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savina의 인형이야기
어린 시절, 웃었던 기억보다 울었던 기억, 외롭고 쓸쓸하고 공허했던 기억이 어느 때보다 많이 남아 있는 건 내가 확실히 평범한 아이는 아니었다는 반증이다. 지금은, 내가 별종이라 별종 취급을 받다 보니 (심한 편식쟁이라 허약체질이기도 했다)그랬던 거라고 스스로에게 설명 가능하지만, 그때는 내가 왜 그런 심정이 되어야 하는지를 스스로 알지 못해 당혹스러워했던 기억 또한 뚜렷하다.
그리고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인형에 온갖 의미를 부여해가며 내가 인형애호가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늫어놓았던 나로서도 결코 부여하지 않았던 의미들이 있다.
절대로 그들에게 현실의 사람들에게 부여하는 것과 똑같은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었다.
이를테면 현실에 존재하는, 혹은 현실에 존재할 법한 인물들에게 인형을 대입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건 인형을 의인화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유즈는 유즈일 뿐이고 선나는 선나일 뿐이다. 꿀벌도 홍단도 모두 마찬가지다. 그들이 내 가족이나 연인을 대신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살아있는 사람을 대신할 수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를 부여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 인형을 자신의 딸 처럼 혹은 근사하게 꾸민 남자 인형을 자신의 애인처럼 여기며 자신의 환타지를 대리만족하는 사람들을 보며 약간의 혼란을 느끼는 건 어떨 수 없다.
하지만 판타지 자체는 결코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다만, 내게 있어 인형은 결코 판타지의 충족을 의미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내게 있어 너희들의 의미가 무엇이어야 했느냐고 물었을 때, 홀연히 잊고 지내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삭막한 날들의 공허를 잊게 하는 대신, 그 고독을 정면으로 돌파하며 여기까지 오게 한 나의 강인함을 이끌었던 무형의 친구들. 그렇다. 친구만큼은 꼭 현실이 아니어도,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은 관계니까.
더 솔직히 표현하면, 그 어린 시절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애정의 결핍을 채워줄 장난감이라고 해도 결국 무방하다.
존재에 대한 규정에 골몰하느라 오늘도 부질없이 시간을 잡아먹고 말았다. 늘 그렇듯, 내 곁을 지키는 아름다운 존재들과 더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