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간이고 묵묵히 문전대를 잡았던 당신
2018년 7월 3일
우리의 방공호라 불리던 까만 무쏘는 아빠의 은퇴와 함께 오랜 쉼을 찾아 떠났지만, 이따금 한국에 들어온 아빠와의 드라이브는 계속되었다. 때마다 서로 다른 낯선 차를 타고 떠나는 길에서도 우리는 어김없이 지난 드라이브의 기억들을 꺼냈다. “우리 예전에 그때, 거기로 가면서…….” 드라이브 위에 새로운 드라이브를 떠났다.
오늘의 드라이브 속 드라이브는 고3 수험생 시절,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온 여름방학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머리 감는 시간도 아까워할 만큼 공부에만 전념했었고 언니는 다소 늦게 연기 입시에 뛰어들었던 터라, 우리에게 그 여름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런 두 딸에게 아빠는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했다.
거제도로 떠나자. 외도가 참 예쁘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우리는 단번에 거절했다. 수험생에게 여행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였다. 당시 우리가 재학 중이던 학교는 공부를 많이 시키기로 유명했고 방학에도 조퇴나 결석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빠에게는 포기란 없었다. 결코 쉽지 않은 줄다리기였지만, 공부만 하며 보내는 학창 시절에 추억이라도 하나 만들어주고 싶다는 아빠의 투명하고도 분명한 설득에 담임 선생님은 백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거제도로 떠났다. 어렵게 떠났던 여행이 생각처럼 낭만적으로 흘러간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빠의 말처럼 잊지 못할 추억이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한 가지 에피소드를 꺼내보자면 이렇다. 휴가객이 넘쳐나는 한여름에 갑작스럽게 떠난 우리가 숙소를 찾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였다. 덕분에 난생처음 거리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작은 슈퍼 앞 주차장에 텐트를 칠 때까지는 모든 게 새롭고 즐거웠다. 그러나 낡은 텐트 바닥은 작은 돌멩이들이 그대로 느껴져서 도저히 잠들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간신히 누워 바라본 하늘에 별은커녕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점점 더 거세지는 빗발에 텐트가 무너지지는 않을까 우리는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야 했다. 물론, 드르렁 코를 골며 자던 아빠는 열외였다.
이런 것도 나중에 다 추억이 돼.
한숨도 자지 못해 퉁퉁 부은 우리에게 아빠가 처음으로 했던 말이다. 그래, 그 말은 틀림이 없었다. 이후로 몇 번의 여행을 다녀왔지만 그때처럼 강렬했던 적은 없었으니 말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리는 참 많은 곳을 함께 다녔다. 습관처럼 다녔던 단골 코스와 잘 못 들어섰던 낯선 길 모두 서로 다른 향과 색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건 아마도 드라이브를 떠나던 우리가 품고 있던 생각과 고민도 달랐기 때문일 거다.
같은 게 있다면 드라이브 끝의 감정이 아닐까. 지정석과도 같은 자리에 앉아,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는 대신 같은 길 위를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는 우리를 가볍게 해주었다. 우리는 그런 방식의 대화를 즐겨했다.
언제부턴가 상의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거나 마음에 그림자가 질 때면 밥상을 둘러앉는 대신 드라이브를 떠났다. 무거운 돌덩이를 모두 길 위에 떨쳐낸 후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것이 우리만의 해소 방식이었다.
우리의 드라이브가 일상이 아닌 하나의 이벤트가 되어버린 지금에서야 그 시절이 참 소중했음을 느낀다. 문득 그리워진다. 언제나 아빠의 뒷좌석에 앉아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고 있던 작은 딸, 애라가. 늦은 밤 캄캄한 창 위로 새하얀 꿈들을 그리며 집으로 돌아가던 지난날의 내가. 뒤를 돌아보면 언제나 맞은편 창가를 바라보고 있던 언니와 몇 시간이고 묵묵히 운전대를 잡고 있던 당신의 뒷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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