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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Dec 13. 2023

아빠는 병가 중이어도 할 일이 많답니다

재활인생 3주 차

12월 6일 수요일 : 6,945걸음

회사로 출발하기 전에 집 청소와 빨래까지 마치느라 몸도 마음도 바빴다. 오늘은 2달 만에 사무실로 출근하는 날이었다. 경기도의 외근직 소방관(외근직은 행정업무 비중이 30%, 행정업무 비중이 적은 대신 화재, 구조, 구급출동을 담당함 vs 소방서에서 출동 없이 일반 공무원처럼 종일 행정업무만 하는  내근직으로 크게 나눌 수 있음)은 3일 중 하루를 근무하며 근무조가 당번, 비번, 휴무로 나뉜다. 오늘은 내가 속한 3팀이 근무(1팀 휴무, 2팀 비번)하는 날이라서 오래간만에 팀장님과 팀원들을 직접 보며 휴가 얘기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이미 결재된 유급병가(월급이 나오는 병가) 기간은 60일로 12월 8일까지였다. 무급병가는 30일 이상 더 쓸 수 있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자세히 알아보지는 않았다. 어차피 공무상 요양 승인을 신청한 상태니 인사혁신처에서 공무상 요양승인이 결정되는 경우 기존에 내가 냈던 연가와 60일 병가는 모두 없어지고 공무상 요양 병가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남은 연가를 모두 끌어다가 12월 20일까지 쉬고 21일부터 24시간 당번근무를 시작하기로 센터장님과 팀장님께 허락을 구했다.      


마트에 들러 잔뜩 사들고 온 바나나와 음료, 군것질거리를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나 없는 동안 빈자리를 메우느라 고생한 팀원들과 최소한의 간식이라도 나누고 싶었다. 전처럼 오전은 행정업무를 처리하느라 바빠 보였다. 센터장님과 팀장님께 병가 잘 다녀왔다고 말씀드리고 같이 근무하는 구급팀 후배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내가 없는 2달 동안 크게 바뀐 건 없었다. 불현듯 공무원이었으니 다행이지, 사기업이었으면 내 자리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리에 앉아(3개 팀이 교대근무해서 자리 1곳에 1팀, 2팀, 3팀 각 1명씩 돌아가면서 사용합니다) 행정시스템에 접속 후 남은 연가를 모조리 올렸다. 그렇게 올해 마지막 연가와 병가를 마무리했다.     


12월 7~8일 이틀간 두 아이의 대안학교 수업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번에 지원한 학교는 학생 수가 70명 미만으로 적은 곳이라 기존에 다니는 학생들과 두 아이들이 잘 어울릴지 이틀 동안 미리 겪어보는 체험이었다. 아이 둘의 준비물을 위해 종이를 펼쳐놓고 아내가 미리 알려준 목록을 적었다. 아이들 옷, 가방, 큰 아들 ADHD 약, 성경책, 실내화, 물통, 필기도구 등 챙길 것이 생각보다 많았다. 학교가 장모님 댁 근처라 막히는 시간을 피해 집에서 20시 전에 출발할 예정이었다. 40분 만에 김밥 8줄을 싸서 아이들을 먹이고 퇴근하고 올 아내의 저녁식사까지 만들어 놓았다. 아이들 짐 싸고, 김밥도 싸고, 내 짐도 싸느라 1인 3역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12월 7일 목요일 : 12,520걸음

T맵 검색 결과 장모님 댁에서 대안학교까지 거리는 10km지만 교통체증으로 50분 가까이 걸릴 것 같았다. 혹시라도 늦잠 잘까봐 깊게 잠들지 못하고 서너 번 넘게 뒤척이며 6시 30분에 일어났다. 7시 10분쯤 애들을 깨워 장모님이 만들어주신 떡국을 먹이고 7시 40분에 학교로 출발했다. 예상보다 5분 빠른 45분 만에 학교에 도착했다. 오늘은 출발 전에 첫째가 새로운 학교에서 잘 생활하기를 기도하더니 학교에 도착해서는 둘째가 간단히 새로운 학교생활을 위해 기도했다. 교장선생님께서 미리 주차장에 나오셔서 두 아이를 맡아주셨다. 9월에 지원했던 학교와는 달리 학부모를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15시 20분이 되어 수업이 끝났고 미리 학교에 도착해서 아이들을 맞이했다. 새 학교라 긴장한 걸까, 큰 아들의 코에서 갑자기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코피가 멎은 걸 보고 출발했는데  장모님 댁에 도착한 후 또 코피가 났다. 장모님께서 큰 아들이 코피 흘리는 걸 보고 “요새 니가 힘들었나 보다, 고생 많았다”란 말을 하자 큰아들이 “할머니랑 엄마는 일하시랴, 저희 돌보시랴, 저보다 훨씬 더 힘드시잖아요”라는 대답을 했다. 그 말에 장모님과 난 큰 아들이 부쩍 자랐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12월 8일 금요일 : 10,747걸음

일어나자마자 둘째 아이에게서 새로운 임무가 떨어졌다. 어제 학교에서 스케치북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제야 생각났다는 얘기였다. 이야, 이건 아침부터 어려운 임무를 받았다. 더구나 이곳은 내가 사는 곳이 아닌 장모님 댁이었다. 아이들이 아침을 먹는 동안 아파트 앞 상가 무인슈퍼에 다녀왔으나 결과는 실패, 다시 집으로 와서 네이버 검색을 했다. 반경 1km 이내 3곳의 문구점이 있었다. 이제는 운영시간을 확인할 차례였다. 우와, 웬일이야? 내게 이런 행운이 있다니, 600m 앞의 상가에 오전 7시부터 여는 무인 문구점이 있었다. 늦지 않게 아이의 준비물인 스케치북을 사 왔고 두 녀석 모두 다시 대안학교로 데려다주었다.      


어제는 장모님 댁 근처를 산책했기에 오늘은 인근의 독산성 산책로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동네 뒷산보다 낮은 높이였고 어느 정도 오르막길이 있겠지만 요즘 열심히 걷고 있어서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이건 오판이었다. 경사가 낮은 오르막길을 1km쯤 걷고 나니 오른 발목의 수술 부위에서 은근하게 통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걸으면서도 어쩌다 한 번 아픈 게 전부여서 그러려니 했는데 오르막길이 평지에 비해 발목에 자극이 많이 가는 모양이었다. 한 번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니 발을 내딛을 때마다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걸 참고 계속 가, 말아? 갈등했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벤치나 앉을 곳은 보이지 않았다. 아프지 않게 천천히 걸으며 벤치가 있는 중간까지는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200m 앞에 갈림길이 나왔고 벤치에 앉아 쉴 수 있었다. 그 갈림길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 보적사와 숲길 등 4곳의 목적지로 갈 수 있었다. 독산성을 제대로 보려 했으나 지금 발목 상태로는 무리라는 판단이 섰다. 아쉽지만 10분 정도 쉬었다 내려가기로 했다. 아직 내 발목으로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오래 걷는 건 무리라는 사실만 알게 되었다. 독산성 산책로에서 다시 내려왔지만 이왕 산책한 거 10,000걸음을 채우고 싶었다. 그래, 다시 걸어보자.     


지금도 여전히 걷는 모습이 살짝 부자연스럽다. 그러다 보니 산책할 때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걸 느낄 때가 있다. 남들이 보든지 말든지, 그런 시선을 의식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걸었다. 발을 다쳐 걷는 게 부자연스러운지 고작 2달 남짓이다. 그 기간 동안 이상하고, 불쌍한 사람을 보는 듯한 시선을 느낀 건 셀 수 없었다. 역시 사람은 입장이 바뀌어봐야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12월 9일 토요일 : 1,714걸음(어제 무리해서 휴식)

두 아이의 대안학교 참여수업이 끝나고 2차 면접이 있었다. 이번 면접 역시 전처럼 1시간 30분에 걸쳐 이뤄졌다. 면접 내용을 자세히 밝히기 어려우나 학교 관계자는 재학 중인 다른 아이들과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힘들어할까봐 큰 아이의 입학을 보류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알려주셨다. 대신 전에 지원한 학교와는 달리 아이의 현 상황이나 성격에 대해 충분히 파악했으며 듣는 부모의 입장을 최대한 배려해 주셨다는 사실이 느껴져서 학교 측의 입장이 서운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이제는 아내와 나의 설득이 이어질 차례였다. 지금 큰 아이의 상태는 더디지만 점점 좋아지고 있다. 큰 아이 역시 ADHD 아이의 특징인 또래 친구와의 관계 기술(사회성)이 부족하지만 오랜 기간 여러 차례 노력한 결과 주변 친구들과의 관계가 개선됐다는 점을 예로 들며 변호사처럼 부모 입장에서 아들의 장점을 부각했다. 큰 아이에게는 잘못했다고 지적하는 사람보다는 아이를 다독이며 “그래, 우리 같이 걸어가 보자”며 아이를 이끌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계속해서 우리 부부가 정말 절박한 상태임을 호소했다. 특히 아내는 1차 면접과 2차 면접 모두 펑펑 울며 얘기했기에 면접이 끝날 무렵엔 눈이 퉁퉁 부어있을 정도였다(원래 면접이 30분 남짓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두 차례 모두 1시간 30분씩 면접을 봤습니다). 아내의 간절한 호소가 통했을까? 면접이 끝나기 전, 입학보류를 언급하던 학교 측에서 한 발 물러서서 3일 동안 선생님들과 회의를 거쳐 최대한 아이의 입학을 고려해 보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학교 측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됐지만 큰 아이의 입학 역시 포기할 수 없었다. 발표날까지 주님께 기도하며 매달릴 수밖에.     


12월 10일 일요일 : 9,617걸음


12월 11일 월요일 : 1,394걸음

새벽에 큰 아이의 열이 38.4도까지 올랐다. 아내가 놀라 나를 깨웠고 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이고 다시 잠이 들었다. 어제 저녁부터 자주 기침을 했었는데 감기약을 먹는 중이어서 괜찮아질거라 생각했다. 월요일 아침 일찍 찾아간 병원에서 별일이 아니면 좋겠다는 바람과는 달리 B형 독감 진단을 받았다. 독감 치료제로는 싸지만 5일 동안 먹는 타미플루와 비싸지만 한 번의 수액치료(링거)로 해결되는 방법 중에서 한 가지를 고르려고 했지만 요새는 독감 환자가 많아 수액 치료제가 품절이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타미플루를 처방받아 왔다.      


38도와 39도를 넘나드는 아이의 고열로 이부프로펜과 아세트아미노펜을 6시간 간격으로 교차 복용했다. 그래도 열이 37.5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하루 세끼 모두 참치죽을 만들어 큰 아이의 끼니를 해결했다. 고열로 큰 아이의 상태가 계속 뒤바뀌어 오늘 운동은 쉬어야겠다. 화요일 새벽까지 열보초(아이가 열이 나면 부모 중 한 명은 3~4시간에 한 번씩은 일어나 아이의 열을 체크하고 해열제를 먹입니다. 이 역할을 열보초라 합니다)를 서야 할 것 같아 내일 출근하는 아내를 일부러 재웠다. 아이가 밤동안 아프지 않고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도했다.     


12월 12일 화요일 : 11,213걸음

전날의 기도가 무색하게 새벽에 2번이나 해열제를 먹여야 했다. 열보초를 서느라 눈밑의 다크서클이 커져 판다로 변신할 것 같았다. 내가 아픈 건지 아이가 아픈 건지, 머리는 몽롱하고 몸은 무거웠다. 아이의 높은 열이 걱정되어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내는 아내에게 버럭 짜증을 내고 말았다. 잠을 못 자서 힘든데 질문에 답까지 하려니 짜증이 솟구치고 말았다. 내가 아내 보고 쉬라고 하고서는 혼자 고생한다는 속 좁은 마음에 짜증이 났었나 보다. 30분 뒤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둘째가 일어나더니 “목이 아파”라고 했다. “으아, 두 녀석 모두 독감은 안 돼!”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둘째를 데리고 집 앞의 병원으로 갔다. 다행히 독감 검사는 음성이었고 코감기 약만 처방받았다. 첫째는 독감, 둘째는 감기로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있다. 두 녀석을 돌보느라 오늘도 내 자유시간은 없지만 그래도 운동은 강행했다. 집 앞 산책길을 걸어 10,000걸음을 넘겼다.      


1. 발목 일자 펴기  2. 발 앞꿈치를 몸쪽으로 들기  3. 발 뒤꿈치 들기

나만의 재활 방법

(오른쪽 발목 안쪽 복사뼈 수술 후)


1. 발목이 일자가 될 때까지 펴기

2. 발 앞꿈치를 몸 쪽으로 들기(브레이크와 엑셀레이터 번갈아 밟을 때 필요한 동작)

3. 발 뒤꿈치 들기

4. 생각날 때 한 번씩 발목 돌려주기

5. (제일 중요) 아프지 않은 선에서 최대한 많이 평지 걷기   

  

12월 13일 수요일, 오늘은 대안학교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이다. 오랫동안 기도하며 기다린 일인 만큼 좋은 결과 주시기를 주님께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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