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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

안경을 닦다

by 단팥빵의 소원

"우리가 이렇게 걱정하는 게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한 교회에서 새가족팀을 맡고 있다. 교회를 아예 처음 오는 새신자부터 교회생활을 경험한 경력자로 교회를 옮기는 새신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몇 주간 맞이하고 양육팀으로 등반시키는 일은 사람관계의 초섬세한 레이더를 발동시켜야 한다. 새신자분들은 본 교회에 정착하고 익숙한 사람이 아니니까, 어떤 속마음을 품고 우리 교회로 오는지 새신자의 행동표정 하나하나, 말하나 하나 신경 써야 한다. 안 좋은 마음을 가지고 오는 사람부터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받고 싶어서 오는 사람까지 천차만별의 이유로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찾아온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사람을 잘 관찰하고, 판단해야 하는 순간과 판단하지 말아야 할 순간을 잘 분별하는 것까지라고 생각한다.


새신자가 우리 교회에 첫 발걸음을 하고, 새가족 교육과정 3주 차를 마치고 등반하기까지 새가족리더들끼리 새가족을 두고 많은 소통을 한다. 각각 한 명이 바라보는 모습을 서로 나누며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는 게 그분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오해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을 나눈다.


새가족 교육을 진행하고 상대방을 관찰하면서 우려되는 부분도 새가족 팀장들끼리 나누게 되는데, 낯선 사람을 공동체로 보내는 일은 예측할 수 없는 변수를 집단에 투입하는 것 같아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모르기에 정말 조심스럽다. 상대방을 함부로 판단해서 상처 주는 일도 없어야겠지만 경계심을 풀고 무작정 감싸안는 일도 위험하다.


새신자 마음의, 불투명한 씨앗이 등반하고 나서 공동체생활을 본격적으로 할 때 어떻게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니까, 믿음이 성장되어 공동체 안에 든든한 열매를 맺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욕심을 내비치며 공동체를 흔드는 경우도 있으니까 말이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신뢰하였지만, 상대방이 내비친 불신의 행동이 결과로 나올 때 상처받는 건 나를 포함한 거대한 공동체가 될 것이고, 상대방을 신뢰하지 못하고 날카롭게 경계했을 때 상대방이 받은 상처는 나를 포함한 거대한 공동체에서 준 상처가 되는 거겠지. 어느 쪽이든 타격이 크다.


레이더를 발동하되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며, 함부로 판단하고 바라보지 말기, 그 지혜가 필요하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니까 내가 쓰고 있는 안경이 얼룩덜룩 더러울 수도 있다고 인정하는 겸손으로 지혜를 구해본다. 결국 한 영혼과 소통하고 부딪치며 경험할 때 마음속에 담아둬야 할 생각은 '나는 틀릴 수도 있다'이지 않을까 싶은 마음을 담아본다. 내 마음이 투영돼서 보이는 시야의 안경은 상대방을 왜곡해서 바라볼 수도 있으니까


나는 미래를 예언할 수 없고, 사람의 속마음을 독심술 할 수 없는 인간이다. 그저 사랑으로 관찰하고 조심해야 할 부분은 판단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꾸준히 관찰하며 나아가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어떤 정신분석가들은 사람은 타인의 실체가 아닌 자신의 마음에 비친 타인의 표상과 상호작용할 뿐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표상과 실체의 간격은 영화 속의 아득한 우주공간만큼이나 떨어져 있지요. 그래서 우리는 곁에 누군가가 있어도 고독할 때가 많습니다. 내 마음 속의 타인과 실제 그 사람이 얼마나 같을지, 우리가 그 사람을 이해했는지 아니면 단지 이해한 것으로 상상하고 있을 뿐인지 우리는 영원히 알 길이 없습니다.


책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144-145P'


우주와 같은 상대방의 마음을 내가 쓴 안경으로 읽어낼 수 없다. 내가 쓴 안경은 모든 걸 읽어내는, 완벽한 투시안경이 아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시시비비 가릴 수 없다는, 그 한계를 먼저 인정하고 나아가야 할 길을 생각해 본다. 새가족팀의 일원으로서 새신자 한 영혼을 감당하고 책임진다는 건 상대방의 영혼에 담긴 우주를 존중해야 할 책임감을 생각해 본다. 그건 상대방을 함부로 판단하라는 건 아닐 거다. 내가 내뱉는 말과 행동도 점검하며 상대방에게 어떤 프레임을 씌우고 있지는 않은지, 안경을 자주 닦으며 점검해야지


안경.jpg


<안경>

초등학교 2학년, 너와 처음 친구가 된 순간을 떠올리니 반평생 이상을 함께한 죽마고우구나

나의 눈이 되어준 너에게 고맙지만 가끔은 헷갈린다. 내 시력이 지금 안경시력과 맞는 건지.

안 맞으면서도 그냥 네가 보여준 세상에 적응해 버린 건지 말이야.


세상을 선명하게 보여주지만

너는 진짜세계를 한 꺼풀로 가리는 유리조각처럼 느껴지기도 해


열심히 살다 보면 안경 닦는 걸 놓칠 때도 많더라

그냥 눈앞에 아른거리는 날파리가 비문증인가 싶다가도

깨끗한 안경닦이로 닦아내는 순간 풀려버리는,

깨끗해 보이는 세상에 새삼 생각해 본다.


가만히 있어도 어느 순간, 먼지가 달라붙고 더럽혀지는 안경아

너의 문제가 아니라 너를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안경닦이로 자주 닦고, 주기적으로 안경점에서 점검하며 관리하는 마음가짐으로 너를 대할게


네가 보여주는 세상은 소중하니까.

안경도 닦고 마음의 안경도 자주 닦으며 몸과 마음 모두 선명하게 세상을 바라보려고 한다.

앞으로도 함께 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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