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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찌 Oct 22. 2023

너 자신을 알라냥

  빈 문서1, 연봉 계약서, 보고서, 각종 결재문서…

  삶에 날 선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은 모두 네모 모양이다. 그것도 자비 없이 정확하게 90도로 꺾인 네모. 이 네모의 꼭짓점만큼 날카로운 속 내용이 안온한 일상에 생채기를 내지 않도록 정신없이 재택근무를 하던 어느 날. 돌아보니 리지가 캣소파에서 요가를 하고 있었다. ‘아치 자세’를 오늘의 미션으로 삼은 듯했다.


  리지는 평소처럼 누운 채 기지개를 켜더니 두 발바닥으로 바닥을 밀어내면서 아치형으로 등을 둥글게 말아 올렸다. 그런데 무게중심이 왼쪽으로 쏠렸는지 리지의 왼 엉덩이가 바닥에 급히 떨어졌다. 꿍. 왼 옆구리도 급히 딸려왔다. 탁. 리지는 머쓱한지 입맛을 다셨다. 쩝(‘아 이게 안 되네’). 난 실소가 터졌다. 풉. 긴장감이 조금 풀렸다. 다시 모니터를 보니 뾰족한 네모의 꼭짓점 끝이 조금씩은 허물어진 것 같았다.


  고양이는 이렇게 귀여움만으로 퉁치기 아까울 정도로 다채로운 매력을 지녔다. 랜선 집사에서 실제 집사가 된 후 가장 달라진 것 중 하나는 날마다 고양이의 다른 매력을 만나게 된다는 거다. 고양이는 가끔 엉뚱한 미션을 시도하고, 루틴이 깨지면 분노하며,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연기를 잘한다. 사냥놀이를 구상한 액션 씬대로 하려고 고집하며, 잠복근무 하는 형사처럼 집사를 멀리서 지켜보는 것도 좋아한다.


  집사 초기엔 각 모습이 의문스러웠다. 그 이유를 파고들며 “왜 저래?”를 입에 달고 살았다. 레오(지금은 시댁에 있는 고양이) 집사였던 남편 김박은 해탈한 불자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해하려고 하지 마.”

  정확히는 ‘사람의 기준으로’ 고양이를 이해하려 하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 한때 모든 물음표를 붙들고 전전긍긍했었는데 대부분의 답이 ‘고양이니까’였다나. 하지만 해탈보다 해결에 마음이 이끌렸던 난 본격적인 고양이 탐구에 들어갔다. 김박도 자신의 집사 시절보다 훨씬 풍성해진 고양이 콘텐츠를 흥미로워했다. 우린 같이 고양이 커뮤니티에서 태양신 급의 정보를 가진 집사님께 감탄하고, 수의사 선생님이 운영하는 고양이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고, 포털 사이트에서 ‘고양이 00 하는 이유’를 검색하면서 고양이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고양이에 대한 어설픈 이해가 일으켰던 오해가 하나씩 풀려나갔다. 사실 대부분의 오해는 ‘개와 고양이’처럼 고양이가 반려동물의 대표주자로서 개와 자주 함께 언급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둘은 모두 네 발 달린 귀여운 털뭉치이기에 은연중에 이렇게 기대하기 쉽다.

  ‘고양이도 개처럼 나한테 OO 해주겠지’

  하지만 집에 들어오면 방방 뛰면서 반겨주고, 스킨십을 격하게 하는 등 뜨거운 교감을 좋아하는 개와 달리, 고양이는 미지근한 교감을 좋아한다. 멀리서 집사를 지켜보거나 스치듯 스킨십하는 데서 사랑과 신뢰를 느끼는 것이다. 개를 대하듯 고양이를 대하면 관계를 망치는 지름길에 들어서게 되는 셈이다. 차라리 ‘거북이와 고양이’처럼 고양이와 생김새나 종 분류체계가 완전히 다른 존재와 엮여 있었으면 오해를 덜 받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의 과정에선 의도치 않은 일도 함께 일어났다. 바로 리지를 깊게 알아갈수록 나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다는 것. 리지의 고질적인 편식 문제에 특히 안절부절못했던 걸 돌아보니 이유는 문제가 당장 해결되지 않으면 복장이 터지는 내 급한 성격 때문이었다. 특정 리지 사진을 더 많이 들여다봤던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유머 코드가 담겨 있어서였다. 캣타워에서 여유를 누리는 리지를 보는데 가슴 한쪽이 시큰했던 건 다독이지 못하고 지나친, 여유 없이 살았던 지난날이 떠올라서였다. 리지를 발견할수록 난 몰랐던 나 자신도 발견하고 있었다. 리지가 또랑한 눈빛으로 날 쳐다볼 때마다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너 자신을 알라냥!”


  리지를 통해 알게 된 고양이 그리고 나. 이 복합적인 앎을 전하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에서 영감을 받은 나훈아 님의 <테스형> 가사를 따서 제목을 <아 테스냥!>으로 지었다. 뒤에 곤히 잠들어 있는 나의 고양이 선생님, 리지에게 글 공개 허락을 구해본다.

  ‘리지야 우리 얘기로 캔값 좀 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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