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낡아버린 문

들어버렸다

by 단팥빵의 소원

A님 "냉장고에 참외 있으니까 가져가"

B님 "어떻게 나눌까요"


오래전, 들으려고 했던 게 아닌데 들어버렸던 순간을 떠올린다. B님은 나까지 생각해서 참외를 어떻게 나눌지 물어본 것 같은데 A님의 답변에 음소거가 씌워진 걸 보니 나는 배제된 나눔이었던 거다. 몇 분뒤 B조심스럽게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사회생활하면서 듣고 싶지 않은 순간을 들어버린 찜찜함이 떠오른다. 그 순간 더 어색해져 버린 내 마음은 A와의 거리를 두고 기대하지 말아야겠다는 서운함을 비공식적으로 내비쳤던 오래전 경험이 있다.


B가 사랑스러운 건 알겠는데 센스 있게 내가 없을 때 나누어줬으면 좋았을걸......이라는 아쉬움까지 더해본다. 내가 그 정도로 귀가 밝다는 걸 모르신 건지. 나에 대한 배려를 전혀 생각하지 못한 건지 원망스러웠던 과거가 있다.


"B양이 사랑스럽고 일 잘하는 건 알겠는데요. 유치해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참외 같은 거 주려면 몰래 주세요.. 기대하지 않을 테니까... 저 생각보다 귀 밝으니까... 전날 두릅 받으시고 영양제같은 부분도 잘 챙겨주시니까 그런 건 아는데, 입장에서는 복잡 미묘한 생각이 스친 상황에서 더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서 힘드니까 차라리 저 자리에 없을 때 이야기하세요"


답답한 마음에 한마디 하고 싶다가도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라는 옹 좁은 내 마음을 되돌아볼 때 스스로 상처받는다. 정말 센스 있는 사람은 그런 서운한 부분도 상대방 입장생각해서 유머러스하게 잘 표현하는 것 같은데......, 내가 상처받은 건 대화 속 오가는 그 기류였다. 내용은 그럴 수 있지 하다가도 내가 옆에 있는데 조그맣게 속삭이며 나를 배제한 나눔의 분위기 속뜻이 나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 같아서 불편했다. 나도 나름 비싼 사과당 애플파이도 드리고 소소하게 간식 챙겨드렸던 기억까지 나니 서운함이 더 배가 되었다.


그리고 힘들었던 건 그 당시 그 관계의 문이 낡아버렸구나를 느끼던 시기여서였다. 열어야 할 때와 열어야 하지 말 때를 구분하지 못하고 자주 열다 보니 더 빨리 낡아버렸다는 안타까움이 개인적으로 있었다. 힘들었던 시절부터 나의 약점까지 너무 오픈되었기에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프레임이 꽤 강하겠구나 라는 예측이 상대방의 말에서 느껴질 때, 나는 뼈저리게 사회생활의 교훈을 얻었던 기억이다. 그 서운함이 누적된 상태에서 발생한 에피소드여서 더 어려웠었다.


사회생활의 지혜는 열어야 할 때와 열어야 하지 말 때를 지키는 건, 선을 지키는 것이구나 싶다.

과하지 않은 소통과 과하지 않은 오픈. 그게 나를 지키고 상대방과의 관계를 지키는 길이구나


몇 년 전 보았던 영화 '완벽한 타인'이 생각난다. 몇 명이 모인 커플모임에서 게임이 시작된다. 핸드폰을 올려놓고 저녁 먹는 동안 문자, 카톡, 전화, 이메일 모두 공유하는 거다. 그러면서 일어나는 관계의 파국을 다룬 영화다. 결혼을 앞둔 커플이 전화를 오픈하면서 내연녀의 존재를 알고 그녀가 임신한 것까지 알게 되는.... 어이쿠..!!

사람을 적나라하게 보이는 것의 위험성을 생각해 본다. 중요한 건 스스로를 잘 관리하는 사람이, 내 삶과 내면을 수시로 잘 정리해야 부끄럼없이 내보일 수 있는 것 같다


<문>

너무 자주 사용 안 해도 비밀번호를 까먹어버린다.

너무 자주 사용해도 낡아버린다

적당히 열고 내 방을 오픈해야 되는구나.

더불에 내 방을 청소하고 나서 오픈하는 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인 거겠지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08화오래된 관계의 복잡 미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