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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찌 Oct 22. 2023

편식과의 전쟁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할 때까지 1천 번 이상 실패했다고 한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진 않았는지 묻는 친구에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실패도 과정의 하나야. 난 실패할 때마다 전구를 만들지 못하는 방법 하나를 발견하는 데 성공한 거라고.“

  리지가 편식 때문에 새로운 습식 캔 앞에서 고개를 돌릴 때마다 난 에디슨을 생각하며 되뇌었다.

  ‘또 리지가 안 먹는 캔 하나를 발견한 데 성공했네.’

  하지만 그런 캔이 수십 개에 이르게 되자 성공이고 나발이고 화딱지가 나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리지가 처음 편식을 시작한 건 약 1살 무렵부터였다. 그전까지 리지는 ‘본투비 먹신(神)’이었다. 육류든 어류든 가리지 않고 잘 먹었으니까. 리지는 캔을 따주자마자 밥그릇에 코를 박고 해치우는 건 기본, 바닥에 찰박거리는 육수까지 싹싹 핥아먹었다. 한 고양이 커뮤니티에서 ‘여러분의 냥이는 ‘치킨파’인가요, ‘참치파’인가요?’란 게시글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리지는 ‘먹파’요. 그냥 먹는 거면 다 좋아해요…’


  그런데 리지는 언젠가부터 ‘강경 참치파’로 돌아섰다. 참치만, 혹은 ‘참치와 닭고기와 치즈’, ‘참치와 뱅어’, ‘참치와 오징어’처럼 참치가 들어 있는 캔만 먹었던 것이다. 리지가 3시간째 한 입도 안 댄 정어리 캔을 통째로 버릴 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렇다고 리지에게 “어부 아저씨가 얼마나 고생해서 잡으신 건데…” 혹은 “아프리카엔 먹을 게 없어서 굶는 고양이가 얼마나 많은데…”와 같이, 내가 어렸을 때 싫어했던 편식 레퍼토리를 읊어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리지의 참치 고집에 학을 뗀 나는 리지에게 그냥 참치만 먹일까도 생각했다. 김박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진.

  “참치가 상어, 고래 빼면 바다에선 최상위 포식자야. 먹이사슬 최상위에 있다는 건데 그럼 먹이사슬 아래에 있는 생선을 잡아먹으면서 수은 같은 중금속이 몸 안에 점점 많이 쌓일 거거든. 그래서 예전에 미국에선 임신부한테 참치 섭취량을 제한하라 한 적도 있어.”

  계산해 보니 당시 매일 70g짜리 캔 2개를 먹는 리지가 참치캔과 참치와 다른 재료가 반반씩 섞인 캔을 하나씩 먹는다면 매일 먹는 참치 양이 105g이었다. 김박과 나도 둘이서 100g 정도 하는 참치캔을 주 1회 정도 반찬이나 찌개로 한 번 먹을까 말까였으니 이 양은 5kg인 몸집에 비하면 리지에게 너무 많았다.

  우린 리지의 입맛을 다양하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브랜드의 참치 외 재료로 만든 캔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고양이 식재료는 생각보다 다양했다. 육류는 흔한 닭고기나 소고기 말고도 말고기나 토끼고기까지, 어류는 참돔, 게살, 역돔까지 있었으니까. 물론 ‘자나 깨나 참치 사랑’인 리지는 새로운 식재료를 쉽게 반기진 않았다. 냄새가 자기 취향이 아니면 밥그릇 근처에도 가지 않는 단호함으로 ‘깊은 빡침’을 불러일으켰고, 원하는 밥이 안 나오면 그대로 끼니를 굶어버리기까지 했다. 독한 냥…….


  만만치 않게 가려먹는 반려견 생강이를 키우면서 “편식이 심했던 유년시절을 반성하게 됐다”라고 회고한 전 회사 팀장님이 떠올랐다. 나도 콩밥에서 콩을 골라내다 혼난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리지가 한 입도 안 댄 밥그릇을 치우면서 그때 골라낸 콩 개수만큼 캔을 버리는 벌을 받고 있단 생각도 했다. ‘고집부리고 안 먹으면 쫄쫄 굶게 된단 걸 알려줘야 한다’며 1시간이 지나면 무조건 밥그릇을 치우라는 엄격한 집사님의 교육방식도 따라 해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리지가 힘없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약해져 뭐라도 주게 되었으니까.


  찾아보니 사실 좋은 것을 먹이려는 집사와 좋아하는 것만 먹으려는 고양이 간의 사투는 흔했다. 나도 일찍이 리지에게 뉴질랜드 초원에서 방목해서 키운 소의 고기로만 만들었다던 1급 유기농 캔을 주었다가 리지가 그 캔을 먹고 토하는 바람에 캔을 모두 나눔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리지에게 유기농 음식만 먹이겠다는 욕심은 곱게 접어 하늘 위로 날려버렸더랬다.


  리지는 한때 특식까지도 편식했다. 특식은 매주 수, 토에만 리지에게 주는 특별한 간식으로 사람으로 치면 1~2주에 한 번 정도 카페에서 먹는 달달한 케이크 같은 것이다. 리지가 열광하는 특식은 동결건조한 10~15cm 길이의 알이 꽉 찬 열빙어. 리지는 열빙어가 담긴 봉지를 냉장고에서 꺼내면 흥분해서 “냐하-” 하고 운다. 열빙어 하나를 꺼내 검지로 잡고 있으면 리지는 킁킁대며 비릿한 생선 냄새를 맡다가, 내 손을 툭툭 치며 열빙어를 얼른 달라고 성을 낸다.


  리지가 먹기 좋게 여느 때처럼 열빙어를 가위로 잘라주던 날이었다. 포장지에 적힌 급여 방법에 눈이 갔다. ‘미온수의 물에 불려 섭취하기 편하게 해주세요’. 생각해 보니 열빙어가 너무 말라 있으면 입안에 붙어서 리지가 넘기기에 불편할 것 같았다. 그런데 물에 불리자니 성화인 리지를 달래기가 어려워 보였다. 나는 자른 열빙어 위에 정수를 부었다가 바로 따라 버려서 열빙어를 물에 살짝 적셔 리지에게 주었다. 리지는 챱챱 소리를 내며 단숨에 열빙어를 클리어했다.


  그런데 리지가 언젠가부터 갑자기 열빙어를 안 먹기 시작했다. 봉지에서 열빙어를 꺼낼 때까진 열광하다가 밥그릇 앞에만 서면 돌아섰다. 김박에게 말했다.

  “리지가 갑자기 열빙어를 안 먹는데?”

  “갑자기?”

  “응. 정수에 담갔다가 빼서 줬는데…”

  김박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리지 마른 거 좋아하지 않아?”

  “전에도 열빙어 물에 담갔다 줬더니 잘 먹던데?”

  “흠…”

  김박의 말이 마음에 걸려서 며칠 후 리지에게 마른 열빙어를 주었다. 웬걸. 리지는 코를 박고 열빙어를 해치웠다. 열빙어 킬러로 돌아간 것이다. 입맛을 다시는 리지를 보자 머쓱해져서 김박에게 말했다.

  “아하, 리지한테 열빙어는 술집 마른안주 같은 거구나?”

  김박은 그걸 이제 알았냐는 듯 찰떡같은 비유로 내 실수를 일깨워줬다.

  “그치. 술집에서 손님 목마를 것 같다고 사장님이 먹태에 맥주를 부어서 주진 않잖아…”


  세상엔 말라야 맛있는 음식이 있다. 술집 메뉴 중에 ‘적신 안주’가 없는 것에도, 안주에 미리 맥주를 부어주는 사장님이 없는 데도 다 이유가 있는 거다. 리지는 1주일에 2번밖에 못 먹는 간식에 물을 붓는 날 보며 이렇게 탄식했겠지.

  ‘돌았냥……’

  앞으로 리지의 편식을 탓하기 전에 나를 한 번 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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