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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Dec 06. 2023

2달 동안 미뤄 놓은 일을 해결하다

재활인생 2주 차

11월 29일 수요일 : 10,477걸음

이번주까지는 장모님께서 우리 집으로 올라오셨다. 벌써 2달째 월요일에 우리 집으로 출근하셔서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하고 계신다. 못난 사위의 다친 다리 때문에 애꿎은 장모님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번 주 월요일에 우연히 봤던 장모님 차는 왼쪽 브레이크 등이 고장 난 상태였다. 내 성격상 정비사항은 발견 즉시 조치하는 편이라 어머니(장모님, 평소에는 어머니라는 호칭을 씁니다)께 말씀드렸더니 안전에 관계된 일이라 웬일로 흔쾌히 수리하는 걸 허락하셨다(원래는 사위에게 부담될까 싶어 엔진오일을 갈거나 세차 같은 허드렛일도 내게 부탁하시는 일이 없다, 항상 내가 먼저 나서서 어머니 차의 에어컨 필터, 와이퍼, 엔진오일, 타이어 등 차량 소모품을 관리한다, 그런 거라도 해야 어머니께 받은 수많은 것들 중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는 느낌이 든다) 이왕 나가는 김에 손 세차도 해서 때 빼고 광 좀 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차장으로 가는 길에 현대 서비스센터를 들렀다. 단순히 브레이크 등만 갈면 되겠지 간단히 생각하고 간 센터는 이미 손님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접수하러 갔더니 직원이 “1시간 정도는 기다리셔야 할 것 같아요, 고객님 앞에 8분 대기 중입니다." 아니, 무슨 브레이크 등을 교환하는 데 1시간 넘게 기다리는 게 맞아? 그냥 이곳은 안 되겠다 생각하고 얼른 서비스 센터에서 세차장으로 차를 돌렸다.      


마침 자주 가는 세차장에는 타이어 판매, 블랙박스 설치, 간단한 경정비를 할 수 있는 점포 3곳이 나란히 옆에 붙어 있었다. 그곳에서 세차하는 동안 수리가능 여부를 물어봐야겠다 생각하며 세차장으로 향했다. 차를 맡기고 나서 접수대에 혹시 13년식 소나타 운전석 브레이크 수리가 가능한지 물어봤다. 직원이 어디론가 전화했고 한 5분쯤 지나 옆 가게 정비소 사장님이 직접 오셨다. "이 차는 고급형이고 뒤 조명이 LED 일체형이라 고장 나면 통째로(보통 아쎄이를 교체한다는 표현을 주로 쓴다. 정확한 이름은 Assembly : 관련 부품 일체) 교환해야 한다"라고 했다. LED 일체형이 아닌 경우엔 브레이크 등 전구 하나만 갈면 된다(한쪽의 전구 수명이 다 된 경우 다른 쪽도 금방 고장 나니 보통 2개를 1세트로 한 번에 교환한다). 양쪽 브레이크 등 교환 수리비 2만 원만 예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고장 난 쪽의 브레이크 등만 교환해도 22만 원의 수리비가 나오는데 이걸 고칠지 말지 내게 물어보러 정비소 사장님이 직접 오신 것이었다. 이 차 브레이크 등은 LED 통째로 가는 것이니 아직 멀쩡한 조수석의 브레이크 등은 더 쓰라는 말도 덧붙여 주셨다. 아이고 이런, 2만 원이 그새 11배나 불어 22만 원이 되어 버렸다. 세차하러 왔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생겼다. 그래도 어쩌랴, 2달간 애써주신 어머니께 제대로 용돈도 못 드렸는데 이런 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차 끝나면 바로 브레이크 등을 통째로 교환하기로 했다. 1시간 후 소나타는 애꾸눈에서 환한 양쪽 눈을 가진 멋진 차로 변신했다.      

내가 추구하는 정비 성향은 예방 정비에 가깝다. 예를 들면 남들이 엔진오일은 10,000km에 교환하면 난 그보다 앞선 8,000~9,000km에 교환하는 식이다. 이처럼 블랙박스 메모리카드 역시 꼭 블랙박스 전용 메모리 카드를 쓰며 3년에 1번 정도는 새것으로 바꾸고 있다. 보통 코스트코에서 장 볼 때 3개를 사서 어머니, 나, 아내 차의 메모리카드를 한꺼번에 바꾸고 있다.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실내 룸미러로 눈길이 갔다. 메모리카드를 바꾼 지 3년이 다 돼 가니 아직 괜찮은가 단순히 확인만 할 참이었다. 그럼 그렇지,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블랙박스 LCD 창에는 메모리카드 오류로 녹화불가라는 메시지가 떡하니 나와 있었다. 카드를 포맷했지만 오류메시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예비용으로 가지고 있던 블랙박스 전용 메모리카드를 끼워 넣어 해결했다. 그래도 내가 이걸 확인해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어머니는 녹화도 되지 않은 차를 계속해서 타고 다니실 뻔했다. 나 혼자 뿌듯했다.      


보충설명

내가 사용하는 메모리카드

삼성 블랙박스 마이크로 SD카드 PRO ENDURANCE 64G 인터넷 구매 시 14,500원입니다. 다들 블랙박스 녹화 잘 되나 점검해 보시고 카드 교환 시기가 언제인지 생각나지 않는다면 그냥 교환하세요, 그게 낫습니다. 사고 났는데 녹화 안 됐으면 나만 손해입니다!!! 카드방식은 MLC로(방식은 MLC와 TLC가 있다고 하는데 블랙박스에는 MLC 방식이 좋다고 합니다. 블로그에서 배웠습니다)     


세차 끝나길 기다리는 동안 근처를 걸었다. 집 근처 산책로는 평평해서 좋았는데 이 근처 보도블록은 울퉁불퉁하고 경사도 있어 산책로보다 난이도가 한층 높았다. 300m도 못 걸었지만 수술한 발에서 은근한 통증이 느껴져 인도에 잠시 멈춰 서서 쉬었다. 원래는 5,000보를 채우려 했지만 여기선 그냥 한 바퀴만 걷기로 했다. 순한 맛 놔두고 매운 맛부터 먼저 먹을 필요는 없었다. 집 근처 산책로를 걸어 10,000보를 넘겼다.

   

11월 30일 목요일 : 7,074걸음

영화 서울의 봄을 보러 집 근처의 극장에 왔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힘들었지만 이 영화를 놓칠 수는 없었다. 12.12사태에 관해 아는 것은 책에서 배운 게 전부였다. 영화가 실제 사건을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알지 못하는 그날의 진실을 책 보다 자세히, 실감나게 설명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한 마음에 음료만 여러 차례 들이켰다. 강경책을 써서 반란군을 진압해야 하는데 자리 걱정에 상황 파악 못하고 온건책만 고집하는 못난 군 지도부, 싸우지도 않고 미리 포기하는 다수의 지휘관들, 권력욕과 잿밥에 눈이 멀어 쿠데타를 일으키는 못난 똥별들, 불리한 상황에서도 반란을 막으려는 소수의 참군인들, 역사는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의 승리로 끝났지만 그로부터 13년 후에 쿠데타의 주역들은 법정에 서게 되었다.

참고 기사 https://naver.me/Gnvm43Ta


12월 2일 토요일 : 4,613걸음

아이 둘의 대안학교 면접 참석

1시간 반동안 교장, 교감선생님과 가족 면접을 봤다. 회사 구직 면접과는 달리 편한 분위기로 시작됐고 학교 측에서 우리 가족을 위해 많이 기도하셨구나, 우리를 최대한 배려해 주신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가족 역시

최선을 다해 면접에 참여했다. 아이들의 지원동기를 얘기할 때였다.


 아이가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겪은 스트레스로 힘들었다는 얘기, 둘째는 형이 마음이 아파 힘들어하는 걸 지켜보며 나도 힘들었다, 가끔형이 자기에스트레스를 푸는  같아 마음이 구멍 난 거 같았다는 말을 했다. 이 학교를 다니며 마음의 구멍을 메우싶다란 말을 들은 교감선생님이 "괜찮아, 00야 네가 정말 고생 많았다" 말씀하실 때 온 가족의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아내와 내겐 올 한 해 있었던 우리 가족의 슬프고 힘들었던 일이 한 번에 오버랩되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고 참을 수 없었던 눈물은 아래로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이번 주 제일 중요한 일정이었던 면접을 마치고 지원한 학교 근처에서 점심을 먹는데  아이가 머리가 아파 밥을 먹다가 말았다. 아이의 등을 만져보니 살짝 열이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3일 전 학교 체험학습으로 간 에버랜드에서 밥도 못 먹고 그 넓은 곳을 2바퀴나 걸어 다녀 생긴 몸살감기 같았다.


아이가 아프다고 한 시간이 오후 1시 30분, 여긴 살던 곳이 아니어서 토요일 오후 2시 이후까지 진료하는 소아과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근처에 는 처형의 도움으로 10km 떨어진 곳에서 3시까지 진료하는 소아과를 찾았고 병원 마감전에 겨우 진료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큰 아이 진료를 마치고 나니 이젠 둘째가 이빨이 아프다고 징징댔다. 그때는 오후 2시 30분이 다 될 무렵이었다. 아내와 나의 검색신공이 발휘될 차례였다. 2시가 넘은 시간에 4학년 아이가 진료받을 수 있는 치과를 찾는 게 주어진 임무였다. 채 10분이 되지 않아 우리 부부는 치과를 찾아내 예약까지 마쳤다. 진료 마감시간인 3시까지 25분이 채 남지 않았다. 빛의 속도로 차를 운전해 10분 만에 치과에 도착했다. 둘째가 아팠던 이유는 발치 시기가 넘은 이빨 때문이었다. 발치하고 나니 3시였다. 정말 아슬아슬했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특전사 구호가 생각나는 주말이었다.


12월 4일 월요일 : 11,583걸음

QM6 엔진오일을 바꾸기 위해 집에서 20분 거리의 공임나라 00 지점으로 왔다. 지난번 자차보험으로 뒤범퍼를 수리하며 무상으로 교환했던 엔진오일이 이상한 듯싶었다. 7,000km 안 됐는데 주행할 때 엔진소리가 시끄러워져 이번에 교환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여긴 집 근처 공임나라와는 달리 평이 매우 좋다. 안심하고 차를 맡길 수 있었다.


이젠 걸을 때 부자연스러움이 덜하다. 절뚝이는 건 10퍼센트, 다친 발을 디디고 나서 연스럽게 뒤꿈치로 중심이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옆에서 보면 아직은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가 금방 눈에 띈다. 수술 부위에 살짝 통증이 있지만 이 정도는 참을만해서 계속 자연스럽게 걸어보려 노력하고 있다.(재활운동으로는 하루 7,000걸음 이상 걷기, 앞꿈치와 뒤꿈치 들기 연습입니다. 발목의 유연성은 많이 걷는 것만으로도 차츰 좋아진다고 합니다)


12월 5일 화요일 : 12,177걸음

QM6 AS센터 도봉사업소(사업소는 일반 카센터의 상위 기관으로 모든 수리 가능) 방문

고장 내용

1. 주유게이지의 간헐적인 작동 불량

3년 전, 주유게이지 불량으로 수리를 받았다. 9월 말, 다시 그 증세가 나타나 수리 예약을 잡은 게 오늘이었다.

그새 이 부품 관련 불량 문제를 르노에서 알게 되어 무상 수리를 진행한다는 공지를 받았다. 보증기간과 범위 역시 5년 10만 km에서 7년 14만 km까지로 연장되었다. 3년 전 수리에서는 개선된 부품을 사용하지 않아 다시 문제가 생겼을 거라는 설명을 들었다. 네이버 카페에서는 관련 증상(주유게이지가 갑자기 내려가는 현상)을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 수리를 받지 못했다는 글을 봤는데 다행히도 난 한 번에 교체받을 수 있었다.


2. 조수석 사이드미러 접힘 불량

지난 9월 수리에서는 운전석 사이드미러 접힘 불량으로 교체받았다. 정비기사님의 설명으로는 정해진 절차(접힘 불량의 경우 1차로 윤활 조치, 2차나 3차 수리 시에 해당 부품 교체)를 지켜야 르노 본사의 승인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기사님 본인도 한 번에 다 고쳐주고 싶지만 본사 승인이라는 절차 때문에 다시 방문해야 하는 경우가 생겨 아쉽다고 했다.


한참 나와 수리 기사님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할 무렵, 7~8m 떨어진 곳에선 다른 정비기사님과 수리 맡기러 온 사람 사이에 큰 소리가 오갔다. "아니 왜 반말하는데, 내가 언제 그랬어요, 왜 욕하세요? 아, 정말, 기타 등등" 아침부터 큰 소리 내면 기분도 좋지 않을 텐데, 내가 그쪽을 쳐다보자 담당 기사님도 괜히 멋쩍은 듯 미소를 지었다.


옆자리 큰 소리 남자와 달리 난 최대한 기사님의 설명을 경청하고 맞장구도 쳤다. 대신 설명이 끝나고 내가 정비차고에서 나가며 캔커피 한 개를 건넸다. "짬날 때 드세요." 캔커피 그거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환한 미소와 함께 건넸던 커피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사실 두 달 뒤면 보증수리 기간이 만료되기 때문에 난 이번에 최대한 수리(대부분의 문제는 부품을 새 걸로 교체하면 거의 해결됩니다. 하지만 부품 교체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이상 보증수리 5년 차)를 받아야 했다. 이곳은 수리 예약하기도 어려울뿐더러 AS센터까지 오가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다.


기사님도 사람이다. 내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면 나 역시 그 덕을 보게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해도 남에게 친절을 베푸는 건 당연한 거 아닐까? 살면서 지금껏 우리 집에 오는 수많은 기사(제품 설치, AS, 에어컨 청소 등)님들에게 음료 하나라도 손에 들려 보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내게 일을 해결할 능력이 없으니 사람을 초빙하는 건데 당연히 감사 표시는 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한 방에 부품 교체가 이뤄지지 않는 르노 AS 특성과 달리 난 조수석 사이드미러와 주유게이지 모두 한 번에 교체받을 수 있었다. 정비 기사님의 재량도 있었겠지만 캔커피와 따뜻한 말 한마디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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