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듬 Nov 18. 2020

비장할 것 없는 어제의 일상

2020년 11월 17일

1. 힘을 빼고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글의 소재를 찾다가 하루, 그 소재로 어떤 이야기를 풀어볼까 고민하다가 하루, 그렇게 이틀이 지나면 글을 쓰는 데 써야 할 동력은 이미 사그라들고 만다.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가 마땅히 써야 하는 글이 무엇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며, 나만 쓸 수 있는 글이 있는 것도 아니니 굳이 차별화에 목맬 것도 아닌데 뭘 그리 고민인가 싶다. 그래서 난 오늘부터, 매거진을 채우겠다고 고심하다 힘 다 빠진 글을 쓰는 것을 그만둘 것이다. 내키면 내키는 대로, 마치 고등학생 때 네이버 블로그에 일상을 열심히 기록했던 것처럼 써 봐야겠다. 첫 글자를 쓰고 이 문장까지 쓰는데 노래 한 곡도 채 듣지 못해서, 각오를 이미 실현하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


2. 드디어 8차시가 넘는 글 쓰기 수업을 마쳤다. 학생들과 책을 만들겠다고 야심 차게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호흡이 길어져서 걱정이었다. 질질 끌다 아무것도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다 책은 무슨, 수행평가에 참여도 점수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글을 못 쓰겠다고 푸념하는 아이들을 보며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마음에 드는 시 구절 6개 찾아 쓰고, 친구 고민에 처방전 써 주고, 시 고르고, 수필 쓰고, 나와 글 점검하고, 다시 고쳐 쓰고. 사실 굉장히 긴 호흡,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었다. 다들, 이젠 못 해 먹겠다고 선포하면 어쩌나 싶었다.

다행히 우리의 중학교 3학년 여성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내일이 수행평가 점수 입력 마감이라고, 꼭 마무리를 해 주어야 한다고 당부했더니 방과 후에 두 차례씩이나 들러 함께 글 고민을 하다 가고, 늦은 밤-새벽에 이를 때까지 자신의 글을 내 메일로 속속 보내었다. 글 수준이 어떻고를 떠나,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포기하지 않는 이 친구들의 근성에 박수를 쳐 주고 싶다. 진지하고 솔직하고 꾸준한 이 학생들과 함께 책을 만들고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사실 일대일로 글 피드백을 몇 시간 동안 하는 은 진 빠지고 힘들어서, 올해 왜 또 일을 벌였는가 후회스러웠지만. 아마 곧 기억마저도 곧 미화되겠거니 싶다.)


3. 그제는 원서와 학업 계획서를 내고 왔다. 5년 차에는 입이 닳도록 '사직' 소리를 하고 다니더니, 10년 차에는 뭐든 새로운 것을 찾아대고 있다. 이제 교직에 머문 시간이 좀 되었다고, 함부로 '사직'이란 단어를 입밖에 내지는 못하겠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하고 있 일들에 애착이 적당히 생겨난 것일까. 그러나 여전히 지금의 자리에서 내가 하고 있는 역할에 대한 의문, 더 나은 것을 찾고자 하는 갈망, 이런 종류의 목마름은 있는가 싶다. 그래서 대학원 파견을 희망했다. 2주간 거의 대학원 파견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차 있고 정리가 잘 안 되어서 일부러 학업 계획서를 마무리하고 일찌감치 서류를 제출했다. 처음엔 설마, 로 시작했지만 준비를 하다 보니 혹시, 하는 마음이 들고 이제는 제발, 까지 왔다. 이왕 시작한 일, 현장에서의 10년 잘 마무리하고 11년 차에는 공부를 해 보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