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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 숲해설가 황승현 Jun 12. 2020

정선 아씨와 회동왕자 이야기(정선의 자존심story)

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6.12.금. 정선아! 보고싶다! 함박꽃나무)



강원도 정선 고을 조양강변

시인 묵객의 붓처럼 능수버들이 모래밭에 시를 쓰듯하고

아카시 꽃 향기가 강물 처럼 고을을 휘감아 흘러가던 때


고을 부자집 외동딸 정선 아씨가 하녀들과 은빛 햇살처럼 이야기하며

빨래를 하고 있던 중에

얼마전 북쪽에서 가리왕산으로 피난왔다는 회동 왕자 일행이 부친 갈왕을 대신하여

고을 부호인 최부자집을 찾아가는 길에 물길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회동왕자는 물길을 건너며 여인네들 목소리가 들리는 아랫 물가로 시선을 돌리던 중에

말 안장 발걸이에서 왼발이 빠지며 신발이 떨어져 강물을 따라 빨래하는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지요.


여인네중 귀티가 나는 정선 아씨가 신발을 들고와 공손히 권하는 것을

왕자는 유심히 보고 있었고

정선 아씨도 그 눈길을 느끼며 얼굴을 붉히었습니다.


"고맙소! 정선 고을 최부자집을 가는 길인데 어디로 가야하오?"

"예? 네~ 이 앞에 늘어선 능수버들을 따라가시다

뚝방 위 커다란 느릅나무가 있는 집을 찾으시면 되옵니다."

"참으로 감사하오! 연이 있으면 또 뵙지요!"

왕자의 그말에 고개를 들어 서로가 상견을 하게 되었는데

출중한 용모에 품격있는 말투, 존엄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날 저녁

사랑채에 귀한 손님을 치른다고 온 집안이 법석이었고

한참후 하인을 통해 사랑채로 건너 오라는 기별을 받았지요.


"왕자님! 제 여식, 정선입니다. 인사여쭙거라!~ 회동왕자님이시다."

"귀한 분께 인사 여쭙습니다. 정선이라하옵니다."

"오호! 우리 구면이지요. 정선 아씨!"


전날 연회 분위기와 달리

왕자 일행이 다녀간 후

아버지 최부자는 안색이 좋지 않았지요.

가리왕산으로 피난 온 갈왕이 왕자를 통해 전해온 것은

지역에 영향력이 크고 군졸까지 거느린 호족이며 부호인 아버지가

지역의 호족들을 설득하고 규합하여

갈왕께 와서 복속하겠다는 문안을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망명중인 왕이지만

정선 고을을 갈왕의 휘하에 두려는 생각에서였지요.



여러날

고을의 여러 호족들과 빈번하게 교섭이 있은 후

최부자는 일행을 이끌고 가리왕산을 다녀오고는

안색은 더욱 어두웠습니다


갈왕에게 대적하지 않겠다는 증표로

볼모를 요구하여는데

최부자의 무남독녀 정선을 요구하였던 것이지요.


북쪽에서 가리왕산으로 피난 온 갈왕의 왕세자 회동왕자

정선의 부자이며 호족인 최부자를 찾아 강을 건너던 중

최부자의 무남독녀 정선 아씨를 상견하였지요

서로에게 좋은 호감을 갖게 되었지만

갈왕이 인근 고을의 호족들과 함께 복속을 서약하고

볼모로 딸을 요구하였습니다


정선 아씨가 집을 떠나 가리왕산으로 가던 날

"너는 이 아버지의 딸이기도 하지만 이곳 정선의 딸이다.

경거망동하거나 위약한 처신을 하여 우리를 욕보이지 않토록 하거라"


그렇게

정선 아씨는 가리왕산 궁궐에서 볼모 생활을 하였지만

용모와 다르게 담대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품위있는 모습으로 기거하였던 것이지요.



우아한 함박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가리왕산 자락

꽃 그늘을 거닐며 회동 왕자와의 연분도 쌓여만 갔지요.

"정선 아씨!  그대는 저 함박꽃처럼 우아하고 단아하군요"


회동 왕자와 자연스럽게 친분이 두터워 지게 되면서

아버지와 고을의 의견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선 고을의 민심은 예로부터 누구의 지배를 받는 것을 싫어 하였고

더더욱 북쪽에서 내려온 갈왕 무리들이 지배를 강요하는 것은

더 크게 자존심을 해치는 것이었지요.


분위기가 험악해지면서

회동 왕자와 정선 아씨의 오갔던 혼담도 깨어지고

왕자는 정략적으로 북쪽 인근의 호족 딸과 혼인하게 되었습니다.


정선 아씨는 크게 상심하였지만

마을의 안녕과 자존심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지요.


한편

왕자의 정략 결혼으로 정선 고을이 자존심을 상하게 되었던 것은

그 정략 결혼한 호족이 정선 고을과 적대시하는 고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급기야

갈왕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정선으로 처들어 오면서

정선 고을과 가리왕산 갈왕간에 전쟁이 일어났고

정선 고을 군사를 지휘하던 최부자는 자식을 볼모로 두고 있었기에

전쟁에 적극적일 수 없어

많은 군사적 피해와 식량과 무기를 탈취당하게 되었지요.


이런 전황을 전해들은

정선 아씨는

아버지 최부자에게 결연한 내용의 서신을 써보냈습니다.

"아버님! 소녀를 정선의 의롭고 반듯한 딸로 키워주셨지요.

이제 그 은혜에 보은할 때인 듯합니다.

소녀의 자존감을 세워주신다는 생각으로 고을을 침략한 무리들을 물리치시고

응징해 주셔요.

그것이 저를 위하는 길이고 마을을 살리는 길입니다."


서신을 보내고 난후

정선 아씨는

결연한 의지로 자결하여

상처받은 자존심을 스스로 위로 하였다고 하지요.


후세 사람들은

정선 아씨가

고을의 안위와 자존을 위해 힘쓴 것을 알고

그 덕을 칭송하고 혼령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정선 아씨!~ 보고 싶어요!'


한편

마을에서 정선 아씨의 시신을 양지바른 산자락에 묻어주었는데

이듬해 무덤가에 작은 나무가 자라나더니 몇해가 지나서 꽃을 피우는데 

정선 고을 집에 흐드러지게 피던 목련꽃과 비슷한데

청초한 커다란 잎을 먼저 피우고 순백의 하얀 꽃을 피우므로

고을 사람들은 정선아씨의 고운 자태와 아씨의 함박웃음을 닮았다하여 

함박꽃이라 부르게 되었지요.



가리왕산 궁궐에서 볼모 생활을 하게 된 정선 아씨

용모와 다르게 담대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품위있는 모습으로 기거하면서

회동 왕자와 자연스럽게 정분이 쌓여 감


예로부터 정선 사람들은 누구의 지배받는 것을 싫어해서

갈왕에게 끝까지 복속하지 않음으로

분위기가 험악해져

회동 왕자와 정선 아씨의 오갔던 혼담도 깨어지고

왕자는 정략적으로 북쪽 인근의 호족 딸과 혼인


정선 아씨는 크게 상심하였지만

마을의 안녕과 자존심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지요


한편

급기야 갈왕은 정선고을과 전쟁을 하게 되었고

최부자는 딸의 볼모로 인해 적극적인 전투를 할 수 없었음

이에 정선아씨는 아버지께 서한을 보내어

정선고을의 자존심을 회복해 줄 것을 간청하고 자결



달 밝은 밤

조양강가를 거닐며

정선 고을을 바라보니

먼 산자락에

소녀의 누은 형상이 보입니다

'누구일까요?'



'이 새벽의 종달새' 블로그  http://blog.daum.net/hwangsh61

BAND 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 http://band.us/#!/band/61605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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