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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관우 Feb 09. 2020

바둑을 배운다 - 2

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이란 없다


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이란 없다



드라마 미생에서 인턴 생활 중 마지막 입사 PT 시험에 선 장그래가 한 말이다.


장그래는 파트너이자 라이벌인 한석율에게 사무실도 치열한 현장이라고 주장하며 어릴 적 바둑 스승이 "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은 없어"라고 가르쳐주던 모습을 회상하고 "회사에서 생산되는 제품 중 이유 없이 생산되는 제품은 없다"라고 말한다. 


이어 드라마에서는 "곤마(살리기 힘든 바둑돌)가 된 돌은 죽게 놔두되 그를 활용해 내 이익을 도모해야 한다"는 바둑 스승의 가르침과 "실패한 제품은 실패로 두되 그 실패를 바탕으로 더 좋은 제품을 기획해야 한다"는 장그래의 발표를 교차하며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우리 인생의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는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역설하는 것 같았다. 


오늘은 이 실패한 수처럼 느껴지는 돌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축>, <환격>, <먹여치기>에 대해서 배워보았다.


축은 활로가 2개인 돌을 계속 단수로 몰아가는 기법이다.


위 상황에서 백 활로 A, B 둘 중 어느 곳에 돌을 두어야 백 활로가 단수가 될까?


그림<1>, 그림<2>

B 위치에 놓아보자. 흑이 B로 단수를 치게 되면 백은 A로 빠져나가고 그러면 백 활로는 3개로 늘어난다 (그림 <1>). 축은 이 상황에서 단수를 치며 상대가 돌을 이어도 활로가 두 개인 상황을 지속적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A 위치에 단수를 치면 백은 B로 빠져나가지만 흑이 바로 단수를 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그림 <2>).



이런 식으로 계속 단수 치고, 빠져나가고 하다 보면 결국 귀퉁이로 백을 몰아가는 모양새가 만들어지는데, 이렇게 계단 모양으로 바둑돌을 만드는 기술을 축이라 한다. 


축은 바둑에 있어서 기본적인 기술 중의 하나인데 당하는 쪽은 몇 수만 이어가도 매우 큰 피해를 받기 때문에  

'축을 모르고는 바둑을 두지 말라.'라는 말과 축에 걸렸을 때 괜히 응수하지 말라는 뜻으로 '축 한 번 나가면 7집 손해' 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빠져나갈 길이 없어 보이는 축도 의미 없이 미리 둔 한 수로 반격의 기회를 잡는 경우가 있다. 


바로 축머리다.



축머리란 위와 같이 축이 나아가는 방향에 미리 자리를 잡고 있는 수다. 오른쪽 아래 있는 한 수는 축이 끝까지 진행되면 백에게 반격의 기회를 제공한다. 끝까지 한번 이어보자.



축머리와 백들이 만나 활로가 4개로 늘어났다. 이로써 백은 살길이 생겼고 다른 흑돌을 공격할 수 있는 양단수도 가능해졌다.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라는 잡보장경 구절이 떠오른다.

상대에게 축머리가 있을 수 있고 나에게도 축머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도 교만하지도 비굴하지도 말자.


환격


상대방 돌을 잡기 위해서 내 돌을 희생시킨 후 더 많은 돌을 잡는 기술이다.


한 프로기사는 환격에 대해서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속담을 빗대어 설명을 했는데, 이 말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환격은 손해 감수하고 더 큰 이익을 도모하는 기술이다.


아래 상황을 봐보자.


1 > 2 > 3


1번 상황에서 백의 호구에 흑은 일부러 들어가서 돌을 먹힌다. 마치 악수를 둔 꼴처럼 보이지만 


아래 그림처럼 다시 단수를 치면 백의 돌 3개를 잡을 수 있다.


환격은 호구에 일부로 들어가는 것부터 시작한다. 마치 의미 없이 악수를 둔 것처럼 보이지만 미끼를 던지고 더 많은 이익을 도모하는 수인 것이다.


먹여치기


바둑에서는 바깥 활로가 없더라도 내부에 서로 독립된 두 집이 있으면 살아 있는 돌로 친다. 

위 그림은 흑돌이 갇혀있는 형태지만 흑돌을 둬서 서로 독립된 두 집을 만들면 흑돌은 저 안에서 독립적으로 살아있다고 본다.


먹여치기는 서로 다른 두 집을 내서 살아있으려 하는 상대의 진영에 내 돌을 희생함으로써 상대의 두 집을 파괴하는 기술이다.

<먹여치기-1>

<먹여치기-1> 그림에서 언뜻 보기엔 흑이 두 집을 내고 살아있는 것 같지만 흑이 이렇게 젖힌 건 치명적인 실수이다.


<먹여치기-2>

먹여치기는 이 상황에서 백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백 2를 두면 흑 3이 따라올 것이다.

<먹여치기-3>

이어서 백 4로 두면 흑 5로 흑은 백의 돌을 따낸다.

<먹여치기-4>

다시 백 6으로 찔러 넣으면 흑 7로 따내도

<먹여치기-5>


백 8로 응수하는 순간 흑 △가 단수에 몰리고 결국 붉은 동그라미에 백이 두면 흑 △가 잡힘과 동시에 나머지 흑돌도 꼼짝없이 잡히기 전의 상태가 된다. 이렇듯 집을 냈으되 필요한 연결점이 끊어져 있어서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집을 '옥집'이라고 부른다. 

백처럼 자신의 돌을 희생하여 상대의 독립된 두 집을 파괴하는 기술이 먹여치기다.



축머리가 되어 나의 돌을 살리는 외로운 수, 상대의 호구에 고의로 들어가 내 이익을 도모하는 수, 상대의 실수를 유도하기 위해 희생하는 수. 모두 수 하나만 본다면 의미 없는 돌이지만, 이 돌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의미가 부여되고 이 돌들로 인해 승패가 갈린다.


작은 이익에 집착하며 한 수 앞만 보고 바둑을 둔다면 질 수밖에 없다. 당장은 의미가 없는 수라 할지라도 전체를 보고 길게 보면서 작은 패배를 견딜 줄 알아야 마지막에 이길 수 있다. 



미래를 위한 수를 두자.

그래야 마지막에 웃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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