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께 대신 물어봐드립니다

당신이 묻지 못한 물음으로 시작되는 인터뷰

by 가랑비메이커

일러두기

<당신이 차마 묻지 못한 물음들, 대신 전해 드립니다>라는 설문에 모인 익명의 물음들을 토대로 나의 아버지와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인터뷰이

나의 아버지, 고준영
본인을 소개한다면 이름은 ( 고준영 )
나이는 ( 50대 초반 )입니다.
좌우명은 ( 정직하게 열심히 살자 )입니다.
( 여행과 캠핑 )을 좋아하고
( 자유로운 삶 )을 꿈꿉니다.
( 눈 가리고 아웅, 거짓말을 ) 싫어합니다.
현재 ( 타국에서 한식당을 운영 ) 중입니다.
자신을 한 단어로 설명한다면
( 아버지의 아들 )입니다.


당신이 아버지께 묻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01 당신은 어떤 가장이 되기를 꿈꾸었나요.
02 가장을 나타내는 단어는 뭐라 생각하나요
03 가장으로 무엇을 감수하며 사셨나요.
04 지금의 제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05 가장 기억에 남는 딸과의 추억은?
06 나를 보며 가장 처음으로 떠오른 감정은?
07 힘드실 때면 누구한테 기대시나요.
08 지금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가요.
09 내가 당신의 딸인 게 밉거나 후회가 될 때 있었나요.
10 자신으로서 언제가 가장 행복했나요.
11 왜 그렇게 사시냐고 묻고 싶어요.
12 아빠가 듣고 싶은 위로의 말은 무엇인가요
13 당신은 어떤 가장이 되기를 꿈꾸었나요.
14 자식에게 감동받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15 아빠는 뭘 할 때 제일 행복해?

*2019년 여름 진행, 익명 설문 응답



당신을 대신하여 내가 묻고

당신의 아버지를 대신해 아버지가 답하다

인터뷰어 : 딸, 고애라 | 인터뷰이 : 아버지, 고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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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되기 전에 꿈꿨던 가장의 모습은 어땠어?


(아빠)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로 자식이 하고 싶다는 거 아무 걱정 없이 해줄 수 있는 부유한 부모가 되고 싶었지. 단란한 가정도 꿈꿨지. 여행도 하고 외식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그런. (가정 말고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었어?) 본보기가 될 만한 부모가 되고 싶었지. 하지만 막상 되고 보니 딱히 내세울 것이 없네. 그래. 그냥 평범한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었어.



처음 아버지가 되어 나를 보았을 때 기분이 어땠어?


가슴이 벅찼지. 더군다나 너희는 둘이라서. 내 자식이지만 너희 정말 예뻤어. 얼마나 예뻤는지 몰라. 처음에는 우선 손과 발을 먼저 확인했어. 어디 아프거나 잘못된 곳은 없는지 확인하려고. 몸무게는 2.4킬로 2.5 킬로였지. 태어난 시간도 정확히 기억해. 12시 4분과 5분. 1분 차이로 태어난 거야. 너희 둘은 93년도 1월 20일. (그때 태어났어).



아빠가 우리에게 가장 감동받았던 순간은 언제야?


언니랑 너 둘 다 대학을 붙었을 때지. 특히 너는 (재수를 하느라) 더 힘든 시간을 보냈으니까. 재수생 시절의 너를 아빠는 다시 봤어. 상당히 의지가 강하다는 걸 느꼈지. 네 언니도 마찬가지고. 대학 가서 장학금 받으려고 밤새도록 공부하고 결국에는 단대 수석도 하고. 그런 걸 보면서 정말 대견했지. 너도 네 언니도 둘 다 장학금 받으면서 대학 다니는 게 참 감동이었지. 그때가 무지 행복했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따금 속을 썩이기도 했지만, 행복했던 기억이 훨씬 더 많았어.



그럼 혹시 우리가 딸인 게 마음에 들지 않거나 미웠던 순간은 없었어?


(질문을 다 마치기도 전에 검지를 펴 보이며) 단 1도 없어. 아들이었더라면 내 성격을 조금 더 많이 닮아서 속 좀 썩였겠지. 그런데 니들은 그런 게 하나도 없었어.



그래? 그러면 아버지로 살아가며 감수했다던가 희생해야만 했던 것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야? 헤아릴 수 없이 많겠지만.


감수? 감수는 아니고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살아가는 거지. 그건 부모로서 가장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와서 어깨가 무겁다고 느껴본 적도 없어. 굳이 하나 말해보자면, 너희가 고등학생 때는 굉장히 민감한 시기였기 때문에 아빠도 3년을 너희에게만 집중했던 것 같아. 너희 아침마다 밥 지어 먹이고 등하교시켜주던 시절이 있었지. 그땐 그냥 모든 게 안쓰러웠어. 학교 가려고 버스 기다리는 모습도 그랬고 밥도 못 먹고

가는 것도. 그래서 아빠도 피곤하고 정신없는 아침이었어도 그렇게 다했어. 그래도 그 시간들이 아빤 좋았어. 함께 하면서 나눈 이야기도 참 좋았고. 너희가 아빠랑 함께하는 시간을 싫어하지 않아서 좋았지.



맞아. 그런 시간이 있었지. 그 시간들을 지나온 지금의 우리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


그저 둘 다 대견하고 뿌듯해.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아빠는 너희가 걸어 나가는 길에서 대성하기를 바랄 뿐이지. 어느 부모나 다 똑같겠지만, 자식이 원하는 일 열심히 하고 그만큼 잘 되기를 바라. 지금도 충분히 자랑스럽고 뿌듯해. 여기저기 주변에 자랑도 정말 많이 해.



쑥스럽네. 그럼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보낸 시간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뭐야?


요즘은 다 자란 지금보다는 어렸을 때 생각이 많이 나. 어릴 때 너희가 정말 예뻤거든. 그때 자라던 과정이 생각나지. 다 커서는 그때가 기억에 남지. 아빠가 회사를 퇴직하고 오래 살던 집을 떠날 때 만감이 교차했어. 그때 너희 둘이 아빠 고생했다고 케이크 자르고 해 줬던 이야기들, 다 기억은 못 하지만 그때가 기억에 남지. 고마웠어.



아빠가 생각하기에 아빠는 할아버지에게 어떤 자식이었던 것 같아?


귀여운 막내? 아빠는 (육 남매 중에) 막내라고 귀여움을 정말 많이 받으면서 자랐어.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전교 회장도 해보고 그랬으니까. 아버지가 좋아하셨지. 그러다 3학년으로 올라가는 시점에 갑자기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 시작하면서 사고도 많이 치고 다녔어. 그때부터 공부에는 손을 뗐다고 봐야지. 아버지는 당시 명문 고등학교였던 공주 고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내가 당신의 후배가 되기를 바라셨어. 하지만 그때는 이미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린 때였기 때문에. (그 학교에 입학하지 못했고.) 그때, 아버지가 크게 실망을 하셨지. 막내라서 기대를 많이 하셨을 텐데 (그걸 충족시켜드리지 못했어). 그때부터 좀 관계가 대면 대면해졌던 것 같아.



그랬구나. 전혀 몰랐던 이야기네. 그럼 반대로 아빠에게 할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셨어?


안타깝고 불쌍한 사람이었지.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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