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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관계의 복잡 미묘함

감사한 마음을 품고 악역이 되어버렸다

by 단팥빵의 소원

복잡한 마음이 누적되어 서운함이란 강이 쌓이기 시작한다. 상대방과 대화의 수량을 줄이고 어느 순간 내가 할 일만 하고 할 말만 하고 관계에 적막함을 만든다. 나는 모차르트 영화에서 주인공의 시기질투하는 살리에르인 걸까, 결핍이 악역을 불러내고 트러블을 일으키는 주연이 된다. 드러내느냐 결핍의 썩은 강으로 남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나는 상대방을 신뢰하는데 그만큼 신뢰받지 못한다 느낄 때. 심지어 늦게 들어온 후임자분이 상대방에게 더 신뢰받는다 느낄 때. 에구머니나, 그분은 자존감까지 높아 보인다. 높은 자존감을 무기로 나에게도 사랑스럽게 다가오는 그분을 미워할 수도 없을 때 난 안절부절 내면에 살리에르를 몰래 숨겨둔 느낌이다. 오랫동안 함께 일하면서 상대방을 신뢰하게 되면서, 신뢰를 받고 싶은 마음이 조금 크지만 자신이 없어진다. 결국 살아오면서 생성된 결핍까지 굴러들어 와 거대한 눈덩이로 내 마음에 콱 박혀버린다. 상대방을 밀어내고 벽을 만들어 버렸다.


5년 차 관계에 큰 과제가 생겼다. 1순위가 고마움인 건 맞다. 살아가면서 좋은 의미로 만나기 힘든 선임자분인 것도 안다. 한 직장에서 5년 차의 파노라마 영화필름을 되짚어볼 때 버틸 수 있었던 건 상대방의 수많은 배려가 있어서 인 것도 안다. 지금 내 마음에 뒤엉켜있는 감정들은 '내가 상대방의 신뢰를 많이 무너뜨렸다'라는 불안감이 조금 많이 커서, 그게 이 생활의 판도를 조금 크게 좌지우지하는 것 같다는 예상도 한다.


몇 년 치 관계에서 누적된 불안감은 상대방과 소통할 때 극대화된다. 상대방의 한마디에 '와르르르' 쏟아지는 해석은 순식간에 나를 감정적으로 만든다. 그래서 작년보다 올해가 더 농담이 줄었다. 괜히 예민해지고 싶지 않아 보고할 말만 하게 되고 해야 할 말만 하게 된다. 즐겁게 웃으면서 일하고 싶은 마음은 소심해지게 된다.

결국 내가 쓴 안경이 시야를 조금 많이 왜곡하는 거라는 결론을 내려본다. 자존감 낮은 내 마음으로 보는 세상은 높은 곳을 못 보니 좁게 보일 수밖에 없단 걸 안다.


"OO님은 마음속에 쌓아두시다가 터지시나요?"


최근 관리자와의 면담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그걸 시작으로 조금은 속마음을 내비쳤던 시간을 보냈다. "늦게 들어온 분이 성격도 밝으시고 손도 빠르시니까 자신이 없네요. 그래서 이번에 승진이 부담스럽기도 해요"라는 솔직한 마음을 고백하고 나니, 조금은 후련해진 마음이 있다. 무엇보다 상대방이 '나만 가진 감정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느끼고 있는 감정'이라고 이야기해 주니 안심이 된다.


'내가 가진 마음은 자연스러운 이야기인 거겠지'

당연할 수 있는 마음인 걸 알면서도 상대방이 들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해 줘야 조금은 가벼워지는 마음이 있다. 결국 무거운 마음은 소통으로 어느 정도 무게가 덜어질 수 있다는 걸 느낀다. 100%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조잘조잘 개인적인 이야기를 올린다 해도 결국은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문제이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글을 쓴다. 오래된 관계의 복잡 미묘함은 회사뿐만 아니라 친구, 가족에게서도 일어나는, 다루기 힘든 마음인 거겠지.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의 말 한마디를 함부로 해석하기보다 최대한 많은 대화를 시도하며 새로운 사람을 알아간다는 마음으로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애증'이란 말을 떠올려본다. 애정과 증오. 오래된 관계에서 그 둘은 양쪽 극단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둘 다 지쳐 줄다리기를 놓는 순간 관계는 끊어지고 '무관심'으로 바뀌어버리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다. 사람관계는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다 맞출 수 없는 거니까, 오래된 관계에 누적되는 건 애정과 증오 둘 다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겠지.


두 가지 다 존재할 수밖에 없는 거라면 최대한 '애정'쪽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오늘 하루 노력하자는 다짐을 한다. 감사하다는 말도 전하고 근황도 주고받으며 관심을 놓지 않기를. 그 관계는 정말 소중하기에 오늘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거니까 증오라는 악역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은 멀리해 보자는 목표를 세워본다.

'하.... 할 수 있겠지, 도전~!'


<그림>

네가 주는 소통방식이 참 부럽다

고요히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관객과 소통하는 너의 매력에 매료되는 것 같아

붓하나를 쥐고, 너 하나를 완성시키기까지 오랜 과정을 거쳐 복잡 미묘한 감정을 예술로 승화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버리는 창조자의 인내심이 너를 통해 보인다. 한 번의 폭발적인 소통을 위해 오랫동안 견디어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켜버리고 말잖아


나의 소통방식은 매력적이지 않거든.

바로바로 소통하지 않고, 참다 참다 폭발해서 사람들이 나를 멀리하게 만들 때도 많더라.

특히 감정적이어서, 쌓아둔 감정을 잘 흘려보내지 않으니까 묵은 감정이 너무 버거워.

오래된 관계가 너무 어려울 때가 많아. 관계를 묵묵히 인내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싶다.


막연히 상상해 본다.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 얼마 나의 실패도 있었을까 라는.... 얼마나 많은 종이를 버리고 붓과 물감을 소진했을까 싶은 추측을 해본다. 그 과정을 생각하며 나도 매력적이지 않더라도 실패할 것에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소통하기 위해 말을 던지고 수없이 도전해야겠다는 약속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응원해 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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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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