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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Jul 07. 2020

아직 성공하지 못한 번역가의 다짐

내 기준 성공한 번역가 김고명의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고 싶습니다>

 바른번역에서 그래도 꽤 잘나가는(?) 번역가들을 많이 배출하는 것 같다. 나만 빼고 다들 잘 먹고 잘사는 것 같은 비극적인 느낌. 몇 개월 전, 번역가이자 작가, 일러스트레이터에 유튜버로도 맹활약 중인 서메리 작가가 바른번역 출신이란 것을 알고 나서 나 혼자 괜히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느낌을 받았었다. 그 당시 서메리 작가가 쓴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를 읽고 나서 나도 이제 좀 더 열심히 해보자, 하고 다짐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언제나 책 표지나 소개 글에 ‘번역가’라고 찍혀있으면 꼭 들춰보게 되는데 이 책,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고 싶습니다』도 그랬다. 일단 제목이 솔직담백해서 좋았고 소개 글에 ‘출판 번역가로 12년 째 생존 중’이라는 문구에 펼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저자는 또 운명처럼 바른번역 출신 번역가라니.


 실패한 번역가라고 말하기는 슬프고 나는 아직 성공하지 못한 번역가, 일 년에 역서 한 권 간신히 내는 번역가, 샘플 경쟁에 번번이 밀려나는 번역가이다. 역서가 있으니 번역가라고 할 수는 있지만 내가 생각해도 번역 실력이 너무 부끄러워서 내 입으로 번역가라고 말하기 어려운, 그래도 남들이 번역가라고 불러주면 그게 그렇게 뿌듯한 삐약이 번역가. 작업할 때마다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며 죄 없는 입술과 손톱을 쥐어뜯으면서도 번역가이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 그게 나다.


 나는 왜 번역가로 성공하지 못하는가, 왜 일감이 뚝뚝 끊기는가, 왜 안정된 작업량을 확보하지 못하는가,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번역가로서의 습관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아서다. 성공한 번역가들의 책을 읽어보면(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성공한 것이리라) 확실히 건강한 삶의 패턴을 지키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고 주말엔 쉬고 하루에 작업할 분량을 거의 지킨다.


 나는 어떻냐면, 번역 일을 하는 기간에는 날밤을 새우고 점심 먹을 즈음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해가 떠 있으면 집중이 안 되는 병이 있는지 낮에는 사부작거리거나 놀며 시간을 허비하고 모두가 잠든 시간에야 비로소 안정된 마음으로 반짝 집중력을 발휘해 작업할 수 있다. 번역 기간에는 다른 책을 읽을 시간도 마음도 없으며 하루 작업량을 채운 적이 놀랍지만 단 한 번도 없다. 거의 매번 마감을 코앞에 두고서야, 발등에 떨어진 불이 턱밑까지 타올라야 잠을 줄이며 초인적인 힘을 끌어내는 편이다. 이런 나를 남편은 시간 변태라고, 아빠는 아드레날린 중독이라고 부른다.


 발전이 있을 수가 없다. 내가 무슨 천재도 아니고 타고난 언어적 감각이 풍부한 것도 아니고. 새로운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나는 매번 작업하며 불행하다고 느낄 테고 내 몸을 혹사시키다가 주변 사람들까지 불안하고 힘들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이런 상태로는 아이가 생기면 번역가로서의 커리어는 거기서 끝날 수밖에 없을 테다. <포기한 번역가입니다>, <번역가로서 실패했습니다>라는 책을 내고 싶은 것이 아니면 남들 하는 만큼만 해보자고 오늘도 다짐한다. 꾸준히 읽고 쓰고 옮기는 사람이 되어보자고, 꼴지 신화 같은 거 대기만성 같은 거 나도 한 번 해보자고 마음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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