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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Dec 20. 2023

다치고 2달 반 만에 출근하기까지

재활시작 35일(발목 골절 수술 후 69일)

12월 13일 수요일 : 9,745걸음    

큰 아이의 독감 증세 완화로 다시 병원에 방문 후 진료확인서(위 아이는 독감으로 인해 언제부터 언제까지 쉬었으며 해열제를 먹지 않고 24시간 동안 열이 오르지 않았다는 내용)를 받아왔다. 그걸 학교에 제출해야 독감으로 학교에 가지 못한 것이 결석으로 처리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큰 아이가 내일부터 등교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집 앞 산책로를 1시간 30분 정도 걸었다. 4,000걸음쯤 걸으면 수술한 오른 다리가 묵직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오른 다리 바깥쪽과 무릎 아래가 무거워지며 쉬고 싶을 때가 있다. 아직 다친 다리의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이았다. 그럴 때면 쉬는 것 대신 걷는 속도를 줄이고 끝까지 걸어서 힘들지만 목표 걸음수를 채웠다. 그러고는 혼자 뿌듯해졌다. 산책로에 들어서면 두 발로 걸을 수 있어 주님께 감사하다는 기도를 틈틈이 하고 있다.      


실내 사이클 운동을 시작한 지 이틀째가 되었다. 30km/h이상의 속도로 40분 동안 운동할 예정이었다. 오늘은 5분간 몸풀기를 한 후 3분 동안 최대한 빨리 달리기, 1분 휴식을 1세트로 총 5세트만 진행했는데 4세트부터는 힘이 빠져서 속도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3분을 채우기 위해 힘내서 페달을 굴렸다. 5세트를 끝내고 다시 5분 동안 10~20km/h의 속도로 천천히 다리에 쌓인 피로를 달랬다.      


재활 운동에 있어서 실내 사이클과 걷기는 확실히 다르다. 걷기는 발목의 유연성을 높여주고 제대로 걸을 수 있게 만드는 훈련이지만 실내 사이클은 걷기로 자극할 수 없는 다친 다리의 근육을 자극해 주는 느낌이다. 재활운동을 시작한 이후로 걸을 때마다 다친 발의 종아리 부분과 발목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는데 실내 사이클 운동을 하고 나면 맘대로 되지 않던 종아리 부분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 든다. 사이클을 타고난 뒤로는 걸을 때 다친 발이 제대로 힘을 받쳐주지 못해 뒤뚱거리는 느낌이 줄어들었다.       


오늘은 큰 아들의 대안학교 합격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아이의 합격 발표 메일을 받고 기뻐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꼭 중요한 시험 합격 발표나 대학 4학년 때 지원한 회사의 최종 합격 발표를 기다리는 심정을 오랜만에 되새기는 것 같았다. 아침 9시부터 긴장한 상태로 있었는데 정작 발표는 저녁 8시가 넘어서 이뤄졌다. 결과는 둘째만 합격했다. 지원했던 학교의 교장선생님께서 아내와 통화하며 큰 아이는 하루만 더 기도해 보고 결정하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내일도 계속해서 큰 아이의 합격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12월 14일 목요일 : 3,353걸음

큰 아이가 독감으로 등교 한 지 4일 만에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는 학교 때문에 정말 힘들었는데 학교 가고 싶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흐뭇해졌다. 아싸, 나야 대환영이지! 대신 아이가 집을 나서기 전 현관 앞에서 간단히 기도를 해주었다.     


둘째는 활달한 성격으로 아파서 조퇴를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후 1시가 다 되어 둘째에게서 몸이 안 좋아 중간에 조퇴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웬만해서 조퇴한다는 말을 하지 않던 애가 아프다고 전화하니 괜스레 걱정이 되었다. 화요일에 이어 오늘 받았던 두 번째 독감 검사 결과 역시 음성이었다. 하지만 연이은 검사 결과는 음성인데 열은 38도 이상에다 목은 부어있고 형마저 독감이니 이런 상황이면 음성이어도 독감환자에 준해 타미플루를 먹는 게 낫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결국 둘째는 금요일인 내일부터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요새 독감 환자가 많다 하더니 병원에 죄다 감기 환자 투성이었다. 큰 애가 좋아짐과 동시에 둘째가 다시 타미플루를 먹게 되었다.     


실내 사이클은 Warm Up(본격적인 운동 전 몸풀기) 10분 → 3분(34~40km/h) 달리기, 1분 휴식 총 10세트 → Cool Down(본 운동 후 몸풀기) 10분    

 

12월 15일 금요일 : 950걸음

큰 아이는 결국 불합격 처리되었다. 이유는 많은 지도가 필요한 큰 아이에게 학교의 커리큘럼 변경 등 내부 사정으로 인해 선생님들이 아이를 지도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과 재학중인 학생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 같다는 이유였다. 다만 교장선생님께서는 부모인 우리에게 이 내용을 최선을 다해 설명해 주셨고 아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학교 측에서 최대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6개월이나 1년 뒤에 다시 지원한다면 괜찮을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주신 결과는 “아니다”였으므로 그에 순종해야 하지만 마음 한편은 조금 서글펐다. 매일 집에서 배경음악처럼 나오는 극동방송에서 어느 목사님의 설교 중 “삶의 풍파 중에도 무게중심이 주님께 있으면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오직 겸손함으로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복음에 합당한 삶 살게 해 달라”는 말씀을 들었다. 아이는 불합격했지만 그래도 주님의 계획대로 좋은 길로 이끄실 것을 믿으며 오늘도 기도했다.     


독감으로 의심되는 둘째는 어릴 때부터 몸에 열이 나면 경련을 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얘가 열이 나면 부모인 우리가 비상체제로 바뀐다. 금요일 저녁 학생들 시험문제를 출제느라 바쁜  아내가 토요일 0시까지 둘째를 담당(체온 재고 해열제 먹이기)하고 4시간 뒤에는 내가 일어나서 역할을 이어받았다. 부모가 밤잠을 못 자고 열보초를 섰어도 아침에 쟀던 둘째의 체온은 37.6도였다.      


사이클 운동은 어제와 같이 인터벌 10세트를 했다. 자전거 안장 위치가 맞지 않는지 오른쪽 무릎이 살짝 불편했다. 다시 내 몸에 맞게 위치를 조정해야겠다.       


12월 16일 토요일 : 8,124걸음

아이들이 닌텐도 스위치(아이는 두 명, 닌텐도는 1개, 싸움의 발단)와 tv채널 독점권을 두고 싸웠다. 그동안 부모인 우리가 애들이 싸울 때마다 오늘은 00, 내일은 00, 이런 식으로 지정했는데 도저히 헷갈려서 안 되겠다. 이젠 아이들마저도 자신의 차례가 언제인지 모른다고 답했다. 그래서 알기 쉽게 짝수 날은 둘째, 홀수 날은 첫째로 합의를 봤다.      


날이 갑자기 추워져 오후 2시 30분부터 걸었다. 1시간 30분 걷는 동안 날씨의 변화를 종잡을 수 없었다. 햇빛이 내리쬐다 서서히 눈발이 날리더니 갑자기 어두워지며 함박눈에 조금 못 미칠 정도로 쏟아졌다. 그러더니 10분 뒤에 눈이 그치며 다시 맑아졌다. 바람은 어찌나 세던지! 달리고 있을 때 맞바람이 들이쳤다면 뛰는 걸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세게 불었다. 10,000걸음을 채우고 싶었지만 8,000걸음을 넘기자마자 얼른 집으로 들어갔다.     


사이클은 본 운동 앞뒤로 웜업과 쿨다운을 10분씩 했으며 인터벌로 2분 달리기, 1분 휴식 총 10세트를 채웠다. 운동은 해도 힘들고 안 해도 힘들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개운함은 얻을 수 있다.       


12월 17일 일요일 : 3,356걸음

큰 아이를 2014년부터 지금까지 봐오신 상담 선생님과의 상담 내용이다.     


결국 대안학교 입학에 실패했지만 아이의 관계기술 개발은 계속되어야 한다. 또래 한 아이를 찾아 사회성 그룹 치료를 하는 것이 제일 좋으나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같은 또래의 짝을 찾는 게 어렵다, 현재 상담센터에도 큰 아이의 짝을 해줄 만한 아이가 없다. 혹시 지금 ADHD 약을 처방받고 있는 병원에 물어보고 없으면 부모와의 관계 개선 유도, 아이의 과장된 표현 금지, 혼자 곡해하는 버릇을 없애는 것 등을 꾸준히 노력하는 게 도움이 된다.     


거창한 목표는 필요하지 않다. 지금 상황에서는 일반 중학교를 가지만 첫 1학기를 잘 버티는 것만 생각하면 된다. 그 후 여름방학이 되면 아이의 상황에 따라 다른 대안학교를 찾던지, 그냥 다니던 중학교를 계속 다닐지를 고르면 된다. 이번 대안학교 입학 준비를 통해 아이도 부모가 자신을 얼마나 위하는지 잘 알았을 것이며 본인 스스로도 감정에 취해 말을 여과 없이 하는 버릇을 줄여 나가면 된다, 친구들에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다가가고 친해지는 법, 말하는 법을 아이가 익혀가야 한다.     


12월 18일 월요일 : 7,910걸음

어제 교회에서 주차하다 주변의 도움으로 운전석 쪽의 후진등이 고장난 걸 발견했다. 필라멘트로 된 조그만 전구라 부속 가격도 2,960원으로 싼 편이다. 이 부품을 전구 대신 LED로 교체하는 사람도 많다. 다만 인증받지 않은 제품이 많아 자동차검사 시 불합격 처리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난 그냥 르노자동차 서비스센터 가서 양쪽 후진등(한쪽이 고장 나면 다른 쪽도 금방 수명이 다할 가능성이 높음, 그래서 바꿀 때 양쪽을 전부 교체함)을 10,000원 주고 갈았다. 트렁크에서 내장재를 들어내고 작업했지만 10분 만에 끝났다. 수리기사님 대신 내가 했다면 아마 몇 시간은 걸리지 않았을까 싶다.     


오른발 컨디션이 점차 좋아지고 있다. 다만 그 속도는 거북이처럼 느리다. 지금 내가 못하는 것은 두 가지다. 예전처럼 빠르게 계단을 내려갈 수 없다. 한 걸음에 한 칸 내려가는 게 최대 속도다. 풀 스쿼트 자세처럼 쪼그려 앉기가 어렵다. 쪼그려 앉으면 수술부위에서 시작해 무릎과 골반까지의 연결부위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지금 할 수 있는 운동은 걷기와 실내 사이클이 다리에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운동인 것 같다. 누워서 하는 코어 운동은 바닥에 앉거나 일어설 때 자세가 살짝 불안정해져서 당분간은 두 가지 운동만 하는 게 이로울 듯 싶다.     


오늘은 사이클 운동 강도를 조절했다. 인터벌 대신 1시간 동안 20~25km/h 속도로 살랑살랑 자전거를 탔다. 그냥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1시간 동안 페달만 굴렸다.   

  

12월 19일 화요일 : 걸음

슈링크플레이션 체험

000 소방서로 발령받으면서 알게 된 000 순댓국, 이 지역에서 나름 유명한 집이다. 집에서 20km 떨어진 곳이지만 진정한 맛집이라 지금도 1년에 1~2번은 이곳에 들러 밥을 먹고 있다. 가게에 들어서면 여러 유명인사, 연예인이 사장님과 찍은 사진과 사인이 벽에 빼곡히 걸려있다. 메뉴 구성은 단출하다. 일반 설렁탕 집처럼 배추 겉절이, 깍두기가 들어있는 단지 2개, 들깨와 소금, 후추 등이 있는 양념이 작은 쟁반에 놓여있다. 순댓국의 필수인 순대는 공장에서 만든 기성품을 사용하지 않고 가게에서 직접 만들어 쓰는데 그 맛은 직접 먹어봐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다만 순대국밥 한 그릇이 11,000원으로 결코 싼 가격은 아니다.      


난 원래 뜨거운 걸 잘 먹는 편이 아니어서 항상 국밥류는 앞접시에 덜어서 먹고 있다. 여기서는 팔팔 끓은 순댓국이 나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순대를 건져 공깃밥 뚜껑 위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해야 내 입맛에 알맞게 식은 순대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그 방식으로 먹어와서 밥그릇 뚜껑 위에 식혀놓았던 순대개수를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한 14개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이상했다. 순대를 건져보니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적은 10개만 국 속에 들어 있었다. 이야, 이게 진짜 슈링크플레이션이구나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순대가 덜 들어서 실망한 탓일까? 맛도 평소 먹던 것보다 덜했다. 괜히 밥뚜껑에 덜어놨어, 뜨거워도 그냥 먹을 것을 오늘 아끼던 맛집 하나를 잃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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