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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Dec 27. 2023

석 달만의 출근 날,  지독한 몸살이라니

불운의 아이콘은 바로 나

12월 21일 목요일 : 10,165걸음


석 달만에 출근하는 날이다. 새벽 4시에 나도 모르게 눈이 떠졌다. 지금 일어나면 적어도 18시간이 지나야 편히 누울 수 있을 텐데, 일부러 눈을 감고는 2시간 정도를 엎치락뒤치락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6시 30분에 일어나 큐티를 하고 출근 준비를 마쳤다. 바깥 기온은 영하 14도로 12월의 역대급 추위라고 한다. 이런 날, 출동이 걸리면 밖에서 덜덜 떨면서 불이 꺼질 때까지 하염없이 대기하며 차량 조작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옷장을 뒤져 평소에 입지도 않던 내의를 챙겨 입었다. 조금 거추장스럽게 느껴졌지만 그게 대수랴, 밖에서 덜덜 떠는 것보다는 불편한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어제 수업 때문에 롯데월드를 다녀와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성당 빵을 사 왔다. 그래서 오늘 아이들의 아침 메뉴는 이성당 단팥빵으로 결정했다, 학교에 가지고 갈 물통, 아침과 점심에 먹을 감기약 등을 준비해서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8시, 회사에 도착해 월동준비를 했다. 두꺼운 겨울용 제복과 점퍼로 갈아입고 장갑과 핫팩, 귀마개까지 챙겨놓았다. 헬멧, 방화복 등 개인장비를 점검한 후에는 내 담당인 소방차량을 살필 차례였다. 물 6000리터가 있는 물탱크차와 36m 굴절사다리차의 시동 점검, 차 안에 각종 장비의 작동 여부를 확인했다.  


추운 날이라 화재출동이 걸리면 여러 가지로 힘들어진다. 소화용수인 물이 얼어붙어 미끄러지기 쉽고 불이 꺼지는 시간 동안 야외에서 최소 2시간 이상 활동해야 하기 때문에 추위와 싸우는 것도 힘들다. 또 물을 만져야 해서 손이 꽁꽁 어는 건 아무리 애를 써도 막을 수 없다. 다행히 오늘은 화재출동이 없었다.


대신 날이 추운 탓에 고드름 제거 출동이 있었다. 내 담당인 굴절사다리치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골목이라 5톤 펌프 차량이 출동했다. 현장에 나갔던 후배로부터 고드름이 크고 단단하게 얼어붙어 있어서 제거할 수 없었고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고드름 근처에 접근금지 테이프를 붙이고 왔다는 말을 들었다.     


오후 4시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운동을 했다. 1시간 동안 시속 5km로 걸었다. 2차로 저녁 8시부터 근력운동을 하려고 계획했으나 갑자기 몸살기운이 느껴졌다. 큰 아이에게서 감기가 옮았는지 어제 저녁부터 재채기가 나오고 콧물이 흘러 별 거 아니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콧물이 흐른 지 하루가 지나니 허리부터 근육통과 비슷한 통증이 나며 온몸에서 힘이 죽 빠졌다. 하필이면 병원 진료도 모두 끝난 저녁 9시부터 몸살이 날 건 뭐야? 사무실 10m 앞에 병원이 있어 진료시간이었으면 외출하고 병원에 다녀올 수도 있었는데, 이젠 몸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새벽 2시까지 열이 올랐고 퇴근할 때까지 타이레놀 1알로 버텨야 했다. 지금 이 상태에서 화재출동이 걸리면 몸살에다 영하 14도의 추위까지 최악의 조건에서 활동해야 하는데 제발 무사히 지나갈 수 있기를 주님께 기도했다. 새벽 5시경 소방시설 오작동으로 인한 출동 외엔 없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12월 22일 금요일 : 2,981걸음


아침 퇴근시간이 되니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결혼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니 서로 바쁜 시간에는 일부러 연락하지 않았다. 전화가 온다는 건 뭔가 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놀라서 전화를 받아보니 큰 아이가 학교 갈 준비하는 중에 아침밥 먹은 것까지 토하고 집에서

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퇴근하자마자 집에 와서 아이를 데리고 병원 진료를 받아보라는 내용이었다.      


사실 그동안 우리 집 두 아들은 2주 가까이 독감과 감기로 병원 진료를 받아왔다. 둘째는 그나마 괜찮아졌는데 첫째가 이상하게 두통과 38도 이상의 열에 배가 아프고 토한다니 독감 후유증으로 생각했다. 그동안 집 앞의 가정의학과에서 독감 후유증으로 진료받았는데 차도가 없으니 다른 병원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속이 불편하다며 밥을 조금만 먹은 것도 족히 이틀은 된 것 같았다.      


다음 근무조와 교대 후 회사에서 집으로 출발하며 학교에 못 가고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에게 차례나 전화했으나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혹시나 아파서 전화를 못 받나 싶어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집으로 오는 20분 동안 혹시나 끙끙 앓고 있을까  걱정했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방에서 책 읽느라 전화를 받지 못한 것이어서 한시름 놓았다.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 중 결정한 근처 소아과 진료 결과 큰 아이는 장염이었다. 그런데 이틀 전 같은 증세로 진료받은 집 앞 가정의학과에서는 그걸 독감 후유증으로 오진하고 항생제와 감기약을 처방한 것이었다. 이래서 아플 때는 여러 병원을 다녀보라는 말이 생겼나 싶었다. 소아과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하루만 잘 버티면 된다, 가장 좋은 건 굶으면서 수액을 맞는 것인데 6학년이라 다 컸으니 수액 대신 포카리스웨트 같은 전해질음료를 3시간 동안 200ml 정도로 천천히 먹이라고 했다. 설사하고 나면 탈수 증상이 생길 수 있는데 탈수를 막으려고 전해질음료를 먹이니 꼭 지켜달라는 당부였다. 장에 자극을 줄 수 있는 맵고 짠 음식은 나을 때까지 먹으면 안 되며 하루동안 죽을 먹이면 금방 나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아이 진료를 마치고 나도 감기로 진료받았다. 요즘 감기가 독해서 아이에게는 고열과 장염 증세로, 어른에게는 심한 몸살로 나타나는 게 유행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정말 특이했던 건 진료하는 의사 선생님이 달 전의 나처럼 오른발에 보조깁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넘어지셨나 봐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진료에 방해될까  차마 말하지 못하고 “고생 많이 하셨네요, 저 역시 몇 달 전에 다리 다쳐서 힘들었지만 지금은 거의 나았답니다. 얼른 나으세요” 속으로만 의사 선생님의 쾌유를 빌었다.


아이가 먹으면 토할 것 같다고 해서 점심은 건너뛰고 집에서 전해질음료를 먹이며 재웠다. 오후에 학교 담임선생님께 연락이 와서 아이 상태를 전했다.      


오늘은 걷기 운동 대신 실내 사이클을 천천히 1시간만 탔다.      


12월 23일 토요일 : 2,336걸음     

어제 괜히 운동했나 싶을 정도로 아직 몸살기운이 남아 있어 운동을 쉬었다.     


아내가 이성당에서 사 온 빵을 먹다 비닐 조각이 나와서 구매점에 연락했다. 관리자가 출근 전이라 출근 후 다시 연락을 주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내가 구매점을 착각해 다른 곳에 전화하는 바람에 총 세 명의 직원과 통화한 후에야 환불 처리되었다. 그 과정에서 죄송하다는 말을 10번도 넘게 들은 것 같다. 그때마다 괜찮다고 대답했는데 오히려 그 말을 듣는 내가 더 미안했다. 직원의 설명으로는 생산 과정에서 앙금봉투 일부분이 들어간 걸로 추정된다고 했다. 환불 과정 역시 순조로웠고 직원들도 친절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성당 빵을 먹어야겠다.      


아이들이 집에 있는 걸 답답해해서 밖에 나갈 생각이었는데 나한테 감기가 옮은 건지 아내도 열이 나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옮기지 않으려고 어제 종일 마스크를 쓰고 지냈는데 결국은 아내도 감기에 걸렸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아이 둘과 처음으로 pc방에 갔다. 아이들은 2시간 동안 좋아하는 게임을 하며 라면까지 먹고는 엄청 좋았다며 다음에 또 가자고 졸랐다.     


12월 24일 일요일 : 11,384걸음


소방차는 연료를 채우기 위해 공공조달주유소를 이용한다. 보통 3년에 1번꼴로 바뀌는데 국내에서 영업 중인 정유회사 중 입찰을 통해 가장 좋은 할인율을 제시하는 곳이 공공조달 주유소로 지정된다. 내 기억으로 14~15년 GS, 16~19년 SK, 20~22년 다시 GS, 22년부터 S-OIL이었다.


연말이 되면 예산을 마무리하는 과정으로 인해 12월 26일부터 31일까지는 소방차에 주유를 할 수 없다. 25일까지 모든 소방차에 가득 기름을 채워놓고 출동으로 인해 연료가 부족할 수 있으니 미리 20리터 용기 대여섯 개에 경유를 채워놓았다(상황에 따라 1건의 출동으로도 소방차의 연료 절반 이상을 소비할 수도 있다).     


우리 센터 소방차량은 연료통 크기는 다음과 같다.

5톤 펌프차 : 200리터, 물탱크차(물이 6000리터 있음) : 200리터, 굴절사다리차 : 200리터. 25일 근무자가 출근해서 모든 차에 연료를 채우려면 바쁘니 미리 내 담당인 굴절사다리차부터 연료를 채웠다. 이상하게 Volvo에 만든 굴절사다리차는 연료통의 주입구가 위에서 살짝 아래로 치우쳐 있어서 연료통의 95퍼센트만 채울 수 있다. 그 이상은 아무리 넣으려애를 써넘쳐서 채울 수 없었다. 다른 운전자는 보통 90퍼센트 정도를 채우지만 난 주유소 2년 알바 경력이 있어 기름을 연료 주입구 바로 앞까지 꽉 채울 수 있었다. 그렇게 연료통의 95퍼센트까지 기름을 넣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화재출동이 걸렸다.      


1. 레미콘 공장 화재, 2. 대로변에 늘어선 소방차들


내가 근무하는 곳의 인접 지역에 있는 레미콘 공장에서 불이 나 소방차만 약 30대가 출동했다(화재 규모에 따라 자동으로 가장 가까운 지역의 안전센터 소방차로 출동지령이 방송됨).


지령을 받고 화재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25분이 걸렸다. 상황실 무전을 통해 화재현장에 구조대상자가 6명이 있었으나 공장 크레인으로 3명, 인근 서울소방의 굴절사다리차가 3명을 구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아무도 안 다쳐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내가 조금빨리 갔더사람들을 구조했을거라는 아쉬움이 생겼다. 이럴 때를 대비해 사다리차 조작훈련을 해왔지만 아직까지 화재현장에서 사다리차로 사람들을 구조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쉬움은 날려버리고 이후 상황에 집중했다. 빠른 대처로 인해 사다리차보다는 펌프차와 물탱크차의 역할이  중요해졌다(상황에 따라 쓰이는 소방차가 바뀝니다). 결국 나까지 나설 차례는 오지 않았고 약 2시간 만에 불이 꺼져 사무실로 무사히 복귀했다.


오늘의 운동은 20분 서킷 트레이닝과 걷기다. 맨몸 스쿼트, 맨몸 데드리프트, 크런치, 바이시클 크런치, 다리교차 레그리프트(번갈아가며 다리 올리기), 누워서 발터치(오른손은 오른발, 왼손은 왼발 닿기), 플랭크, 코브라자세 각 1분씩 2세트를 마쳤다. 석 달만의 근력운동이라 조금만 하자는 생각이었다. 하루가 지나면 그동안 잊고 지낸 근육통이 생기겠지만  그냥 무시했다.

 

12월 26일 화요일 : 7,726걸음


달만의 진료 결과


재활하는 동안 오른 다리를 움직일 1주일에 한두 번은 정강이 바깥쪽이 시큰해지며 힘이 빠지는 경우가 있었. 그러고는 금세 괜찮아지지만 이런 증상이 생기는지 궁금했다.


내 질문에 대한 주치의 답변 모음

1. 예전 골절부위 중 하나가 그쪽인데 아무래도 운동 중에 골절부위 근처 신경이 살짝 자극받는  같으니 조금 지켜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2. 달리기는 한  뒤부터 가능하니 운동은 지금처럼 걷기와 실내 사이클만 하는 게 좋다.


3. 와이어 제거 수술은 원래 1년 뒤에 하나 6개월 뒤에 해도 된다. 다음 CT 검사 제거 수술 시기를 생각해 보자.


12월 초부터 지금까지 수술 부위에 좁쌀만한 두드러기가 생겼고 무척 가려웠다. 1주일 정도 참았으나 결국 피부과에서 처방받은 연고를 바르니 좋아졌다 다시 재발했다. 주치의 선생님수술할 때 고정한 와이어 때문은 아닌 거 같다고 얘기했지만  생각엔 와이어로 인한 두드러기 같았다. 검색 결과 나처럼 골절 수술 후 두드러기 생긴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가려워서 참기 힘든 이상한 두드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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