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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와 선물

선물을 척도 삼아 관계를 되돌아본다.

by 단팥빵의 소원

A. 사건

작년여름, 직장에서 경위서를 작성했다. 당시 5년 차를 달리고 있던 타이밍의 무더운 여름이었다. 사람관계에서 중립을 지켜야 할 입장이었다. 그 중도를 고수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대처했다. 직장에 파란을 몰고 올뻔한 사안이었고 사람들에게 휩쓸렸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컸던 내 마음에 구멍이 뻥 뚫렸다. 자존심과 자존감이 무너지고 교훈을 얻어갔던 사건이었다.


그 당시 8월은 글쓰기모임에서 동료분의 결혼식이 있었다. 그 사건으로 여유가 없다 보니 신경 쓸 테도 없이 지나가버렸다. 결혼식 전달, 청첩장까지 나눠주는 식사자리에 참석해 근황을 나누고 소소하게 정을 나누었던 순간이 있었다. 청첩장도 받았겠다 참석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분명 혹시 결혼식 당일에 못 가게 되면 연락해야겠다는 생각까지도 있었는데 어디론가 증발해 버리고 자괴감에 소통할 타이밍을 놓였다.


그리고 몇 달 후 겨울이었다. 결혼한 글벗님을 포함한 글쓰기모임 멤버가 몇 명 모이는 날이었다. 그날이 결혼식 축하한다고 어떤 메시지도 남기지 않은 단절을 회복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저녁약속에 만나기 전 이케아를 몇 바퀴 돌았다. 소소한 마음을 담아 결혼선물을 준비해야지 싶었다. 그렇게 이케아에서 몇 바퀴를 돌았다. 수저세트도 보고 컵도 구경했다. 종류는 정말 다양했는데. 귀여운 것부터 엘레강스한 것까지 취향별로 다 구비되어 마음을 전달할 선물 고르기 좋은 장소였다.


'그분 취향이 뭐였지?'


문제는 두려움이 컸다. 상대방의 취향을 반영한 선물이 아닐까 봐 고민을 몇 번이고 하다가, 결국 '안 준 것보다 못한 선물이면 어떡하지?'라는 소심한 마음이 크게 부풀려졌다. 우유부단함은 극대화되고 나는 결국 빈손으로 모임에 참석했다.


B. 사건

"집들이하러 한번 놀러 갈게~!"

복층 다락방이 있는 아담한 집을 마련한 아는 동생집에 놀러 갔던 순간이 떠오른다. 집들이 선물을 한창 고민하다 정말 간단하게 잘 쓰고 있는 비누 두 개 정도만 가지고 갔다. 집을 제대로 구경하고 나서 늦더라도 분위기에 맞는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손님대접한다고 집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크진 않지만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에 공간활용이 잘돼어 있는 그곳에서 하루를 보냈다. 동생이 만들어준 와사비프레첼초콜릿은 독특하고 맛있었다. 준비해 준 대패쌈과 간장게장은 나를 사랑으로 살찌게 만드는 특급요리였다.


오랜만의 근황을 나누며 정신없이 수다를 떨었다. 퇴근 후 피곤하지만 반가움이 만남에 생기를 주었다. '피곤한 상태'라는 걸 망각한 채로 이야기 속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새로운 걸 배우는 걸 좋아하는 그 아이의 신선한 일상이야기를 들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은 시간이라 그런가? 은은한 달빛을 떠올리는 조명으로 분위기를 낸 사랑스러운 다락방에 취해 꿀잠 잘 수 있었다. 불면증이 계속되던 중에, 오랜만에 찾아온 꿀잠이었다.


동생집의 1층은 한 면에 크게 차지한 통유리창문이 기억난다. 앞에 있는 붙박이장 옵션느낌의 서랍장은 창문 앞으로 커다란 선반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 위에 걸쳐진 노란빛 해바라기 그림을 보면서 동생이 클램프의 키스 명화를 좋아한다는 것이 떠올랐다. 집으로 돌아와 그 집들이의 온기를 떠올렸다. 불금의 저녁, 퇴근 후 찾아온 나에게 차를 주던 그 컵에서 느껴지는 애정의 온도가 있었다. 그 기분 좋은 우정의 순간을 떠올리며 나는 황금빛 키스 그림이 그려진 커피잔을 집들이 선물로 주었다

택배로 선물을 받고 너무 좋아하던 그 아이의 연락이 떠오른다


A사건과 B사건을 경험하고 나서, 선물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선물하는 사람의 센스도 기본이지만, 상대방과 얼마나 가깝게 알고 있는지, 관계를 되돌아볼 수 있는 척도이지 않을까, 내가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드러나니까. 또 상대방에게 선물하고 말겠다는 의지와 자신감도 필요하겠지. 상대방과의 관계에 자신 없으면 생각하다가도 못 꺼내는 게 선물이기도 하다. 마치 '연락'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상대방이 생각날 때, 바로 연락하는 사람이 있다. 상대방이 생각나도 마음으로 삼키는 경우도 있고. 그건 내가 소통할 에너지가 있을 때, 상대방과 친하다는 자신감이 있을 때 연락은 일어난다. '내가 연락할 때 기뻐할까?'라는 질문에 긍정적일 때 더욱 소통할 에너지가 생긴다. 선물도 '내가 상대방의 이런 부분은 잘 알고 있으니까, 자신 있으니까 선물하면 좋아할 거야'라는 확신이 있을 때 더욱 선물하는 용기가 생기겠지



<선물:찻잔>

너는 별 볼 일 없이 작아 보이지만 얼마나 큰 의미가 담긴 줄 아니.

커피 한잔을 넘어선 거대한 애정이 담겨있어.

그 아이와 보낸 시간이 누적되어 담겨있어.

그 아이의 기쁨을 알고 있어 행복하다는 마음이 담겨있어


너와 나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내가 그 아이의 집을 찾아가는 순간

너의 가치는 또 거대해질 거야.

애정을 담아 너로 커피를 대접하겠다는 그 아이의 속삭임이 떠오른다.

곧 만나러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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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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