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닫으며, 에필로그
편집 노트, 닫힌 문을 여는 용기
아버지라는 품이 필요하던 어린 시절을 지나서 오롯한 어른이 된 우리에게는 더는 그 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등을 두드리는 손 없이도 스스로 이른 아침을 깨우며 다독여주는 목소리 없이 잠이 드는 삶에 익숙해진 우리는 때때로 혼자 여기까지 왔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우리는 아버지, 당신의 온기와 그늘을 조금씩 옮겨내며 스스로 서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그 품이 그저 서늘하기만 한 그늘이었을지라도, 굳건히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가 없었더라면 한 줌의 그늘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그럼에도 이따금 내 삶의 근원인 당신을 모른 척하고 싶었다. 지지부진하기만 한 시간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방황하던 발걸음은 애꿎은 주변을 맴돌았지만 방향을 정하기까지의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롯한 내 삶을 찾아가겠다는 명목으로 나는 당신의 그늘과 온기를 등진 채 걸음을 옮겼고 그 속도는 점점 빨라져 갔다.
깊은 서랍 속에 낡은 일기장을 넣어둔 채 닫아버린 시간이었다. 내 모든 처음과 과오를 기억하는 낡은 일기장을 꼭꼭 숨겨두고서 새로운 페이지를 향해 발을 옮겼던 날들이었다. 넘어지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고 사랑보다는 절망을 배웠고 기쁨보다는 좌절을 맛보는 시간들이었지만, 그로 인해 스스로 일어서는 법도 알게 됐다. 낯설고 어렵던 시간이 차츰 익숙하고 자연스러워지자, 나는 낡은 일기장을 언제 어디서부터 덮어버렸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오래도록 다물고 있던 서랍을 여는 열쇠도 어디에 두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내 기억력과는 상관없이 습관처럼 남겨진 사랑과 다정한 마음은 다시금 닫혀있던 문을 열게 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린 서랍 안에는 이전보다 작아진 당신이 있었다. 그리고 당신이 기억하는 내가 있었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조금 희미해졌을 뿐이었다.
작가님 책에는
늘 아버지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요.
어느 모임에서 들었던 말이다. 내 모든 책에 아버지 이야기가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의도 없이 자연스럽게 써온 글들이었다. 이제는 당신의 딸이 아닌 오롯한 나로서 존재하는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세상이 두려울 때마다
숨어 유영하는 페이지 속에도
매일 아침 마주하는 거울 속에도
무심코 뱉은 농담에도
주체할 수 없는 분노 속에도
아버지 당신이 있었다.
내 삶의 조각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당신이 내 삶의 바탕이었다. 밟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 바탕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했던 내가 조금은 우스웠다. 허탈함보다 도리어 해방감이 찾아오던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당신과 내가 서로에게서 벗어나고자 아무리 애를 쓴대도 그건 그저 서로의 꼬리잡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리하여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익숙하고 즐거운 방식으로 당신을 마주하기로 했다. 그것은 결국, 나를 마주 보는 새로운 방법이 되어줄 것이라 믿으며. 나는 이 즐거운 시간 속으로 스무 명의 아버지와 자식들을 초대했다. 용기 내어 낡은 일기장을 펼친 자식들은 나의 동료가 되어주었고 그들의 고백을 통해 만날 수 있었던 서로 다른 모습의 아버지들은 결국, 나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들은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동료이고 아버지이기도 할 것이다.
오래된 상처와 미완의 감정을 꺼내는 일은 분명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우리는 모두 한 편의 이야기를 맺을 수 있었다. 여전히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있고 아직 밝히지 못한 진심들이 있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용기를 낼 것이다. 나아갈 때 부서지는 것들, 비로소 가볍게 깊어지는 것들을 우리 모두는 목격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서툰 용기가 당신에게 번져갈 수 있기를 바란다.
열 수 없는 서랍은 존재하지 않으며 덮어둔 일기장을 펼치지 않으면, 새로운 이야기는 시작되지 않는다. 그저 손을 뻗으면 된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마주할 수 있을 거다.
당신의 동료, 가랑비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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