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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찌 Oct 22. 2023

고양이와 렌즈는 상극

  볼일을 본 뒤 전속력으로 뛰는 ‘우다다’를 하는 리지는 볼 때마다 인상적이다. ‘우다다’의 이유는 분분하다고 한다. 기분이 째져서, (야생의 습관이 남아) 배설물의 냄새를 맡은 포식자나 힘센 고양이를 피해 멀리 달아나기 위해서, 배설물 근처에 있을지 모르는 병균이나 기생충을 피하기 위해서 등등. 아무튼 진지한 표정으로 쭈그려 앉아서 볼일을 볼 때와는 180도 달라지는 이 모습을 동영상으로 한 번은 꼭 찍고 싶었다.


  어느 날 기회가 왔다. 마침 내가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고 있을 때 리지도 근처의 고양이 화장실로 온 것이다. 리지가 화장실 모래를 파며 거사(!)를 묻을 때부터 난 촬영을 위해 핸드폰 카메라의 동영상 버튼을 눌렀다. ’똥’ 소리가 났다(맥락상 좀 그렇지만 ‘똥’보다 이 소리를 더 잘 표현하는 소리가 없음). 거사를 다 묻은 리지를 보며 곧 총알처럼 튀어 나가는 모습을 찍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설렜는데... 웬걸. 리지는 화장실 문턱을 세상 우아하게 넘고선 꼬리를 살랑이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곤 거실 캣터널 위에 살포시 앉아 나를 바라봤다. ’우아한 고양이 처음 봐?‘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로. 허탈해서 핸드폰을 든 손이 힘없이 내려갔다.


  고양이는 꼭 이렇게 카메라만 켜면 내가 찍고 싶은 고양이와는 다른 고양이가 된다. 리지가 펄쩍 뛰어올라 사냥감을 잽싸게 낚아챌 때 ‘똥’ 하면 리지는 갑자기 사냥감을 물끄러미 바라본다(‘살생하지 말라’는 불교의 계율이 머리를 스친 걸까). 쌔근쌔근 잠든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똥’ 하면 갑자기 자는 눈도 아니고 뜬 눈도 아닌 게슴츠레한 눈매를 만든다(한 마디로 ‘똥 씹은 표정’이 됨). 난 늘 한탄한다.

  ‘고양이랑 카메라 렌즈는 상극이야. 어후’

  내 눈에 카메라 렌즈가 심어져 있고, 사진이나 영상을 24시간 찍을 수 있는 미래도 그려본다. 그럼 담고 싶은 모습을 제대로 다 담을 수 있을 텐데. 희귀한 장면도 빠짐없이 간직할 수 있게 될 거다. 리지가 귀신을 본 것처럼 허공에 원투 펀치를 날리는 장면도, 책상 위에 있는 립밤을 정확히 가격해서 바닥에 떨어뜨리는 장면도 남길 수 있겠지.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윤샘의 마이펫상담소’에서 윤샘도 <고양이 사진 예쁘게 찍는 꿀팁> 콘텐츠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동물이나 어린아이의 사진은요, 인내심의 승부입니다. (중략) 편안하게 오늘 아니면 내일은 되겠지라는 심정으로 한 장 한 장 건지는 겁니다. 우리가 감탄해하는 SNS의 동물사진은요, 수많은 기다림의 사진, 수백 수천 장의 사진들에서 건진 그런 사진이라는 것을 꼭 명심하셔야 합니다.”

  고양이로부터 원하는 A컷을 다 건지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말씀이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 다른 집사들 모두 이 사실을 알면서도 욕심을 내려놓지 못할 것이다. 매번 바삐 카메라를 켜는 ‘찍사’ 집사들에게 <국화 옆에서>의 시구를 패러디한 문장을 헌정한다.

  ‘한 장의 A컷을 건지기 위해 아까부터 집사는 그렇게 똥 똥 거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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