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코로나로 비대면 수업을 하고 있을 때라 일자리 얻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지인은 떡하니 취직을 해서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었다. 놀랍게 생각한 것은 아이의 교육을 위해 몇 해 동안 쭉 일을 쉬었던 터라 안 될 것 같았던 취직이 된 것에 놀랍고 대단해 보였다. 부지런하기로 따지자면 단연 1등이다. 나이 50을 넘어서도 오랜 경단녀의 타이틀을 벗고 일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지인이 늘 습관처럼 하는 말이 있다.
“노느니 멸치 똥이라도 까자”
그 말에 배를 움켜쥐고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한참을 웃은 나는 지인의 말을 듣고 나서 멸치 똥 떼기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가 되짚어보게 되었다.
지인은 그 멸치 똥 떼는 습관 때문에 이득을 본 것이 한두 개가 아닌 것 같았다.
그중 하나가 자산이다.
음악학원을 운영하면서 손쉽게 벌던 돈을 흥청망청 쓰던 지인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집에서 일부러 경제지원을 끊었다고 했다. 덕분에 실컷 돈 고생을 하게 되었고 작은 돈이라도 감사하며 손쉽게 번 돈을 소중하게 여기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모으기 시작한 자산은 여러 투자를 거쳐 어마하게 불려 갔다.
돈도 돈이거니와 작은 일감이 들어와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부지런히 일하고 모으려는 변화는 귀한 보석이 되었다.
그때부터 “노느니 멸치 똥 깐다.”의 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놀면 놀았지, 티도 안 나는 저런 사소한 멸치 똥 따위를 깐단 말인가, 오히려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던 나를 깨쳐줬던 경험담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던가.
지인은 집에서 쉬면서도 사소한 뭐라도 해왔기 때문에 경단녀 탈출을 하지 않았나 싶다.
노느니 딸 친구의 바이올린을 봐주다가 레슨을 하게 되었고, 노느니 딸이 다니는 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노느니 아는 후배가 가르치는 복지관에 며칠, 대타로 갔다가 일자리를 잡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인은 어디에서든 멸치 똥 하나를 꼭 까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인과 나를 대입해서 생각해보면 확연히 달랐다.
귀찮음과 게으름이 한 몸이 되었던 나는 움직이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사람이었다.
과도한 움직임은 부담감이 되어하기 싫었고, 작고 사소한 것은 티가 나지 않기 때문에 거들떠보지 않았다.
욕심은 어찌나 많은지 이왕 할 것 같으면 티가 크게 나면 좋겠고 , 빨리 성과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멸치 똥 하나 까 봤자 똥 하나지, 국을 끓여 먹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지 않은가.
‘대수롭지 않은 일, 어차피 해봤자 ~‘ 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지인의 경험담으로 ’사소한 것이라도 일단 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거창한 목표와 실행만을 기대했던 내게, 사소한무언가를 그냥 한 번 해볼 수 있는 가벼운 것들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지금도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 있는 내게 깜짝 놀란다.
‘어차피 달라지지도 않을 텐데.‘의 마음에서 ’일단 해보기나 할까 ‘의 마음가짐으로 변하게 되었다.
시작한 한 번이 가벼워서 금방 끝났고 , 또다시 시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작고 가벼운 실행은 지금까지 나를 끈기 있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언빌리버블 (Unbelievable)
노느니 가볍게 물을 마셨고, 노느니 목을 한 번 돌리고 복식호흡을 했으며, 노느니 고마운 사람 1명에게 감사 쪽지를 주기도 했다.
글 두 줄을 적고, 블로그에 짧은 글을 적었다.
똥 깐 멸치들이 어느새 국을 끓일 정도로 수북이 쌓여있었다.
소소하게 무언가를 해낸 것들이 많아지자 서서히 뿌듯함도 일어났다.
지금도 가끔씩 생각한다.
만약 가소로워서, 하찮아서 노는 김에 푹 놀았다든지, 노느니 멸치 똥만 쳐다보고 있었다면 연결되는 점 속에 그 어떤 기회도 잡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독립출판 그림책을 냈다.
노느니 그렸더니 그림책 한 권이 뚝딱 나왔다.
작품성과 예술성을 따진다면 할 말이 없지만 과거 그림책을 내고 싶었을 때, 계획만 세워놓고 매번 미루었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나는 장족의 발전인 셈이다.