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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찌 Oct 22. 2023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가수 나훈아 님의 <테스형>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자타공인 가왕으로 인정받는 ‘국민가수’가 도무지 인생을 모르겠다며 호소하는 노래였기 때문이다. 얼마나 고민이 깊으면 답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에게까지 구하게 되는 걸까.

  “아! 테스형” 하고 외치는 절절한 대목이 머리에 남았던 어느 날, ‘너 자신을 알라’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언 뜻을 검색하던 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 명언의 뜻은 ‘스스로를 알기 위해 노력해라’가 아니라 ‘네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인정하라’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즉,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은 유하게 표현하자면 ‘늘 겸손하라’이고 거칠게 표현하자면 “주제 파악을 해라”였다.

  순간 주제 파악을 못 해서 리지에게 농락당했던 한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다.


  리지에게 새로 산 먹이퍼즐을 해 주었을 때였다. 가로 세로 40cm 정도의 판 위에 지형이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던 그 먹이퍼즐은 고양이가 손이나 혀를 잘 써야만 사이사이에 낀 사료를 빼먹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고양이가 자동급식기에서 나오는 사료만 노력 없이 먹다 보면 야생에서와 같이 사냥감을 쫓다가 잡아채는 성취감을 못 느끼고 무력해진다길래 산 제품이었다.

  어느 날 먹이퍼즐을 하는 리지를 지켜보았는데 리지는 비교적 평평한 곳에 있는 사료를 다 빼먹은 후, 굴곡이 심한 지형에 있는 사료는 몇 번 손으로 빼먹으려다 실패했다. 그리곤 조막만 한 얼굴을 푹 떨구었다.

  ‘아이코, 잘 안되나?’

  세상을 다 잃은 듯이 시무룩해진 표정에 마음이 쓰렸다. 3살도 안 된 고양이가 맛보기엔 너무 쓴맛 아닌가. 난 발 벗고 리지를 도와주기로 했다. 검지로 직접 사료를 빼는 시범을 보인 후 멀리 던져준 것이다. 리지는 던져진 사료를 향해 쪼르르 달려갔다. “까드득 까드득”하고 리지가 사료를 씹어먹는 소리에 절로 뿌듯한 미소가 지어졌다. 다시 다가온 리지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그래 어떻게 처음부터 잘해. 방법을 차근차근 익히다 보면 다음엔 잘하겠지!’

  이후에도 난 종종 리지 곁에서 먹이퍼즐을 함께 풀어주었다. 평범한 식사시간이 교감의 시간이 된 것 같아서 좋았다. 그런데 여느 때처럼 사료를 빼서 던지고 있던 어느 날. 지나가던 김박이 말했다.

  “우와 리지 여집사 잘 부리네?”

  당황한 날 쳐다보며 김박이 말했다.

  “나만 있을 땐 리지 혼자 먹이퍼즐 잘 풀거든.”

  알고 보니 리지는 집에 김박만 있을 땐 어려운 지형에 있는 사료를 쏙쏙 혼자 잘 빼먹었다는 거다. 풀 죽은 연기가 김박에겐 안 통했던 거다. 김박은 먹이퍼즐은 집사의 과제가 아니라 리지의 과제라면서 뼈 때리는 말을 했다.

  “나는 얄짤없거든. 저건 리지가 해야 하는 거잖아.”

  나는 김박에 비해선 너무 호구였다. 조금 꿍시렁했다고 바로 과제를 대신 풀어주었으니 말이다. 이용당하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친절하고 다정한 집사 역할에 뿌듯해했던 게 억울했다. 그리고 30여 년을 살았는데 3년도 안 산 존재에게 조종당했다는 데 현타가 세게 왔다. 날 갖고 놀다니 이런 캣시키…….


  돌이켜보니 먹이퍼즐을 풀 때뿐 아니라 간식을 더 먹고 싶을 때도, 더 놀고 싶을 때도, 리지는 꼭 김박이 아닌 나에게 와서 울었다. 내가 호구인 걸 꿰뚫어 본 거다. 앞으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큰 눈에도, 애절한 울음소리에도 깜빡 속지 말아야지. 그런데 진짜 진짜 도움이 필요해서 조르는 것과 속이려고 조르는 건 어떻게 구별하지. 그때그때 고민할 생각을 하니 아득해졌다. 생각보다 더 어려운 집사 노릇이 괴로워 나도 테스형을 불러본다.

  아 테스형! 고양이 왜 이래… 왜 이렇게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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