두런 이야기를 쓸데없이 한 건데 말이야.    


  그렇게 되니 새로 알게 된 사람이나, 처음 본 사람이 커피를 안 마신다며 절레절레 하면 어쩐지 엄청 풀이 죽어버렸다. 그 사람과 정들기가 여간 쉽지 않다.     


그러니까 말야.


그러니까 나는 당신이 커피를 좋아하면 좋겠다.    


그러니까 나는 당신들이 따뜻하고, 달디달고, 부드러운 커피를 즐기면 좋겠다.    


당신들이 커피에 담긴 은밀하고 기막힌 아름다움을 알아주면 좋겠다.     


그걸 알아서인지, 매번 코코아나 키위주스만 마시던 녀석이 최근엔 처음으로 내가 추천해준 녹차라떼에 도전했더라지.      


그럼 오늘도 당신. 나와 함께, 커피 한 잔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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