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비번입니다. 하지만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습니다. 그것도 제복까지 갖춰 입었습니다. 이유는 특수차량 운용자 교육 참석 때문입니다. 교육 장소가 00시라서 퇴근 전에 관외 출장(소속 기관의 관할지역 경계를 넘어서는 출장)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는 비번이지만 교육 참석을 위한 관외 출장 중인 상태입니다.
교육 장소에 도착하니 제가 배울 차량이 이미 도착해있었습니다. 오늘의 교육 차량은 화학차(유류화재 등 물로 진화하기 어려운 화재에 대비한 폼(foam, 거품) 소화제가 있는 차량)와 고가 사다리차 총 2대입니다. 교육 참석자는 저처럼 비번인 사람도 있고 아침 8시까지 근무를 마치고 온 인원들도 있습니다(교육 중 주위의 얘기를 들어보니 새벽에 화재출동이 걸려 5시간 넘게 불 끄다 온 인원들도 있었습니다. 정말 피곤했을 겁니다). 대략 40명 정도 되는 인원이 00 센터에 모이니 주차장이 가득 찼습니다. 각자 담당하는 차량별로 나뉘어 교육이 시작됐습니다. 저는 사다리차 담당(사다리차도 굴절 사다리차와 고가 사다리차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그중 저는 굴절사다리차만 담당해서 고가 사다리차는 배울 점이 많습니다)이라서 고가사다리차 교육 쪽으로 갔습니다. 담당 교관으로 현대에버다임(특장차량 제조사)에 재직 중인 직원 두 명과 정비특채(자동차 정비 경력이 있으며 이 경력으로 특별채용된 소방관)된 직원 2명이 나와서 화학차와 고가 사다리차의 제원과 사용법, 유의사항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굴절 사다리차와 고가 사다리차의 공통점(옆으로 펼치는 아우트리거가 있음, 아우트리거를 포함한 차량 하부 부분은 두 차량 모두 조종 방법이 같음, 하지만 사다리가 달린 차량 상부는 조작법이 조금 다름)에 대해선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정작 고가 사다리차를 운용해 봐야 아는 부분(승강기 사용법과 영점, 와이어 장력 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 등)에 대해선 이런 부분이 있구나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주의 깊게 들어둬야 조금이라도 친숙해지니까요. 나중에 이 차를 담당하게 되면 매뉴얼을 최소 5번 이상 정독할 텐데 그때 이런 간접경험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시간 정도 제조사 직원의 설명에 대해 들었습니다(아, 이 교육은 차량을 직접 보면서 듣는 것이라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바깥에서 진행됐습니다. 그래서 모두 두건이나 모자, 선글라스 등으로 완전무장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같은 제조사에서 만든 차량이라도 해마다 개선되는 사항이 있어서 차가 조금씩 달라집니다(제가 담당한 18년식 굴절사다리차와 19년식 사다리차를 예로 들면 조작반에 LCD 화면 여부, 보조엔진도 연료통이 아래에 달렸냐 위에 달렸냐 등 다른 점이 있습니다. 각 소방서마다 배치된 차량이 모두 같은 연식에 같은 제조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교육 때 자기 차와 다른 부분은 그저 참고하는 정도로만 듣습니다).
제조사 직원의 설명이 끝나고 묻고 답하기 시간에는 여러 가지 궁금한 점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그중 각 사다리차에 달린 바스켓은 한계중량이 굴절 300kg, 고가 200kg인데 꼭 그걸 지켜야 하는 것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출동 상황에서 그 중량을 넘으면 차가 고장날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제조사에서 차를 만들 때 보통 한계중량에 100kg을 더 얹어서 모의시험을 한다. 하지만 그럴 경우 "경고 메시지와 함께 사다리차의 동작이 멈추니 웬만하면 매뉴얼에 나온 중량을 지키는 게 좋다"였습니다. 실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조금 개운하지 않은 대답이었습니다. 특장차량 제조사 직원의 입장에서는 차량 매뉴얼을 지키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실제 출동 시 상황에 따라 한계중량을 초과할 경우, 한 번에 모든 사람을 구조할지 두 번에 나눠 구조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운전원의 입장에선 힘든 고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정비특채 출신 직원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실 사용자인 제 입장에서는 같은 소방관인 이 직원의 설명이 훨씬 이해하기 편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직원은 실 사용자인 동시에 차량에 이상이 생길 때마다 웬만한 고장은 직접 고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제조사 직원과 소방관의 입장을 모두 지닌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제조사 직원과 정비특채 직원의 설명이 미묘하게 다른 부분도 있었습니다. 사다리차를 실제로 조작하다 보면 수동으로 운전원이 직접 조작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지면의 경사가 5도 이상이면 사다리차의 아우트리거를 펼쳐 사다리를 올리기 어렵습니다. 아우트리거의 파손이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지면의 경사가 7도까지는 아우트리거를 수동으로 조작해 차량이 감지하는 경사를 5도 이내로 맞춰 아우트리거를 펼칠 수가 있습니다. 그때 제조사 직원은 처음부터 수동 조작해서 아우트리거를 펼쳐야 한다고 설명했지만 실사용자인 정비 특채 직원의 설명은 그와 반대였습니다. 평지가 아닌 7도의 경사에서도 자동으로 아우트리거를 전개하면 지면 감지 후 차량 앞뒤의 기울기만 맞추지를 못한다. 이후 수동으로 조작해서 앞 뒤의 기울기를 맞추면 경사각이 5도 이내로 나오니 자동으로 충분히 전개할 수 있다. 이 방식대로 하면 오히려 수동으로 조작할 때보다 빠른 전개가 가능하다는 교육내용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5년 정도 사다리차를 담당했지만 고드름을 따거나 사다리를 펼쳐 화재 현장 위에서 아래로 화점을 향해 소화용수를 뿌린 경험에 비해 실제 화재 현장에서 사다리차를 펼쳐 사람을 구조한 적은 없었습니다.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일을 대비해, 언젠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매뉴얼을 보고 직접 조작 연습을 하며 실력을 키워가고 있습니다.(최근 일어난 여러 사건(부천 호텔 화재 등)들로 인해 소방관을 책망하는 의견도 많습니다. 문제점은 고치고 부족한 점은 채워야겠지요, 더욱 열심히 노력해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제때 구하는 소방관이 되겠습니다. 악플보다는 응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