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savina의 인형이야기
어쩌다 보니, 지난 회에 했던 이야기의 연장선이 되는 주제를 이어서 이야기해야 하게 되었다. 다름이 아닌, 인형이 현실을 대체할 수 없다는 논지의 연장선이다.
나름 꽤 오랜 시간 동안 인형에 탐닉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 나 자신 믿기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결론내리게 된다.
많은 사람들의 손끝에서 탄생하고, 내가 정성껏 가꾼 결과로 보여지는 아름다운 인형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인간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름답지도 않고 매끈하지도 않고 젊지도 어리지도 않은, 추하디 추한 얼굴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얼굴 말이다.
물론 내가 좋아해서 수집하는 여자 성별의 인형에만 만족하지 않고, 남자 인형을 수집하는 사람들의 인형을 관찰하며 남자와 여자와, 아이와 중년을 포함한 모든 인형의 얼굴을 탐색했다. (여기에서 내가 탐색한 얼굴들을 일일이 보여줄 수 없는 이유는 순전히 저작권 문제이므로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러면서, 내가 반드시 사랑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내게 있어 어떤 이유로든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 몇몇 얼굴들을 떠올려 보았다. 과연, 인형이 현실에서의 그 얼굴들을 대체할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인형들이, 사람보다 아름답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아름답다는 것이, 과연 눈으로 보여지는 것 이상을 의미하는 가정 하에서라면 어떨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아는 아름다움은, 분명히 눈으로 보여지는 것 이상의 것을 의미했고, 통상적인 의미에서 아름답다고 규정되는 기준을 통해서만 충족되는 것도 아니었다 .
사실은, 얼마 전부터 계속 머릿속을 떠오르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아마 현실에서 존재한다면, 반드시 내가 사랑하게 될 사람의 얼굴이다.
현실에서 그런 얼굴을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인형으로부터 그 얼굴들을 찾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던 어느 날, 섬광같은 깨달음이 아닌 물처럼 피부 아래로 스며드는 깨달음의 형태로 다가온 결론은 하나였다.
그 얼굴들은 인형으로 구현할 수 있는 얼굴이 아니다.
비록 현실에서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할 얼굴이라 해도, 그 두 개의 얼굴은 어찌됐건 현실의 사람에게서 보여지는 얼굴이었다. 어쩌면 먼 훗날 어느 신인 배우의 얼굴을 통해서나 발견하게 되려나.
하지만 개인적인 바램은,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라 해도 괜찮으니, 내 생활의 일상 어딘가에서 그런 얼굴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내가 원하는 아름다움을 가진 얼굴을 발견하고 싶다.
단언컨대 사람이 인형보다 아름답다. 이게 오랫동안 인형을 아끼며 인형에 정신적으로 의존하는 삶을 살아온 나의 결론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뭔가 의아한 결론이기는 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현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그날까지, 아니 어쩌면 그날 이후에도, 인형을 향한 나의 애정은 식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인형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격언이 전해져온다고 한다.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