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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필적 글쓰기 Oct 07. 2016

마요네스

헤어지는 건 슬퍼


 삐져나온 마요네즈 같다,

고 나는 나를 생각했다. 촌각 전엔 고무통 안에서 마요네즈들과 함께 있었는데, 지금 주욱 짜여 출구 밖으로 내놓아졌다. 내가 방금 나온 출구를 보니 입구 같기도 했다. 다시 들어가볼까 했는데, 통 밖으로 밀려난 마요네즈가 다시 통 속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구멍이라고 해서 마음껏 들고 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느 구멍은 출구만 된다.


 마요네즈들은 촉촉하다. 고무통이 도운 덕이다. 반면에 삐져나온 마요네즈는 마른다. 점점 바삭해진다. 사과는 맛있어-맛있으면 치킨-치킨은 바삭해-바삭하면 마요네즈,는 아니다. 이렇게 마요네즈가 마르고 닳는 것은 삐져나온 마요네즈를 도울 이가 없기 때문이다. 고무통은 지가 먹은 지 속알의 마요네즈들만 품는다. 고무통은 지가 뱉어놓은 마요네즈가 마르는 걸 관광한다. 관광객은 관광지를 관광할 뿐, 전·월세를 알아보지 않는다. 마요네즈는 고무통과 마요네즈들의 관광상품이 된다. 마요네즈들은 혼자 된 마요네즈가 불쌍해 미간을 세로로 접는다. 사람들은 남수단의 고통을 느끼지만 그곳의 전·월세를 알아보진 않는다.


 삐져나온 마요네즈가 슬픔을 느끼는 건, 마요네즈가 혼자라서가 아니라 저들이 함께여서다. 1은 3보다 2만큼 적다. 1은 10에게 9번 진다. 삐져나온 마요네즈는 3이나 10이었다가 1이 되는 동안 빼야했던 2와 9만큼이 아프다. 2나 9들은 여전히 복수여서 촉촉한데, 2나 9를 뺄셈하고 단수가 된 삐져나온 마요네즈는 말랐다. 모든 슬픔은 복수에서 단수로의 낙폭에 있다,고 마요네즈는 생각했다.


 혼자가 왜 슬퍼? 삐져나온 마요네즈에게 묻는다. 자문自問이다. 함께여봐서 슬퍼. 삐져나온 마요네즈가 답한다. 자답自答이다. 이젠 치대고 뒤죽박죽일 수 없어서 슬프다. 헤어지는 건 슬퍼. 나는 매번 울고 싶다. 그럼에도 울지 않는 건, 마요네즈들이 계속 촉촉해서다. 마요네즈들아 잘 살아야 해. 고무통아 마요네즈들의 보습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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