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1글 #3
“화장실? 나가서 오른쪽으로 한 칠메타 가면 라일락 향기 나는 곳 있을 거야. 거기 맞은 편에 있어.”
화장실이 어딨는지 가게에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해주는 곳이 요즘 서울에 또 있을까? 서대문구 모래내시장에 있는 닭내장탕 집에 가서 화장실이 어딨는지 점원 분들에게 여쭤보면 알 수 있다. 이 가게에서만 20년을 일하셨다는 여사님의 대답이었는데, 그 분한테 이 가게가 얼마나 되었는지 여쭤봤을 때는 한 오십년이 넘으셨단다.
모래내 시장은 서울 서대문구 가좌역 근방 지역이 듬성듬성 재개발에 들어가기 전까지 서울 서부 지방 중에서 꽤 큰 시장 중 하나였다. 이제는 역 주변 큰길가에 그렇게 깊지 않은 구역으로,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시장이 모래내 시장이다. 듬성듬성 나 있는 골목 따라 몇몇 가게들과 여관, 몇 십년 된 식당들이 있고 닭내장탕 역시 세월을 지켜온 식당들 중 하나이다.
친구들과 얘기할 때 왠지 맛있는 식당에 대해서 얘기할 때 ‘맛집폰트’라는 말을 종종 쓴다. 비주얼에 어떤 홍보를 기대하지 않고, 무심히 가게의 주력 상품에 대해 간판 혹은 벽면 유리창에 적어놓은 그 글자의 폰트가 세월을 혹은 실력을 감추고 있는 촌스러움을 보일 때, 우리는 ‘맛집 폰트’라는 말을 종종 쓴다. 닭내장탕 집 역시 그런 맛집 폰트로 중무장한 집이다.
‘닭 내장탕 小 17,000원’, ‘화장실 나가서 우측 7m 최O장 건너편’ 이런식의 정보전달만 무심히 하는 글자들이 세월을 보여준다. 그 뿐만이 아니다. 명, 청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중국 드라마에서 나오는 객잔들에 종종 보이는 오래된 나무 탁자들 같은 탁자들만이 가게의 식탁으로 있다. 식탁들마다 위에 있는 내장탕을 끓이기 위한 가스 버너들에 튄 국물 흔적들은 이 가게의 또 다른 무심함을 보여준다.
토요일 저녁에 가게를 들렀을 때, 가게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왔다. 누군가는 상가 매매 계약서를 쓰기 위해서 오고, 가족단위로 온 집도 있었다. 주니어의 세대는 달랐다.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2세와 함께 온 집, 이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만한 아이와 온 집 등 여러집들이 가족단위로 온다. 가족단위로 온 집이 툇마루 위에 좌식 탁자에 앉는 편이라면, 삶의 애환을 달래기 위해 온 2인석에는 좀 더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 앉는다. 뭔가 허름해보이는 동네 술집에 으레 있을 것 같은 5,60대 아저씨 둘이 차지한 테이블도 있는 반면, 그 뒤 편의 테이블에는 두 명 중 한 사람은 휠체어를 탄 사람이었다. 다른 때 였으면 마냥 ‘신기하다’ 했을텐데 바로 이틀 전, 이제 곧 여당이 될 정당의 당대표와 장애인권연합회의 회장이 TV 방송에서 이동권을 비롯한 장애인 인권에 대해 일대일 토론을 진행했던 터라 그 모습이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물론 음식점의 본질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닭 내장탕의 맛 역시 좋았다. 자극적인 양념에 비린 맛이 묻힌 것인지 아니면 가게의 특제 비법으로 묻힌 것인지 닭 내장에서 맡을 수 있는 비린내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맛 들이면 이만한 술안주가 없겠다 싶을만큼 필자 역시 친구와 함께 가볍게 각 1병을 비웠다. 하지만 ‘내장’이라는 재료가, 푸아그라 정도를 제외하고는 보통 동물을 먹을 때 우선순위로 잡게 되는 식재료는 아니지 않나. 별미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알 수 없는 애환이 먹는 동안 느껴졌다.
너무 짜지도 않고 적당히 볶아진 볶음밥을 후식으로 먹고 나면 툇마루 옆에 경첩달린 여닫이 신발장에서 신발을 알아서 꺼내 이모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 사실 그런 신발장을 나는 팔도의 식당들에서 본 적이 없다. 남의 신발을 몰래 꺼내 가는, 혹은 술에 취해 신발을 잘못 신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신발장을 두게 된 것일까. 삼만 천원이 나와서 오만원짜리 신사임당을 낸 우리에게 사장님은 이만원을 거슬러주시는 쿨함을 보여주셨다. 우리는 “이러시면 저희 여기 또와요” 라는 말을 남기고 식당을 총총 나왔다.
어제 있었던 곳이 없어지는 게 당연한 곳이 바로 서울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다이내믹’이라 표현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 장소는 아마 후자에 가까운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장소이지만 꽤 모두가 즐길 수 있을 만한, 가좌역 앞의 맛집이다. 닭 내장이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면 한 번 들를 만한, 봄에 와야만 화장실이 라일락 꽃 향기 나는 곳 앞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그런 곳이다.
- 작은새 피드백(같은 주제로 같이 쓴 작은새의 글 링크https://brunch.co.kr/@4eeeac81451f407/18)
라일락 향이 앞뒤를 장식하는 만큼, 화장실에 가서 맡았던 라일락 향기에 대해서 서술이 더 되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지금 주는 느낌이 잡지에 실린 맛집 소개 느낌을 잘 살렸는데, 앞뒤 라일락이 내용이 더 풍부하고, 내용과 이어졌다면, 잡지에 실린 글을 뛰어넘는 글이 나왔을 것 같다.
‘화장실 나가서 우측 7m 최O장 건너편’을 써준 부분이 좀 이해가 안 갔다. 원래 써있던 게, 화장실 / 나가서 우측 7m / 최O장 건너편, 이런 식이었어서 그런 것 같다. 아예 enter를 삽입하거나, 최소한 시에서 쓰는 ‘/’를 넣어줬더라면 혼동이 덜 했을 것 같다.
애환이 느껴졌다, 라는 부분이나, 남의 신발을 몰래 꺼내가는 장면을 상상한 부분 등이 문학적으로 글에 맛을 더해줄 부분들이었을 수 있는 것 같은데(라일락도 마찬가지), 좀 짧아져서 글이 건조해진 것 같아 아쉽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 글에서도 ‘건조하게 사실을 묘사하는 능력’과 ‘묘사로부터 사실들을 끌어내는 능력’은 저자의 개성을 잘 드러낸 것 같아, 그리고 내가 잘 하지 못하는 부분이어서 좋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문학적 요소가 좀 더 숨 쉴 공간이 있었다면(피드백처럼) 아주 좋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